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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경영권 승계에 발목잡힌 영광…한국 재벌의 살아있는 역사 ‘이건희’

등록 :2020-07-28 04:59수정 :2020-08-0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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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11화 삼성과 이건희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3년 10월28일 오후 삼성그룹 ‘신경영 선언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들어서고 있다. 수행원의 손을 잡은 모습은 무척 힘겨워 보이고, 아래를 향한 시선은 무겁게 느껴진다. 이 회장은 이때로부터 6개월여 뒤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김봉규 기자 촬영.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3년 10월28일 오후 삼성그룹 ‘신경영 선언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들어서고 있다. 수행원의 손을 잡은 모습은 무척 힘겨워 보이고, 아래를 향한 시선은 무겁게 느껴진다. 이 회장은 이때로부터 6개월여 뒤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김봉규 기자 촬영.

한국 최고의 부자, 여전히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그가 보유한 상장사 주식 총액만 지난달 말 기준으로 15조원이 넘는다. 그나마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줄어든 게 이만큼이다. 올해 초엔 17조원에 이르렀다. 상장사 주식 부자 2위의 보유액이 7조2천억원이니 범접할 수 없는 1위이다. 2위는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많은 주식이 이 회장 부자에겐 탁월한 힘이었지만, 거꾸로 이들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든 화근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에겐 현재 상황이다. 1987년 말 삼성그룹 회장을 차지하고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까지 27년간의 이건희 회장의 행적을 <한겨레>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살펴봤다. 해설 김진철

1987년 삼성그룹 승계 때부터
2014년 심근경색 쓰러지기까지
27년간 그의 행적을 살펴본다
반도체·휴대전화 도약 등 성과에도
불법 탈법 동원한 지분 승계로
오너 리스크가 변화의 발목을 잡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거처는 6년이 넘도록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20층에 있다. 2014년 5월10일 서울 이태원동 집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맞았다. 이후 응급조처로 심폐기능은 되찾았다고 한다. 인공호흡기나 특수 의료장비 없이 스스로 호흡을 하고 있으나, 의식은 없다는 게 6년여간 삼성 쪽 여러 관계자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이 회장의 사망설은 이 기간 종종 제기됐다. 특히 초기 3~4년 동안 10여차례 사망설이 스쳐 지났다. 언론사들은 때마다 그의 부고 기사를 업그레이드하며 보관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말실수를 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재판을 받던 때였다. “이건희 회장님이 살아 계실 때”라고 했다가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로 정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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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마지막 등장

이 회장은 쓰러지기 직전께 언론에 등장하는 일이 뜸했다. <한겨레>에 이 회장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심근경색을 일으키기 6개월 남짓 전인 2013년 10월 삼성그룹이 개최한 만찬 행사 때였다.

만찬 행사에 나타난 그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이때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특히 오른손이 주목됐다. 그는 사진에 담기지 않은 수행원의 손을 움켜쥐고 있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경영 복귀 뒤 그해 말까지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2011년 말께부터 혼자 걷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12년 초 신년하례회 등에 등장한 이 회장은 수행원이나 가족의 손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건장한 수행원이 이 회장의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서야 겨우 서 있는 장면도 기자에게 종종 목격됐다.

이 회장은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50대 후반에 폐암 진단을 받고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엠디 앤더슨 암센터’에서 수술을 받고 건강을 찾았다. 이후로도 이 회장은 겨울에는 하와이 등지로 휴양을 떠나고 집에 완벽한 수준의 공기 청정 시스템을 갖추는 등 폐질환 재발을 예방해 왔다.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아온 이건희 회장이 가족과 함께 2000년 4월6일 삼성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해 귀국 절차를 밟고 있다. 이때 이 회장은 58살이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동행했다.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아온 이건희 회장이 가족과 함께 2000년 4월6일 삼성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해 귀국 절차를 밟고 있다. 이때 이 회장은 58살이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동행했다.

삼성그룹이 2013년 10월 연 만찬은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20년 전이었던 1993년 6월, 이 회장은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말이 ‘선언’이지 사실은 임직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불러 장시간 강연을 통해 ‘군기’를 잡았던 셈이다.

