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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코리아 실적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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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신화’ 야후 벌써 10년
한국적 서비스 손놓아 다음·네이버에 왕좌 넘겨글로벌 콘텐츠·맞춤 서비스로 ‘공격적 경영’ 천명 “‘야후가 화면에 떠야 ‘아, 인터넷이 연결됐구나’ 하던 때였어요. 강남에서 밥을 먹는데, 야후 인식표를 목에 맨 사람들이 들어와 식당이 술렁댔어요. ‘야, 쟤들이 야후구나, 이번에 또 얼마를 벌었나….’” 엔에이치엔(NHN)의 한 간부는 1990년대 말의 어느날을 웃으며 회고했다. 야후가 곧 ‘인터넷’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야후 없이, 네이버나 다음도 온전히 지금의 모습이긴 어렵다. 포털의 개념, 디렉토리 검색 등을 처음 도입해 국내 사용자들을 길들이며, 인터넷 비즈니스의 틀을 다졌기 때문이다. 다음달, 야후가 한국에 세워진 지 10년째를 맞는다. 미국 인터넷 시장을 주름잡던 야후가 유럽 지역 공략에 치중하던 1997년, 염진섭(야후코리아 초대 사장)씨는 이렇게 말하며 본사를 설득했다. “설립 3분기 안에 흑자를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철수하겠다.” 회사는 그해 5명의 사원으로 한국 땅에서 이문을 남긴다. 야후코리아는 “사업 출범 뒤 10년 동안 매년 흑자를 기록하는 유일한 인터넷 포털 기업”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야후코리아는 손익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까지 뉴스 제휴 공급, 쇼핑몰, 사용자 기호 연구 시설 등을 최초로 선보이며 포털 서비스의 길라잡이 구실을 했다. “닷컴도 산업이란 인식을 가져와 좋은 인재가 닷컴기업에 더 많이 모이게 한 것도 야후”라고 다른 포털사 임원들은 말한다. 하지만 야후코리아는 1998년 9월 하루 300만 페이지뷰, 이듬해 같은 달 국내 최초 2000만 페이지뷰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한지, 불과 3년 만에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 입지는 점차 좁아진다. 엠파스와 네이버가 각각 1999년, 2000년에 자체 검색서비스를 내놓으며 차별화를 꾀했고, 다음과 프리챌·싸이월드가 커뮤니티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야후코리아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고빗사위를 맞는다. 여전히 본사의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국내 이식하기에 바쁜 야후코리아는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 “야후에서도 못찾으면 엠파스에서!”라는 경쟁사들의 광고 문구만 하릴없이 들어야 했다. 2000년 처음 상용화한 무선인터넷 검색서비스나 지난해 웹 2.0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야미) 등은 현실(소비 수준, 저작권 문제 등) 여건보다 지나치게 앞섰고, 그때마다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의 부족을 절감해야 했다.
한 포털사 간부는 “야후코리아는 1위 자리에 안주하며 한국 취향의 서비스 개발엔 게을렀다”고 지적한다. 다른 포털사 임원은 “인터넷 취향은 빠르게 변하는데 글로벌 기업의 속성상, 서비스나 의사결정 속도가 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포털 서비스는 만들었으나 야후 서비스를 만들지 못한 셈이다. 최근 야후코리아는 포털 파란한테도 뒤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권좌가 야후에서 다음, 다음에서 네이버로 세 차례나 바뀐 한국에서 누구도 ‘지금’이 ‘내일’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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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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