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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헤리리뷰

한국사회, 왜 기본소득인가?…“분배체계 큰 틀 전환 필요”

등록 :2020-06-22 09:10수정 :2020-07-0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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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양극화 심화로 역동성 저하
기존 복지체제로는 사각지대 대응 미흡

코로나19 사태로 취약계층 등 직격탄
사회보장 시스템 정비 필요성 제기돼

긴급재난지원금 시행으로 이슈 촉발
정치권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 부상

미래사회 여정 향한 첫걸음 뗐으나
재원 논쟁· 찬반 논란 등 험로 예고
지난해 9월8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에서 열린 기본소득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참여한 당원들이 당의 상징적 이미지인 쉼표 모양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기본소득당 제공
지난해 9월8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에서 열린 기본소득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참여한 당원들이 당의 상징적 이미지인 쉼표 모양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기본소득당 제공

기본소득 바람이 거세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 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뼈대로 한 기본소득이 최근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등장한 것은 이슈 선점을 넘어 정책 경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려면 아직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 지금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놓고선 다양한 처방이 나온다.

왜 기본소득인가?

그동안 기본소득 논의는 학계와 시민사회 영역에서 10여년 동안 꾸준히 논의돼 왔던 이슈다. 접근 방식이 다 다르고 실현 가능성을 놓고서도 견해가 분분하지만 이런 논의가 불붙는 배경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일찍이 <제4차 산업혁명>의 저자 클라우스 슈바프는 “오늘날 인류는 살아가는 방식, 일하는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의 초기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인터넷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에 기반한 디지털 기술 혁신으로 앱 기반 상거래와 무인화, 자동화 등이 낯설지 않다. 미래 대량실업과 탈노동 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의 미래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꼽는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자유와 안정은 ‘가부장적 자유주의’가 편만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라며 “기본소득제가 개인에게 실질적 자유와 안정성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기본소득제가 최근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노동과 고용 시장의 변화로 소득 불평등 정도가 깊어진 게 배경이 됐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1년 전보다 더 벌어졌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업자가 급감하고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불안정 노동자 등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회보장 체제의 사각지대가 그대로 드러났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넘어 기본소득제 도입으로 국민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가처분소득을 늘려 경기 부양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논리는 급기야 정치권까지 번졌다. 코로나 사태가 노동 불안과 불평등 심화, 미비한 사회안전망 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기본소득 논의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 실현 가능한가?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제의 취지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시행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달이 국민에게 주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기본소득의 핵심 쟁점은 역시 재원 마련 방안이다. 여기에는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기존의 사회복지 제도를 재편해 예산을 마련하는 방안, 탄소세와 토지보유세, 데이터세 등 신설세를 만들어 조달하는 방안, 비과세 감면 폐지 등 기존의 조세제도를 재편하는 방안까지 다양하다. 기본소득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도 실행 방안에선 온도 차가 크다.

단순 계산으로 국민 1인당 기본소득으로 30만원씩 주려면 매달 15조원, 연간 180조원이 필요하다. 이는 올해 정부예산에서 보건·복지·고용 부문에 쓸 돈과 비슷한 규모다. 보건·복지·고용 부문은 기초생활 보장, 취약계층 지원, 아동·보육, 노인, 보건의료, 건강보험 사업 등을 총망라한다. 김현동 배재대 교수(조세법)는 “현재 예산 규모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기본소득제 운용에 투입될 재원 180조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출에서 그만큼을 줄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돈을 똑같이 나눠주는 기본소득제는 필연적으로 기존 복지체계의 개편과 더불어 증세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간 싱크탱크 ‘랩(LAB)2050’은 새로운 세원 없이도 2021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30만원씩 지급하는 방안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내놓았다. 각종 비과세 감면 제도와 기초연금 등 현금성 복지 예산을 통폐합해 130조원을 마련하고 재정 구조조정을 병행해 총 187조원의 재원을 확보한다는 게 뼈대다. 이원재 랩2050 대표는 “우리가 설계한 국민기본소득제는 전체 국민소득의 10%가량을 사전 분배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며 “모의실험 결과 불평등을 완화하고 빈곤을 감소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21대 국회에 처음 진출한 기본소득당은 매달 60만원의 기본소득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있다. 한해 360조원 규모다. 이 당의 기본소득 설계안을 보면, 월 60만원의 기본소득은 시민배당, 탄소배당, 토지배당 등 세 가지로 구성된다. 시민배당은 모든 국민의 종합소득에 15%를 일률적으로 과세해 마련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전체 토지자산에는 1.5%의 토지보유세를 매긴다. 지구와 토지, 천연자원, 생태환경 등은 모두의 자산이라는 ‘공통부’(共通富)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김준호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신설 재원이 일반 조세로 편입돼 국가재정 운용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본소득 운영에만 사용되도록 설계됐고, 징세 즉시 기본소득으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기에 실제 증가 규모는 360조원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공세도 만만찮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전국민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복지체제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보완재로서의 가치도 없다”고 반박한다. 양 교수는 “단돈 1만원짜리 기본소득이 연 6조2400억원이 소요될 정도로 재정 소요가 큰 제도로서 여타 소득보장 제도의 발전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했다. 복지국가의 강화를 위해 사각지대 문제는 기본소득이 아닌 건강보험 방식으로 대응하고 근로연령대 인구의 소득보장과 직업역량을 키워주는 평생학습 체제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게 양 교수의 주장이다.

■ 포퓰리즘 논란 넘어설까?

기본소득은 정기성·현금성·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의 다섯 가지 조건에 따라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소득수준이나 지역, 나이 등을 따지지 않고 주는 게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수당이라기보다 재난수당의 성격에 가깝다. 경기도가 지급한 ‘재난기본소득’도 일시적이라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의 요건을 갖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본소득보다 전국민 고용보험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시장은 “서구에서 확립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칙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을 지원하자는 것”이라며 “기본소득은 실질적으로 적용하기엔 너무나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기본소득, 물론 기본소득이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합의도 뒤따라야 한다. 현재는 현금을 무조건적으로 똑같이 나눠준다는 포퓰리즘이라는 지적과 함께 기술 혁신과 일자리 변화, 불평등 심화 등을 고려한 미래를 위한 해법이라는 주장이 상존한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기초교육학부)는 “우리가 당면한 노동시장의 상황과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를 고려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원재 대표는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분배 체계의 큰 틀을 바꿔야 한다”며 “국가기본소득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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