이보다 3개월 전인 1993년 3월22일 이 회장은 이미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삼성그룹 창립 55돌 기념식에서였다. <한겨레> 3월23일치에 실린 사진에는 이 회장이 연설을 하는 배경에 ‘제2창업 5주년 기념’이라고 쓰여 있다. 5년 전이라면 1988년, 이 회장이 삼성그룹 수장에 오른 직후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3월22일 열린 삼성그룹 창립 55돌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당시 &lt;한겨레&gt; 3월23일치에 실린 사진에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하기 위한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고 사진에는 ‘제2창업 5주년 기념’이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 있다. 이 사진은 당시 삼성그룹에서 제공받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3월22일 열린 삼성그룹 창립 55돌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당시 <한겨레> 3월23일치에 실린 사진에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하기 위한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있다’는 설명이 달려 있고 사진에는 ‘제2창업 5주년 기념’이라는 글씨가 크게 붙어 있다. 이 사진은 당시 삼성그룹에서 제공받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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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서 경영 수업 시작

이 회장의 경영 수업은 언론사에서 시작했다. 1966년 10월 동양방송(TBC)에 입사한 뒤 1968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을 거쳐 45살이던 1987년 12월 회장 자리에 오른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한 직후였다.

1987년 12월 이건희 회장의 취임식. 45살이던 이 회장보다 나이 많은 주요 임원들이 즐비하다. 이 사진은 1999년 12월 &lt;한겨레21&gt; 289호에 실렸다. 이 회장은 &lt;한겨레&gt; 창간 이전에 취임했다. 사진은 삼성그룹에서 자체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lt;한겨레21&gt; 사진 설명에는 ‘이 회장은 취임 이후 경영의 질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업확장전략은 대부분 실패했다’고 적혀 있다. 이 회장 취임 이래로 12년이 지난 이때는 외환위기 중반을 넘어설 때였다.
1987년 12월 이건희 회장의 취임식. 45살이던 이 회장보다 나이 많은 주요 임원들이 즐비하다. 이 사진은 1999년 12월 <한겨레21> 289호에 실렸다. 이 회장은 <한겨레> 창간 이전에 취임했다. 사진은 삼성그룹에서 자체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21> 사진 설명에는 ‘이 회장은 취임 이후 경영의 질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업확장전략은 대부분 실패했다’고 적혀 있다. 이 회장 취임 이래로 12년이 지난 이때는 외환위기 중반을 넘어설 때였다.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물려받은 것은 이병철 회장의 결정이었다. 물론 장자 상속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 재벌의 생리상 당연한 일은 아니지만 셋째에게 물려준 이유가 있었다. 1969년 장남 이맹희는 차남 이창희와 함께 이병철 회장의 비리를 박정희 청와대에 고발하는 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맹희-이건희 형제의 후계를 둘러싼 암투 결과 이건희 회장이 승리했다는 풀이도 있다. 창업회장 사후 두 형을 제친 이 회장은 전체 그룹을 서둘러 장악할 필요성이 컸다. 1988년 회장 취임 직후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나선 것은 이런 맥락으로도 이해된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듬해인 1994년 9월 개최한 ‘삼성가족 한마음 축제’ 역시 조직 다잡기의 일환이었다. 이 행사는 ‘손잡은 우리, 영원한 삼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렸고 이 회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날 세계는 국가와 이념의 장벽이 갈수록 얇아지고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경쟁시대에 살아남아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세계 초일류가 되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고 자기혁신의 노력을 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 회장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이른바 ‘위기경영’의 시작이었다. 이 회장은 때마다 ‘위기’를 강조하며 삼성그룹 내부에 긴장감을 불어넣곤 했다.

1994년 9월9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삼성가족 한마음축제’가 열렸다. 삼성그룹 임직원과 가족 등 8만여명이 잠실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삼성그룹은 신경영 실천의지를 다지기 위해 개최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1994년 9월9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삼성가족 한마음축제’가 열렸다. 삼성그룹 임직원과 가족 등 8만여명이 잠실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삼성그룹은 신경영 실천의지를 다지기 위해 개최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신경영 선언을 통해 그룹 내부 장악에 힘쓴 이건희 회장은 외부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활동이 활발했다. 전경련은 이병철 회장이 주도해 설립한 재벌 총수들의 모임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부정축재자 처리 과정에서 이병철을 비롯한 재벌 회장들은 처벌받기 직전까지 가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산업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모두 풀어줬다. 재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단체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고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은 이병철을 만나 경제단체를 만들어 정부 산업정책에 부응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이병철이 만든 경제재건촉진회는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꾼 뒤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다시 명칭을 바꿨다. 초대 회장이 이병철 회장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 10대 그룹 회장들이 1990년 5월10일 전경련회관에서 정부의 ‘5·8 조처’에 따라 비업무용 보유 부동산 1500만평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촬영 진정영 기자. 노태우 정부는 당시 극성이었던 부동산 투기를 해결하고자 재벌그룹에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요구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 10대 그룹 회장들이 1990년 5월10일 전경련회관에서 정부의 ‘5·8 조처’에 따라 비업무용 보유 부동산 1500만평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촬영 진정영 기자. 노태우 정부는 당시 극성이었던 부동산 투기를 해결하고자 재벌그룹에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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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비자금 250억원

