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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경제 무기력증 깊어지나

등록 :2019-09-03 18:13수정 :2019-09-0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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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저물가·저성장_8월 소비자물가상승률 -0.04

65년 통계작성 이래 최저치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물가
계절·국제유가 영향따라 하락
개인서비스 물가는 1.8% 올라

정부 “일시적 현상” 선그었지만…
전문가들 “디플레 대비” 주문
“수요 부진과 경기위축 상황서
빠져나올 정책수단 총동원해야”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하락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가 현실화됐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수요 부진 탓에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르게 된 셈이다. 그러나 물가관리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공급 측면 변동성의 영향이 크다며 디플레이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3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지난해 같은 달(104.85) 대비 0.0% 상승률을 보였다.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은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0.0%가 됐지만, 소수점 세자릿수까지 따지면 0.038% 하락해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다. 그 전에는 1999년 2월 0.2% 상승한 것이 최저였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0.8%를 기록한 이후 7월까지 줄곧 0%대 중반을 유지해왔다.

※ 그래픽을(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8월 전체 상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3% 하락했지만 서비스물가는 1% 올랐다. 상품 가운데 농축수산물 물가는 7.3% 하락해, 전체 물가상승률을 0.59%포인트 끌어내렸다. 온화한 기후 조건 등으로 생산량이 증가한 결과다. 국제유가 하락세로 석유류 물가도 6.6% 떨어져, 0.15%포인트 하락 효과를 가져왔다. 서비스물가 가운데 집세는 0.2% 하락했지만, 개인서비스는 1.8% 올랐다. 계절 등 요인에 따라 가격 영향을 많이 받는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는 0.9% 상승했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대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지난해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의 기저 효과와 유류세 인하 등 정부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조사 대상 460개 품목 가운데 32%인 151개의 가격이 하락해 지난해 8월 하락한 품목(122개)보다 많지만 대부분 농축수산물과 석유류”라며 “상품 및 서비스 전반의 지속적인 물가 하락으로 정의되는 디플레이션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의 정의에만 집착할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복영 경희대 교수(경제학)는 “0%대 초중반의 저물가가 지속되는 현 상황만으로도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금리인하 등 단발적 통화정책을 넘어선 한국형 양적 완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국제유가 하락 등 공급 요인이 섞여 있어서 당장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디플레이션을 경험할 확률이 좀 더 높아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수요 부진과 경기 위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생산성 저하를 반전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구조개혁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급락세도 이런 위기의식을 뒷받침했다. 이날 한국은행은 2분기 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0.7%로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더구나 지난해 4분기 -0.1%, 올해 1분기 -0.5%에 이어 하락폭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는 명목 국내총생산액을 실질 국내총생산액으로 나눠 구하는데, 국내에서 일어난 모든 경제활동을 포괄해 산출하는 물가지수다. 국민 경제의 무기력증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가관리 당국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과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이날 아침 9시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거시정책협의회를 열어 “최근 저물가 기조는 공급 쪽 변동성 확대에 따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차관은 “변동성이 큰 공급 측면의 요인과 서민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요인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1% 초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공급 측면의 기저 효과가 완화되는 연말부터는 물가상승률이 0% 중후반대로 올라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경제 전반에서 저물가 현상이 나타나는 만큼, 경제 구조 변화에 따른 긴 흐름의 물가 변동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 부총재는 “세계화, 기술 진보 등 구조적 영향이 확대돼 경기와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종전보다 약화된 것으로 분석된다”며 “한국의 경우 대외개방도가 높고 정보통신(IT)기술 보급과 온라인 거래 확산이 빠르며 인구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박복영 교수는 “디플레이션으로 볼 수 없다는 물가 당국의 안이한 반응이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실장도 “세계 각국이 저물가인 것은 맞지만 한국처럼 심각한 곳은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지난 7월 기준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1.8%, 영국 2.1%, 프랑스 1.3%, 독일 1.1% 등으로 한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노현웅 정남구 이경미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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