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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9 20:12 수정 : 2009.07.29 20:12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반론|장은주씨 ‘민주적 애국주의’를 경계한다
‘대동’ 앞세운 주장 ‘전체주의’ 우려…“세계시민주의가 더 큰틀”

몇 해 전 한 인권회의에서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발제를 마치자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이 물었다. “진정한 애국심은 긍정적이고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는 “공무원·경찰·군인·국회의원 등에게는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애국심이 독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지난 23일 <한겨레>에 소개된 장은주 교수의 ‘민주적 애국주의’에 관한 글은 이런 문제를 학술적·운동적 차원에서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제기한다. 그의 주장은 나라를 사랑하고 그것에 충성을 바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할 이유는 없으며, 인권·정의·자유 등의 보편 가치를 내장한 애국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의 ‘대한민국주의’ 열풍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며, 진보진영이 그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우파에게 운동의 유력한 무기를 헌납하는 꼴이라는 그의 주장에선 ‘진보적 애국주의’를 공론화해 진보세력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장 교수가 정치적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장 교수 희망대로 다수의 시민들이 민주적 애국주의에 동화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유사시 그것은 장 교수가 그렇게 비판하고 거부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쉽게 동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 담론 속에서 민주적·진보적 가치는 밀려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장 교수가 강조하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 국가에 대한 사랑과 충성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순진한 얘기처럼 들린다. 실제 태평양전쟁 당시 악명 높았던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다수는 일본 명문대에 재학중이던 엘리트 청년들이었다. 물론 장 교수는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자율성은 보호돼야 하고, 개인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단다. 하지만 그가 “국민국가적 수준의 하나 됨”이나 “대동의식”을 얘기할 때는 전체주의의 냄새마저 풍긴다.

대체 “나라를 미워하고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왜 나쁜가. 민주주의는 국가를 비판하고 심지어 그 존재를 부인하는 권리까지도 포함하는 것 아닌가. 물론 장 교수의 주장처럼 나라를 “아름답게 바꾸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나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유일한 공동의 대지”이며, 따라서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전지구적 이동과 소통이 증대함에 따라 다문화적 정체성이 확산되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모순된다.

장 교수는 보편주의와 애국주의가 결합되는 이상적 상태를 꿈꾸지만, 이 역시 매우 인위적이고 관념적인 조합처럼 여겨진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면서 장 교수가 우려하는 ‘종족주의적 애국주의’로 퇴행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가 민족주의를 반대한다지만, 애국주의가 어떻게 민족주의와 분리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장 교수가 강조하는 ‘공화주의적 애국주의’의 실체 역시 의문스럽긴 마찬가지인데, 과연 모든 시민이 정치에 자발적으로 평등하게 참여하는 공화주의의 이상이 현대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나는 한나 아렌트 식의 공화주의에서 어떤 억압성을 본다. 정치 참여에 대한 거부와 무관심조차도 나는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부재한 사회는 없다. 따라서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교육과 계몽, 시민운동을 통해 그것을 세계시민주의의 하위단위로 끌어내리거나, 마을이나 생태공동체, 국가연합 같은 비국가적 공동체의 경쟁·조력자로 공존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국가를 비판하는 “비민족주의적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좋은 이유”가 과연 “국가적 삶 속에서 참된 인간과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인가. 나는 이런 장 교수의 견해 역시 국가의 괴물적 속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분명 ‘대한민국주의’로 축약되는 새로운 애국주의 물결은 우려되는 현상이며, 그저 외면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이유들 때문에 그것을 ‘민주적 애국주의’에 담아보려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세계시민주의로 그것을 견제하고 제어하는 것은 어떨까.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