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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8 13:56 수정 : 2006.11.28 14:08

방문판매 업자들은 사람을 모집한 다음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강의를 진행하며 판촉을 독려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한겨레 이정용 기자

광고 보고 갔더니 무조건 출근하라 … 알고 보니 방문판매 시키는 유령회사

‘관리직 친정오빠처럼 믿고 의지하며 내 사업처럼 관리할 분
(공·사직·자영업자 우대) 35~60세 남녀 연봉 3천
교우환영 HC김**) 전화 6325-2***’

서울 마포구 벼룩시장 전면에 올라온 줄광고 문구다. 과연 어떤 회사일까?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광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네 39살입니다. 그런데 거기가 어떤 회사죠?”
“여기는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곳이고 관리직을 뽑고 있습니다. 전화주신 분, 목소리 좋네요. 그럼 내일 오전에 면접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무실은 충무로 전철역 근처입니다. 오셔서 전화 주세요.”

영업직이 아니고 내근하면서 관리를 하는 업무라는 설명이다. 이튿날, 약속시간 좀 지나자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제 통화한 회사인데요. 오늘 오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정이 생겨서 못 갔습니다”
“그렇다면 오후에도 면접이 있으니 2시까지 오세요.”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한 취업 희망자를 끝까지 면접 보겠다는 회사 측의 입장이 기존 취업 상식과 동떨어진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전화로 설명들은 대로 충무로 전철역 앞 건물 5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에는 50대 이상의 중년 몇 명이 안내를 맡고 있었다. 100평 이상의 사무실에 본부장 체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룹핑이 되어 모여 있었다. 한쪽에는 수백 명을 수용하는 강의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면접을 보러 왔습니까?”

복도에 대기하던 중년들은 번화가 골목에서 업소 홍보를 하는 ‘삐끼’처럼 서로 끌어가려고 난리였다. 정확히 누구와 면접을 보러왔는지 밝히지 않자 정문과 마주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그룹에 안내되었다.

50대의 한 중년이 맞이했다.

“면접 보러 오셨죠? 이리 앉으세요. 저는 H국장입니다.”

그는 청호그룹 CI가 새겨진 (주)청호일렉트로닉스라는 상호의 명함을 내보였다. H국장의 책상 앞에는 청호그룹에서 받은 최우수팀 상패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취업자의 이력서조차 요구 하지 않고 곧바로 회사 소개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스크랩북에서 2005년 8월 조선일보의 청호나이스 전면광고를 꺼내 펼쳐 보이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광고를 보고 찾아온 실업자를 면접을 통해 관리한다. 사진은 충무로에 위치한 청호일렉트로닉스 / 국장의 자리에 줄지어 놓여 있는 상패. 청호 그룹에서 최우수 판매팀에게 준다. / 오세훈 시장의 광고 현수막을 회의실에 버젓이 걸어놓고 홍보하고 있다. ECONOMY21 사진

“이분이 누군지 아시죠? 현재는 서울시장이시고 우리 회사의 고문변호를 맡았던 오세훈 변호사입니다. 우리 청호그룹은 오 변호사가 광고 모델을 했을 정도로 신뢰 있는 회사입니다. 오 변호사는 신용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서울시장이 된 것이죠.”

곧이어 청호 그룹의 역사를 소개한다며 청호그룹이 탄생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 계보도를 꺼내 보였다. 계보도 가장 상단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 회사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밀어줘서 창립됐습니다. 청호그룹 정휘동 회장은 현대그룹과 성우그룹의 후광을 입고 계신 분입니다.”

또 H국장은 “청호그룹은 정수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7개의 계열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수기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계열사의 다양한 제품을 취급해요. 우리는 환경 관련 회사예요”라고 소개했다.

국장의 면접이 끝나면 곧바로 강의실로 이동해서 정수기와 관련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이 약 1시간가량 이뤄진다. 이렇게 취업이 성사되면 취업자는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매일 출퇴근을 하며 교육을 받게 된다.

이 과정을 마친 취업자는 정규적인 월급이 아니라 정수기나 기타 제품을 판 영업사원을 관리하고 그들의 판매액 중 일부를 수당으로 받는다. 또 그 위의 국장급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사람들이 판매한 제품 전체 매출액의 5~10%를 받게 된다.

H국장은 “청호일렉트로닉스는 전국적으로 900여명의 국장이 있다. 모두 개인사업자이며 월 수익은 평균적으로 500만원은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리직 구인광고를 보고 벼룩시장을 통해 모 정수기 회사에 취업해 한 달간 다녀봤다는 한 제보자는 “처음엔 관리자라고 뽑는다. 그러나 결국엔 청첩장을 보낼 수 있는 주변 친인척과 친구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주변인에게 정수기를 팔라고 교육을 시킨다”고 밝혔다.

벼룩시장 구인란에 등록된 정수기업체의 관리직 광고 게재 상황. ECONOMY21 사진

이에 대해 청호나이스의 한 직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청호일렉트로닉스는 청호그룹의 계열사가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 판매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오세훈 시장의 광고전단물은 회수를 하고 있는데 일부에서 반납을 하지 않고 사용한 것 같다. 월 1회 본사에서 진행하는 제품교육 시 이 점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인광고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구인방식과 영업행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리직을 뽑는다는 광고로 갈 곳 잃은 실업자를 끌어들여 신(新)방판업체라는 허울로 다단계 판매 행위를 강요해 실업자를 두 번 울린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와 같은 소비자 민원, 신고가 많다. 그러나 소비자보호지침을 근거로 신 방판 업체에 대해 다단계 판매업 등록을 강제할 수 없다”며 “방문판매업으로 등록하고 사실상 다단계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는 정수기 방문판매 업체는 ‘특수판매에서의 소비자보호지침’을 통해 다단계 판매업 등록을 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시정명령 등 제재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류근원 기자 stara9@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