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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사회를 발전시키는가? 기술은 통제 가능한가? 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생명 복제기술과 지능로봇 등장으로 우리는 기술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지난 1월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실이 밝혀진 뒤 서울 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우석 교수. 이정아 기자 leej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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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엔지니어는 숙명적 대립관계
이윤만 생각하는 기업을 일차적으로 견제해야
자기 기술에 도덕적 책임 지는 게 수동적 의무라면
사회 이상을 실현하는 기술 개발하는 건 능동적 책무
기술 속 사상/(31)연재를 마치며- 기술의 사회적 책임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지난 4월13일부터 시작하여 30회에 걸쳐 연재된 기술속 사상을 통하여 그동안 기술의 의미, 최근 기술발전의 방향,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보는 관점들, 기술이 이 사회에 가져다 주는 순기능과 역기능, 그리고 기술과 정치, 기술과 예술, 기술과 건축 등 기술과 그 인접 분야 사이에 주고 받는 영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글들을 통하여 기술이 현대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강조되었다. 기술은 사회를 발전시키는가? 기술은 통제가 가능한가? 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면서 기술속 사상을 끝맺음하려 한다.
지난 40년 간 우리나라의 산업, 경제가 발전된 것을 본다면 기술이 우리 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일인당 국민총생산이 105달러에서 1만4000 달러로 증가했으며, 평균수명이 52살에서 77살로 늘어난 수치가 말해주듯 40년 전에 비하여 우리 삶은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되었고 또한 편리해진 것이다.
편리한만큼 대가 치르게 하는 기술
동네에 텔레비젼 및 전화를 가진 집이 몇 안 되었고 자가용을 가진 집은 찾아 보기가 힘들었던 시절로부터 시작하여 기술 발전과 더불어 산업이 일어나 경제가 성장되고 좀 더 싼 값에 대량으로 공급되는 각종 공산물이 등장하면서 살림이 눈에 띄게 달라졌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앞으로 생활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왔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사회도 선진화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급진적인 산업화와 더불어 부작용 또한 생기기 시작했다. 공기와 땅이 오염되고 시냇물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은 물로 변해갔다. 더러워진 물과 공기를 마시면서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인가?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대형사고를 경험하면서 기술이 발전되면 될수록 사고는 대형화되며 기술 속에 뭍혀 사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목표 없는 사회는 기술에 휘말려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사람이 내일이라도 인간생명을 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들고 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처럼 예언하는 것을 들으면서 언젠가 내가 기술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기술이 나에게 풍요로움과 편리함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과연 기술은 사회를 발전시키는가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두렵게 다가오는 기술은 인간에 의해 통제가 가능한 것인가? 소박한 생각으로는 기술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모든 기술은 인간의 손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미국의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는 에디슨의 전력시스템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면서 기술시스템과 관성이라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에디슨은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라 전기의 발전, 송전, 소비 및 측정 기술이 네트웍화된 전력시스템을 건설한 시스템건설자이며, 그가 구축해 나간 기술시스템은 발전소, 변전소, 전등, 모터 등과 같은 인공물의 집합체만이 아니라 전력회사, 투자회사, 법적인 제도, 정치, 과학, 자원을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사회기술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시스템은 탄생, 성장, 확장 및 경쟁 단계를 거치게 되며 경쟁에서 이긴 시스템은 관성을 가지고 공고화된다고 말한다. 관성이 붙은 기술시스템은 어마어마한 힘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막거나 그 코스를 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전기,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과 같이 이미 관성이 붙은 대형기술은 쉽게 발전방향을 되돌리거나 제거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더불어 사는 수밖에 없다.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다고 곧 우리가 기술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야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도구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이지 이 사회가 추구하는 목적이나 이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40년 전 우리가 너무 가난했을 때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사회를 건설해 보자는 목표를 정하고 우리는 매진했으며 기술은 이와 같은 목표 달성에 조력자로써 훌륭한 역할을 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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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축전기와 영사기, 축음기 등 1000여가지를 발명한 에디슨. 하지만 에디슨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이들 발명품뿐만이 아니라 이것들이 사회에서 이용되면서 필요하게 된 법적 제도까지 포괄한다. 즉 사회기술시스템도 그가 만든 것이다. <한겨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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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규/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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