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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협력과 연대의 힘, 농민이 시장을 주도한다

등록 :2013-12-17 19:37수정 :2013-12-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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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협동조합인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의 작업장에서 자동으로 배를 선별해 포장하고 있다.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청과협동조합인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의 작업장에서 자동으로 배를 선별해 포장하고 있다.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사회적 경제] ‘농축산협동조합의 도시’ 모데나를 가다
지난 4~6일 ‘농축산협동조합의 도시’ 모데나를 찾았다. 모데나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있는 인구 18만명의 작은 도시이다. 주도 볼로냐에서 북서쪽으로 버스로 1시간가량 걸린다. 모데나의 협동조합들은 중간상이 가격을 결정하고 판매주도권을 갖는 구조를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100년 전부터 생겨났다. 이제 모데나의 협동조합들은 시장의 경쟁 속에서 생산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내는 성공 사례가 되고 있다.

모데나의 배 생산 농가들이 만든 청과협동조합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Fruit Modena Group, FMG). 수매한 배를 선별하고 포장하는 공장라인에는 작은 표주박처럼 생긴 배들이 쉼 없이 지나간다. 40년 역사의 캄포프리고(Campofrigo di Campogalliano)와 유로프루타(Eurofrutta di Sorbara)가 2007년에 합병해 만들어졌다. 조합원은 585명, 연평균 8만t의 배를 생산해 4500만유로(약 65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포장상품의 90%를 수출하며, 이 가운데 80%가 외국으로 팔려 나간다.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은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다. 품종별 전문가를 두고 수확 시기를 조정해 7~8월에 품종별 적정 수확 시기를 알려준다. 덕분에 조합원들은 시중 판매가보다는 좋은 가격으로 팔 수 있다. 계약할 때 납품가격의 15%를 선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두번에 걸쳐 나눠 받는다. 조합원의 생산비 보장도 하고, 조합의 상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대금 결제 시기와 방법은 매해 조합원 회의에서 결정한다.

모데나대학의 파올라 베르톨리니 교수(오른쪽)와 엔리코 조반네티 교수.
모데나대학의 파올라 베르톨리니 교수(오른쪽)와 엔리코 조반네티 교수.

100년전 중간상 횡포 벗으려 시작
수확시기 조절로 소득 안정 돕고
공동상표로 상품 부가가치 높여
조합 가치 담아 운영도 투명하게
자연재해 발생땐 지역사회 지원도
“조합원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워”

실비오 올리바 부이사장은 “협동조합이 시장가격 변동폭을 조정하는 구실을 해 농가소득 안정을 돕는다”며 “이탈리아 전체 배 재배 농가의 90%가 협동조합에 가입해 있다”고 말했다.

와인협동조합 칸티나(Cantina)는 모데나 포도농가의 안정적 소득을 지탱하고 있었다. 포도 재배 농민 1600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람브루스코(Lambrusco) 포도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다. 적포도주에 천연 탄산가스를 녹인 이 와인은 마실 때 깔끔한 느낌을 주는 대중적인 와인이다. 네 곳의 공장에서 연간 2800만유로(약 4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연평균 300만ℓ를 만드는데, 공장에 들어서자 4개의 커다란 와인 숙성고가 눈길을 끌었다.