전경련은 재벌과 군사독재정권을 연결하는 구실을 했다. 정경유착을 통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비자금을 조성했고 재벌은 이권을 챙기고 자유롭게 문어발 확장에 나섰으며 도덕적 해이를 일삼았다. 이런 정권과 재벌의 밀월관계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금 가기 시작했다. 문민정부는 출범 초기에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공정거래법을 강화하면서 재벌을 견제했다. 그러나 문민정부 말기에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은 재벌개혁의 초심이 지속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1월21일 30대 재벌그룹 회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경제운용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문민정부 출범 1년이 채 안된 때였다. 왼쪽부터 구자경 엘지그룹 회장, 최종현 에스케이그룹 회장, 김영삼 대통령, 이건희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등이 보인다. 이들은 웃고 있지만, 당시는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통해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5개월밖에 안된 때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던 때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1월21일 30대 재벌그룹 회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경제운용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문민정부 출범 1년이 채 안된 때였다. 왼쪽부터 구자경 엘지그룹 회장, 최종현 에스케이그룹 회장, 김영삼 대통령, 이건희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등이 보인다. 이들은 웃고 있지만, 당시는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통해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5개월밖에 안된 때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던 때다.

3당 합당을 통해 집권한 문민정부가 쿠데타 세력과 거리를 두고 재벌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당시 비자금을 전경련이 앞장서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 중 한 명인 서석재 총무처 장관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조건으로 일부 기자들에게 전직 대통령 비자금설을 흘렸고 이후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증거를 공개하며 폭로했다. 주요 재벌 회장들이 비자금 문제로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는 가운데, 이건희 회장도 1995년 11월8일 대검에 소환된다. 이 회장은 처음에 80억원만 바쳤다고 버티다 현대그룹과 같은 액수인 250억원을 시인하기까지 10시간 이상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1995년 12월18일 서울 서초동 법원 앞. 점심시간이라 재판이 휴정되자 이건희 회장 등 재벌 회장들이 법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 회장 뒤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등이 보인다. 이들 재벌 회장의 표정이 무심한 듯, 여유로운 듯, 불법행위를 저질러 재판을 받는 피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정우 기자 촬영.
1995년 12월18일 서울 서초동 법원 앞. 점심시간이라 재판이 휴정되자 이건희 회장 등 재벌 회장들이 법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 회장 뒤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등이 보인다. 이들 재벌 회장의 표정이 무심한 듯, 여유로운 듯, 불법행위를 저질러 재판을 받는 피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정우 기자 촬영.

검찰은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돈을 준 혐의로 이 회장을 비롯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당시 “한국 재벌 총수들이 ‘총알’을 피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구속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은 것이지만, 훗날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을 예언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8월 이 사건과 관련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의 첫 전과다. 검찰은 9월 항소를 하지 않기로 해 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은 개천절을 맞아 이 회장 등 재벌 총수를 비롯해 23명을 사면복권했다.

이런 결과는 예견된 측면도 크다. 1996년 1월 김영삼 대통령은 이 회장을 비롯한 재벌 회장단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하면서 온건한 태도를 취했고, 이 회장은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 자원봉사 전산망 공동구축에 앞장서고 중소기업전시관을 마련해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개관식에 얼굴을 비치는 등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사회활동 행보에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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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레이싱

1997년은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해이고 동시에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 이 회장은 매우 여유로운 모습으로 <한겨레> 지상에 등장했다. 뜻밖에도 출판기념회다. 이건희 회장은 1997년 12월1일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제목의 에세이 모음집을 펴내며 신라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참석 인사들은 전·현직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회의장과 감사원장 등 면면이 화려했다. 한때 재벌 회장들의 출간이 유행이기도 했지만, 이때는 이건희 회장 취임 10년이 되는 때였다. 이를 기념하는 여러 이벤트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집 &lt;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gt; 출판기념회가 1997년 12월1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현재 전 국무총리, 이시윤 감사원장, 고건 국무총리, 오명 동아일보 사장, 이건희 회장, 김수한 국회의장, 김상하 대한상의 회장. 삼성그룹에서 찍어 제공한 이 사진은 &lt;한겨레&gt; 12월2일치 11면에 실렸다.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출판기념회가 1997년 12월1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현재 전 국무총리, 이시윤 감사원장, 고건 국무총리, 오명 동아일보 사장, 이건희 회장, 김수한 국회의장, 김상하 대한상의 회장. 삼성그룹에서 찍어 제공한 이 사진은 <한겨레> 12월2일치 11면에 실렸다.

