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다산을 현대 행정학의 렌즈로 조명한 책 <다산의 행정사상>과 <다산의 행정개혁>의 출간기념회가 열린 지난 30일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이를 주도한 세 명의 학자(왼쪽부터 최병선 서울대 교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영평 고려대 명예교수)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고전 연구 새모델 ‘다산행정연구모임’
‘다산 고전’ 번역본·기존연구 바탕현대 행정학의 눈으로 6년여 토론
‘제도주의’ 사상 찾아내고 책으로
“서양 학문 틀 벗어나는 계기 희망”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나올 정도로 고전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고전은 대부분 우리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적혀 있기 때문에 그 경향은 더욱 심하다. 여기에 서양에서 비롯된 주류 학문 체계 탓인지, 똑같이 ‘번역’을 필요로 하면서도 우리나라 고전은 서양의 고전보다도 되레 찾는 발걸음이 뜸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고전은 주로 인문학자들만 옆에 끼고 있을 뿐,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행정학자들이 다산 정약용을 현대 행정학의 관점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다산의 행정개혁>과 <다산의 행정사상> 두 권의 책으로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고전에 대한 1차 연구인 우리말 번역, 사회과학자들의 우리 고전에 대한 관심, 장기적이고 꾸준한 공동연구 등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지기 위한 요소들이 조화를 잘 이룬, 하나의 모범사례가 보인다. 지난 30일 이 책들의 출간에 주도적 구실을 한 김영평 고려대 명예교수(행정학)와 최병선 서울대 교수(행정학), 그리고 이들에게 다산의 모든 글들을 원재료처럼 공급했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일은 박석무 이사장으로부터 시작됐다. 다산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꼽히며 다산 번역과 연구에 한평생을 바쳐온 박 이사장은 어릴 때부터 친구인 김영평 교수를 늘 압박했다고 한다. “행정학을 한다면서, 왜 조선의 최고의 ‘정법가’(政法家)인 다산을 연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목민심서>나 <경세유표>가 모두 정부 개혁에 관한 것이니 당연히 행정학자가 연구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2004년 다산연구소가 만들어진 것이 새로운 계기가 됐다. 스스로도 고전에 관심이 많았던 김 교수가 여러 행정학자들을 다산연구소로 끌어들여 ‘다산행정연구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20여명 정도가 모여 2주에 한 차례씩 다산의 저작물을 윤독하고, 그 내용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런 활동은 고전 연구자들의 기존 성과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최병선 교수는 “우리가 한문투성이인 고전을 직접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번역본과 기존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삼아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
|
<다산의 행정개혁>과 <다산의 행정사상>
|
세 학자는 고전 번역과 행정학이 만나서 낸 이번의 성과에 대해, “징검다리 구실을 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우리의 학문 풍토가 서양에서 만들어진 틀을 주로 쓰고 있는데, 그런 틀을 벗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행정학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실 인간 세상이 생긴 뒤 행정학·정책학은 항상 있었던 것”이라며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잘 모르고 서양에서 온 것만 공부했던 것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학문의 역사가 끊어져 있는데, 이를 다시 이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작업은 행정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박 이사장은 “행정학뿐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이 다른 학문 분야에도 좋은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전에 대해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아닌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표현도 있다. “읽을수록 새로운 책”이란 표현이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