1903년에 설립된 칸티나 와인협동조합은 80년대 세차례의 합병 과정을 거쳤다. 규모가 커진 뒤 2000년 초반에 공장을 재건축하는 등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카를로 피치니니 칸티나 부이사장은 “조합원의 출자금과 연합회 보증으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공장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1960~70년대 이탈리아 농축산협동조합은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지만, 그 뒤로는 스스로 협력과 연대로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모데나대학에서 지역 및 농업 정책을 연구하며 이번 탐방에 함께한 파올라 베르톨리니 교수는 “모데나 지역에서 협동조합원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며 “협동조합을 통해 중간상의 가격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협동조합의 공동상표로 상품의 부가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대학에서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있는 엔리코 조반네티 교수는 “농업 분야의 협동조합이 잘되려면 금융이나 유통 쪽의 탄탄한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생산물을 잘 유통하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개별 협동조합은 이러한 능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협동조합 간의 협력이나 연대로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모데나에서는 여러 협동조합이 종횡으로 연대하고 있다. 청과협동조합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은 아피오 코네르포(APO conerpo)라는 상위 협동조합에 속해 행정, 기술 등의 도움을 받는다. 가공품을 생산하는 협동조합들의 단체에 가입해 지원을 받고 있고, 다른 협동조합인 유로캄포(Eurocampo)와는 판매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치즈협동조합인 카세아리아의 거대한 치즈 진열대.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치즈협동조합인 카세아리아의 거대한 치즈 진열대.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칸티나 협동조합의 와인저장탱크.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칸티나 협동조합의 와인저장탱크.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치즈 덩어리를 자르는 모습.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치즈 덩어리를 자르는 모습.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 제공, 이현숙 소장

개별 생산자도 여러 협동조합에 가입해 도움을 받는다. 한가지 생산품에 대해서는 한곳의 협동조합에만 가입할 수 있지만 품종에 따라 여러 협동조합과 관계를 맺기도 한다. 조합원들이 협동조합 원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생산자로서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협동과 연대로 규모를 키워가면서, 협동조합의 가치를 담아내고 운영을 투명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와인협동조합 칸티나는 포도농가 조합원이 포도를 수매할 때 조합원별 포도의 양과 질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공정하게 계산이 되도록 해놓았다. 그리고 이 자료를 조합원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들이 믿을 만한 상품이 되도록 품질 검사를 위한 인력과 고가의 전문장비도 갖추고 있었다. 청과협동조합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은 최신광학기술인 근적외선 시스템으로 품질을 선별한다.

모데나의 품목별 협동조합은 협회를 만들어 품질 관리에 적극 관여한다. 낙농가 2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치즈협동조합 카세아리아(Casearia)는 협회의 검사원이 주기적으로 공장을 찾아, 발효중인 치즈 덩어리를 직접 검사해 인증 표시를 해준다. 안젤로 벨로이 카세아리아 이사장은 “파르미자노레자노 치즈는 에밀리아로마냐와 롬바르디아 지역으로 원산지가 제한되어 있어 협회에서 엄격하게 품질 심사를 해 인증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카세아리아 협동조합의 치즈 가공시설에는 노란 북처럼 생긴 치즈 덩어리 1만여개가 진열대에 칸칸이 자리잡고 있었다. 불량률은 평균 0.04% 정도로 낮다. 벨로이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통한 철저한 품질 관리로 불량률을 낮출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모데나의 협동조합은 여러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2012년 5월 모데나 북쪽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청과협동조합 프루이트 모데나 그룹은 피해를 본 사과농가 돕기에 발벗고 나섰다. 조합원 회의를 거쳐 낙과로 버려지는 사과를 수매했다. 와인협동조합 칸티나는 지역의 암환자 협회를 지원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조합원들과 후원의 자리를 마련한다. 치즈협동조합 카세아리아는 치즈를 만들고 남는 부산물을 주변의 축산농가에 사료로 제공한다. 치즈 부산물을 먹인 돼지로 프로슈토 햄(돼지 뒷다리로 만든 햄)을 만드는데,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품질 높은 햄으로 경쟁력이 높다.

모데나의 농축산협동조합을 둘러본 외씨버선길(봉화·영양·청송·영월 생태탐방길)협력사업단 관계자들은 “농민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연대하고, 규모를 키워 중견기업에 버금가게 성장시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하지만 땅이 좁고 농협이 하향식 피라미드 조직인 우리나라에서는 토양 자체가 달라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파올라 베르톨리니 교수는 “많은 이탈리아 농업협동조합도 초기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땅이 좁은 한국에서도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는 지속적인 협동조합 교육으로 얼마든지 좋은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데나(이탈리아)/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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