이 회장은 평소 자신의 숙원사업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룹 회장 취임 직후인 1989년 자동차산업 규제가 풀리면서 자동차 진출 준비에 들어갔고 신경영 선언에 나서는 1993년 그룹 안팎의 여러 반대를 물리치며 승용차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정부가 바뀐 뒤인 1995년 3월 이 회장이 꿈에 그리던 삼성자동차를 설립했고 1997년 5월 삼성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이 열렸다. 이미 중복 투자에 따른 우려가 컸던데다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이 회장의 차 사업은 처절히 실패하고 만다. 삼성차가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에 넘어간 건 2000년 9월1일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을 시승하고 있다. 당시 개발명은 KPQ, 이후 이 차는 SM5로 출시된다. 당시 출시 예정 일정은 1998년 3월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을 시승하고 있다. 당시 개발명은 KPQ, 이후 이 차는 SM5로 출시된다. 당시 출시 예정 일정은 1998년 3월이었다.

자동차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 회장은 스포츠카 레이싱으로 미련을 풀었던 것 같다. <한겨레21>은 2009년 5월 이 회장이 스포츠카 레이스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특종 보도했다. 이때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이 회장이 경영에서 퇴진한 이후였다. 그래서 당시 에버랜드가 운영하는 자동차경주장(스피드웨이)에서 ‘나홀로’ 레이스를 즐기다 포착된 이는 이건희 전 회장으로 표기됐다. 당시 <한겨레21> 취재진은 포르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최고급 스포츠카 10여대를 줄세워 놓고 바꿔 타는 이 회장의 모습을 확인했다.

2009년 4월30일 오전 이건희 회장이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 유운리에 있는 자동차경주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카(SL63-AMG)를 직접 운전해 질주하는 모습.(위) 포르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10여대의 스포츠카를 바꿔 타보던 이 회장(아래 왼쪽)은 몇 시간 뒤 조수석으로 옮겨 탄 채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경주장을 떠났다. 류우종 기자 촬영.
2009년 4월30일 오전 이건희 회장이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 유운리에 있는 자동차경주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카(SL63-AMG)를 직접 운전해 질주하는 모습.(위) 포르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10여대의 스포츠카를 바꿔 타보던 이 회장(아래 왼쪽)은 몇 시간 뒤 조수석으로 옮겨 탄 채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경주장을 떠났다. 류우종 기자 촬영.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으로 재벌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재벌이 지목됐고,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는 재벌에 대규모 사업 구조조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대우그룹은 해체되기까지 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정·재계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기존 기업들이 현재의 생산체제나 유통체제를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김 대통령 곁에 앉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정·재계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기존 기업들이 현재의 생산체제나 유통체제를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김 대통령 곁에 앉았다.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의식의 성장으로 재벌들은 사회적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1994년 9월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로 창립한 참여연대는 1997년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0년에는 이재용 현 부회장의 증여세 탈루를 주장하며 국세청에 과세를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100일간 벌이기도 했다. 소액주주 운동은 참여연대에서 18년간 사무처장, 정책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김기식 전 의원과 김상조 현 청와대 정책실장,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중국대사 등이 주도했다.

2001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는 당시 장하성(왼쪽)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과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실장. 강창광 기자 촬영.
2001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는 당시 장하성(왼쪽)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과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실장. 강창광 기자 촬영.

삼성그룹의 가장 큰 위기는 내부로부터 터져나왔다. 검사 출신으로 삼성 구조조정본부 재무팀과 법무팀에서 일하다 2004년 퇴직한 김용철 변호사가 2007년 10월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다.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자 2008년 1월 조준웅 삼성비자금 특별검사 팀이 출범해 수사를 벌였다. 당시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과 주요 임원들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했고 그 결과 4조5천억원 규모의 차명재산이 드러나 이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가 밝혀졌다. 2008년 4월17일 조준웅 특검이 이런 내용을 발표하자, 이건희 회장은 4월22일 곧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회장 자리를 내려놨다.

