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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민족사적 특수성 넘어선 새 역사인식 가능한가

등록 :2010-12-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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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해 근대 인류 역사 최악의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던 아우슈비츠 1캠프의 입구. 전후 서독의 역사가들은 바이마르 체제의 붕괴와 나치즘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근대사의 특수성을 강조한 ‘존더베크’ 테제를 내세웠다. 그러나 여기엔 ‘서구적 근대’가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며, 어느 민족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나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이라는 점 때문에 비판에 직면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나치에 의해 근대 인류 역사 최악의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던 아우슈비츠 1캠프의 입구. 전후 서독의 역사가들은 바이마르 체제의 붕괴와 나치즘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근대사의 특수성을 강조한 ‘존더베크’ 테제를 내세웠다. 그러나 여기엔 ‘서구적 근대’가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며, 어느 민족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나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이라는 점 때문에 비판에 직면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양대 ‘탈식민적 해체의 모색’ 학술대회
“존더베크 테제는 서구중심·역사적 결정주의” 비판
지배서사 없는 공간·유럽연합 정체성 등 설명 못해

국민국가가 주체가 되는 일국사(一國史) 중심의 역사인식을 넘어서는 것은 전지구화 시대에 주어진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때문에 역사, 문화연구 등 다양한 방면에서 ‘트랜스내셔널’ 담론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기 위한 기준을 어디에서 찾느냐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다. 특히 개별 국민국가 안에서 숙성시켜 온 ‘민족사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은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존재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3~4일 ‘민족사적 특수성? 탈식민적 해체의 모색’이라는 이름의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독일의 ‘존더베크’(Sonderweg: 특수한 길) 테제를 기본적인 주제로 삼아,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민족사적 특수성·예외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민족사에서 벗어난 탈식민주의 역사인식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존더베크 테제는 1930년대 나치 독일을 탈출해 미국이나 영국에 정착했던 독일 사회사학자·사회과학자들이 발전시킨, 독일 역사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독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치의 파시즘 독재가 승리하자, 이들은 ‘왜 독일은 다른 ‘서구’와 달리 전체주의의 길을 걷는가’ 의문을 가졌다. 이들은 독일은 ‘정상적 경로’의 근대화를 거치지 못하고 근대화로 가는 특수한 길을 밟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다. 나치 시기를, 서구적 근대를 쫓아가지 못한 독일의 민족사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본 것이다. 위르겐 코카, 한스 울리히 벨러 등이 주장한 존더베크 테제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데이비드 블랙번, 제프 일리 등의 비판에 부딪히며 1980년대 중요한 역사 논쟁으로 번졌다.

이번 학술대회 참여자들은 주로 존더베크 테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민족사적 특수성에 대한 강조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존더베크 테제는 서구적 근대가 실현되는 ‘정상적 경로’가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은연중 서구 중심주의에 복무하게 된다. 곧 영국 근대사처럼 공업화가 부르주아지의 확대를 부르고, 이것이 자유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민주주의로 이어진다는 이상적인 모델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런 민족사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태도는,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심지어 영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이라고도 지적한다. 예컨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인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한국사 주요 논쟁인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을 살펴보고, “일제 식민지배의 구실에 대한 생각은 두 이론이 반대 입장이지만, 서구적 근대화를 역사의 보편·정상적 경로로 보는 인식은 같다”고 지적한다. 또 그는 이런 담론의 한계를 뚜렷이 드러낸다며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주의’를 비판한다. 참석자들은 민족국가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날 때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역사인식이 가능하다는 전반적인 공감대를 보인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 슈테판 베르거 맨체스터대 교수, 위르겐 코카 베를린자유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 슈테판 베르거 맨체스터대 교수, 위르겐 코카 베를린자유대 교수
슈테판 베르거 맨체스터대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간 문제를 제기한다. 개별 민족사가 존더베크 테제에 토대를 뒀다면, 유럽연합을 이루는 데 성공한 유럽사의 토대, 또는 유럽적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는 “유럽 비교사가 존더베크 테제에 근거한 민족사를 비판하고 약화시키면서도 무엇이 유럽을 통합시키는지 결정하는 데에서는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봤다. 그러나 그는 지배서사가 없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바람직한 시나리오”라며, “유럽은 ‘정체성’이라는 단위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지배서사도 없고 민족사적 역사인식마저 없는 공간이라면, 과연 무엇을 근거로 삼아 연대가 이뤄질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비판들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존더베크 테제를 옹호하고 있는 위르겐 코카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의 발표문은 이런 의문에 홀로 호응한다. 그는 역사적 결정주의, 서구 중심주의 등 존더베크 테제에 대한 비판을 대부분 받아들이지만, “독일이 왜 비슷한 조건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나아갔느냐”는 한정된 질문에 대한 한정된 답으로서 존더베크 테제의 역사적 타당성은 여전하다고 봤다. 곧 “독일이 유럽 파시즘의 주도적 나라였다는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반성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성찰하고자 하는 독일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비(非)파시즘적인, 덜 독재적인 대안적 역사 발전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구 지향적 비교 방법에는 정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모든 나라와 모든 지역은 그들 자신만의 존더베크를 지니고 있을 것”인데, 그것을 과거에 대한 성찰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동력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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