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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장·취업

오후 5시, 본부장 퇴근 독촉에 ‘짐싸는 시간’

등록 :2008-01-27 20:11수정 :2008-01-2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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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데브캣 스튜디오의 송지현씨가 출근해서 인트라넷에 접속하고 있는 모습.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의 송지현씨가 출근해서 인트라넷에 접속하고 있는 모습.
[신바람 일터 만들기 1부] ⑤ ‘8 to 5’ 근무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는 한해 동안 2200시간 이상 노동하는 나라 가운데서도 한국을 선두로 꼽았다. 하지만 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기본급 만으론 살 수 없는 저임금 구조가 이런 장시간노동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주 48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 비율인 ‘장시간 노동빈도’를 조사한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페루에 이어 49.5%로 전세계 2위를 차지했다.

물론 대한민국도 법적으론 주 40시간제다. 올해 7월부턴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된다. 그런데도 일터 현장에선 연장 근로와 야근·특근이 만연하다. 근로시간과 일터의 안전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윤조덕 박사는 “독일에선 사고발생위험률이 하루 8시간 이상을 초과하면 2배까지 뛴다는 조사통계도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연장근로는 일을 위해선 어쩔수 없는 필요악’이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 ‘필요악’ 조차도 아니라고 얘기하는 일터가 있다.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 쟁쟁한 온라인 게임으로 유명한 게임업체 넥슨. 그곳의 한 개발 스튜디오를 지난주 찾았다.

게임개발업체 ‘야근 문화’ 없앤 데브캣 스튜디오
자기개발 보장으로 직업수명 늘리고 효율성 높여

“빨리가” “뭐하냐”

오후 5시가 되니, 송지현씨의 컴퓨터 화면에 본부장의 메시지가 뜬다. 오늘만은 꼭 남아서 일을 좀 더 하고 싶은데…. 어쩌나, 팀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했다. 꿈같은 얘기 같지만,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의 퇴근 시간의 실제 풍경이다.

2005년 12월, 일터의 변화가 시작됐다. 김동건 데브캣 스튜디오 본부장이 앞장서 모든 직원들의 ‘8 to 5’ 근무를 의무화한 것이다. “그전까진 빨리 나와야 10시, 야근도 많았다. 게임 만드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밤 늦게까지 일하고, 조직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김 본부장은 말한다. 퇴근 독촉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윗사람들이 그러면 직원들이 한결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주 48시간 이상 노동빈도 각국 비교
주 48시간 이상 노동빈도 각국 비교
‘8 to 5’ 근무를 위해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들이 도입됐다. 데브캣의 직원들은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아이디와 사번을 입력해야 출근으로 인정되는데, 그 전에 ‘모닝퀴즈’라는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무작위로 뜨는 개발본부 직원의 얼굴 사진을 보고 오지선다형 가운데 정확히 맞춰야 아이디 입력이 가능하다. 틀리면 10초를 기다려야 재시도를 할 수 있으니, 8시에 딱 맞춰 책상앞에 도착하면 좀체 정시 출근 인정을 받기 힘들다. 그날 사진이 뜬 ‘투데이즈 멤버’ 동료에겐 모든 직원들이 한마디씩 꼬리글을 달고, 이 꼬리글은 퇴근쯤 당사자들에게 한 데 모아 이메일로 보내진다. 본부 인원이 100명을 넘어가면서 팀 이외 동료들을 알 기회가 줄었는데, 이 모닝퀴즈는 친밀도를 높이는 구실도 톡톡히 한다. 도입 초기엔 지각 한차례에 1만원씩 벌금을 내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내고 회식도 했지만 이제는 벌금제가 필요없게 됐다. 게임업체 답게 ‘90콤보’ 제도도 있다. 90회 연속 지각을 안 하면 이전 지각기록은 클리어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고 싶다.”

김동건 본부장이 이 제도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30살만 넘으면 게임개발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싫었다. ‘직업’으로 성숙시켜, ‘직업’으로서 미래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6년전 김 본부장이 ‘마비노기’의 개발프로그래머를 맡았을 때와 달리, 지금은 본부의 절반이 기혼자라는 현실도 작용했다. 게임에 날밤 새는 게 보통이던 예전과 달리 직원들의 자기개발 욕구들도 점점 높아지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송지현씨는 “4년 전 입사 땐 부수수한 머리에 밤에 컵라면 먹으며 야전침대에서 일하는 게임업체 풍경을 나름대로 ‘동경’했다”며 “처음엔 의욕이 넘쳐 남아서 일을 하고 싶은데 팀장이 못하게 해서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팀장님이 그러면 오래 못한다는 말을 하던 게 이젠 이해가 간다.”

근무시간이 ‘8 to 5’로 정해진만큼, 낮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노력이 많아졌다. 처음엔 50분 집중적으로 일하고 10분 쉬기, 이런 것도 해봤다. 이젠 팀 나름대로의 규칙을 스스로들 만들어간다. 한 팀은 아침 8시에 오면 무조건 30분간 모여 차를 마시며 떠든다. 자유로운 잡담 속에 일과 관련한 아이디어의 힌트를 얻을 때도 적잖다. 다른 한 팀은 오전시간을 ‘코어타임’으로 스스로 정했다. 남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하루가 길어진 느낌이랄까, 5시에 퇴근하니 그냥 집에 가기도 그렇고. 전 수영을 하는데 운동이나 어학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참, 연애하는 사람들도 늘던데요?”라고 송씨는 말했다. 다른 게임업체에 있다가 2년전 이직한 권성태씨는 “결국 이런 제도가 실천되게 하는 데엔 관리자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하루, 1주일 단위로 출·퇴근시간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배분하는 건 팀장이나 유닛장들이기 때문이다.

입사뒤 3·6·9년째가 될 때마다 재충전 휴가를 10·15·20일씩 주는 제도나 희망자를 선발해 지원하는 ‘배낭여행 지원프로그램’ 등 넥슨의 다양한 사내복지제도도 사람답게 일하는 일터를 만드는 큰 힘이다. “누구나 재미있게 일하고 싶지 않나요?” 김 본부장의 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와닿을 말이었다.

[한겨레 관련기사]

▶ “주 12시간 넘는 연장근로는 불법이다”
▶ 문화 바람’ 난 기업, 직원을 춤추게 하다
▶ 아이 생기면 더 좋아지는 ‘최고의 직장’
▶ 사원을 식구처럼…3D업종이 활짝 웃었다
▶ 공짜카페·노래방 ‘놀이천국’이 고속성장 일궈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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