2008년 2월28일, 당시 전무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촬영.
2008년 2월28일, 당시 전무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촬영.

이건희 회장은 특검 조사를 막바지에 받았다. 2008년 4월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시작한 이 회장이 다음날인 5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취재진에게 둘러싸였다. 김진수 기자 촬영.
이건희 회장은 특검 조사를 막바지에 받았다. 2008년 4월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시작한 이 회장이 다음날인 5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취재진에게 둘러싸였다. 김진수 기자 촬영.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퇴진 성명을 발표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뒤에 서 있는 이들은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다. 김진수 기자 촬영.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22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퇴진 성명을 발표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뒤에 서 있는 이들은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다. 김진수 기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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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과 조준웅

김용철 변호사는 조준웅 특검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특수부 검사 출신이기도 한 김 변호사가 수사 기간과 투여 인력 등에 의구심을 품고 일반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관하라고 요청했으나 조 특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특검 마지막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공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지도 않았다. 2009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최종 선고받은 이 회장은 넉달여 뒤인 12월29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단독 특별사면을 받았고, 2010년 3월24일 경영에 복귀한다.

조준웅 특검과 관련해 2012년 8월 <한겨레> 단독 보도로 조 특검의 아들이 2010년 1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사실이 확인됐다. 조 특검 아들의 삼성전자 입사 진행 과정은 이건희 회장 등의 재판이 열리고 있던 2008~2009년 시작됐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특검은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이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면죄부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일이 그들에게 행복하게 마무리되진 않았다. 삼성 비자금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2012년 이 회장의 맏형인 이맹희씨가 승계 과정에서 독차지한 차명 유산 중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걸어왔다. 25년 전 이병철 회장이 숨지고 이건희 회장이 승계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위한 불법적 요소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형제간에 유산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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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맹희와의 유산 다툼, 말다툼

당시 이맹희-건희 형제의 말다툼은 외신들로부터 ‘막장 드라마’라는 지적을 받기까지 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사뭇 충격적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소를 제기한 이맹희씨에게 “수준 이하다. 한 푼도 내줄 수 없다”고 먼저 불을 지피자, 이맹희씨는 “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했다. 건희는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며 맞불을 놨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은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날것 그대로 감정을 드러냈다.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 아버지가 ‘맹희는 내 자식이 아니다’ 하고 내제꼈다. 우리 집에서는 퇴출된 양반이다.” 이맹희씨는 81살, 이건희 회장은 70살이었던 때다.

이건희 회장이 2012년 5월24일 오후 유럽 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했고, 이맹희씨의 소송 건으로 기자들의 관심은 이건희 회장에게 집중됐다. 기자들의 예상과 달리 이 회장은 맹렬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맏형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 회장의 얼굴에 분노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정아 기자 촬영.
이건희 회장이 2012년 5월24일 오후 유럽 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했고, 이맹희씨의 소송 건으로 기자들의 관심은 이건희 회장에게 집중됐다. 기자들의 예상과 달리 이 회장은 맹렬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맏형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 회장의 얼굴에 분노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정아 기자 촬영.

이맹희씨는 2013년 2월 1심과 2014년 2월 2심에서도 졌다. 그리고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며 “소송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간 관계라 생각했다. 가족간 화해에 대한 진정성은 어떤 오해도 없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두달여 뒤 동생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형은 폐암 투병 끝에 1년6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그들을 막장 싸움으로 몰아간 재산 상속과 그룹 승계는 지금까지도 삼성가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 해설자인 김진철 기자는 24시팀(현 사건팀) 팀장, esc팀장, 산업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한겨레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기사를 썼지만 주로 삼성 등 재벌그룹을 취재한 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기획 팩트스토리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 실화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3년 10월28일 오후 삼성그룹 ‘신경영 선언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들어서고 있다. 수행원의 손을 잡은 모습은 무척 힘겨워 보이고, 아래를 향한 시선은 무겁게 느껴진다. 이 회장은 이때로부터 6개월여 뒤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김봉규 기자 촬영.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3년 10월28일 오후 삼성그룹 ‘신경영 선언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들어서고 있다. 수행원의 손을 잡은 모습은 무척 힘겨워 보이고, 아래를 향한 시선은 무겁게 느껴진다. 이 회장은 이때로부터 6개월여 뒤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김봉규 기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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