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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2 20:39 수정 : 2009.04.22 20:39

<임원경제지> 번역에 참여한 연구자들이 20일 서울 동교동 임원경제연구소에 모였다. 왼쪽부터 민철기·김정기·노성완·이동순·정명현 연구원.

임원경제연구소 번역 1차분 나와…“생태위기등 넘을 지침서”

170년 만이다.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쓴 <임원경제지>(전43권 예정·소와당)의 한글본 1차분 3권이 출간됐다. 농사짓기에서 재산 불리기, 음식 만드는 법에서 집 짓고 취미생활 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임원(林園·향촌)에 거주하는 사대부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16개 주제, 8000여개의 표제어로 정리한 일종의 ‘생활 백과사전’이다. 54책으로 이뤄진 책의 완성을 위해 풍석과 아들·손자 3대가 36년을 꼬박 매달린 ‘가문의 역작’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분량은 농사에 관한 지식과 농기구·수리시설 도록 등을 담은 ‘본리지’(농업편) 3권이다.

번역에 참여한 김정기(40)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 책들을 두고 “생태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헤쳐나갈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단순한 사전적 지식의 집적물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리며 이웃·자연과 효과적으로 공존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지혜서’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들이 <임원경제지> 완전 번역에 착수한 2003년 봄, 사람들은 수군댔다. “몇 달 붙잡고 씨름하다 포기하겠지.” 난다 긴다 하는 한문학 고수들조차 주저하던 번역 작업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처음 번역을 제안한 정명현(40) 연구원의 말은 이렇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책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박사과정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읽었습니다. 너무 어려워 번역본을 찾았는데, 없다는 거예요. 그럼 직접 해보자, 하고 도올서원과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을 함께 공부했던 선후배와 동료들을 모았습니다.”

한문학과 철학, 역사학, 한의학, 과학사 등을 공부하는 30대 초·중반의 연구자 30여명이 모였다. ‘임원경제지 번역사업회’란 이름을 걸고 번역에 들어갔다. 각자의 전공과 관심 분야에 따라 작업 부분을 할당한 뒤 나중에 번역 초고를 돌려가며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한문만 읽을 줄 알았지 아는 게 너무 없더라고요. 3년을 씨름해 겨우 초역을 마쳤는데, 용어 통일도 안 되고 온통 허점투성이였어요. 지난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상주 공간을 마련하고 ‘임원경제연구소’란 법인 간판을 내걸었습니다.”(이동순 소장)

번역이 생각보다 지체된 것은 방대한 인용으로 짜인 텍스트의 특성 탓이었다. <임원경제지>에는 852종의 참고문헌이 등장하는데, 한대에서 청대에 이르는 중국 서적이 대부분이다.

“워낙 많은 책이 인용되니 원문을 찾아 하나하나 대조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번역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인용된 책도 농업·의학 분야 전문서가 대부분이라 한문 실력만 갖고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디지털화가 상당히 진척돼 검색과 대조에 걸리는 시간이 많이 절약됐습니다.”(민철기 연구원)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이번 번역 사업은 10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출간하기로 돼 있는 ‘인제지’(의학편) 번역이 변수다. 노성완(32) 연구원은 “의학편 분량이 전체의 4분의1을 차지하는데다 <동의보감>에 반영이 안 된 명말·청초기 의학서들이 많이 인용돼 어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글·사진 이세영 기자

☞ 임원경제지 실학자 서유구가 1804~1840년 펴낸 백과사전. ‘조선의 브리태니커’로도 불린다. 4종의 필사본이 전해지며, 최근 부분 번역이 몇 차례 시도됐다. 농사와 가정생활뿐 아니라 의학과 정신 수양, 취미생활, 가정경제 운영 등 실생활과 관련된 지식을 망라한 조선후기 풍속사·기술사 연구의 보고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