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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공연·전시

3세기 내몽골 벽화에 고구려 유적 속 그림이...

등록 :2019-09-22 16:07수정 :2019-09-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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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고대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북방 유적 기행 ②

북만주 유목민 탁발선비족
남쪽 이동로에서 전환점 이룬
인산산맥 일대 답사

북위왕조 수비거점 무천진 고성서
백제 기와 특징 담은 조각 발견
네이멍구박물관 공예품 벽화도
한반도 고대문화와 인연 증명


허린거얼 고분벽화의 묘주도 세부.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이나 안악 3호분 벽화의 묘주도와 기본 구성이 비슷하다.
허린거얼 고분벽화의 묘주도 세부.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이나 안악 3호분 벽화의 묘주도와 기본 구성이 비슷하다.

바싹 마른 바람이 휭휭 몰아쳤다.

쉼 없이 지그재그로 굽잇길을 올라가는 참이다. 해발 2000m 가까운 산맥 고개들을 버스가 털털거리면서 넘어갔다. 키 작은 관목과 먼지 덮어쓴 풀이 듬성듬성 자란 골짜기와 기슭의 언덕들이 보였다. 한눈에도 황량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뜻밖에도 내려가는 길목의 둔덕엔 노란 해바라기 밭들이 간간이 널려 여행자의 시선을 어루만져 준다.

지난달 15일 답사단은 중국 내몽골(네이멍구)과 외몽골 공화국 사이를 가로지르는 인산산맥 남북 기슭을 가로질러 갔다. 초원 스텝 지역과 농경 지역의 접경지대다. 남쪽에서 부는 습한 바람을 산줄기가 막으면서 북쪽으로는 더욱 건조한 바람이 내려친다. 이른바 높새바람이다. 그 바람 탓에 산맥 어귀는 고대부터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생활권이 자연스레 접점을 이루는 경계지대가 됐다. 교역과 전쟁이 번갈아 일어난 건 당연지사다.

무천진 성벽의 자취를 걷다 발견한 기와 조각.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올록볼록한 요철 형상을 만든 것은 백제의 기왓장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어서 답사단의 눈길을 끌었다.
무천진 성벽의 자취를 걷다 발견한 기와 조각.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올록볼록한 요철 형상을 만든 것은 백제의 기왓장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어서 답사단의 눈길을 끌었다.
국내 고고학, 문헌사 연구자 20여명으로 구성된 북방문화 답사단은 북만주 후룬베이얼 초원에 이어 이 산맥 일대를 중요한 답사 기점으로 삼았다. 답사 노정의 길잡이가 된 1~3세기 유목족 탁발선비의 이동로에서 큰 전환점을 이룬 길목이 여기였기 때문이다. 북만주 후룬베이얼 초원에서 남서진해 내려오면서, 선비족은 인산산맥을 넘어 중원 화북 지방의 들머리로 진입했다. 유목민에서 서서히 정착민으로 삶의 양태를 바꾸기 시작했고, 4세기 북위 왕조를 건국한다. 북방 유목민족으로는 처음 중원의 고급 문화와 한족의 제도를 개방적으로 흡수하고 융화시켰다. 북위는 5세기 초 화북 일대를 통일하면서 후대 그들의 후예들이 세운 수당제국의 터전을 닦게 된다.

지난달 13일 밤 네이멍구 자치구의 주도 후허하오터에 도착한 답사단은 다음날 아침 북쪽의 인산산맥을 타고 넘어 북위 왕조의 북방 수비 거점 6진의 하나인 무천진 고성을 찾았다. 6진은 고비사막 이북의 다른 이민족 유연을 막기 위해 5세기초 북위 태무제가 인산산맥 기슭에 세운 여섯개의 군사적 거점을 말한다. 무천진은 이 육진 가운데서도 우문태, 양견, 이연 등 북위의 후대 왕조인 북주, 수, 당 왕조의 창업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새로운 제국 권력의 터전을 닦은 곳이었다. 탁발선비족이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 숱한 고난을 안고 내려와 거꾸로 북방 이민족을 막으려 한 아이러니한 방어선이기도 하다.

내몽골 시라무렌 초원과 특유의 이동식 주택 게르가 보이는 풍경.
내몽골 시라무렌 초원과 특유의 이동식 주택 게르가 보이는 풍경.
3시간여를 걸려 고성으로 비정되는 터에 도착했다. 토성 유적 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성벽 한변 길이만 700m를 넘는 토성으로 고구려 수도 국내성만 하고, 중국 한나라의 웬만한 지방 성곽보다는 큰 규모였다. 지금은 메마른 햇빛이 내려쬐는 허허벌판 폐허지만, 성벽이 꺾어지는 각루 터와 성벽터는 장대한 풍채를 과시했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젊은 연구자 이승호씨가 기와 조각 한점을 발견했다.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올록볼록한 요철 형상을 만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백제고고학 전문가인 박순발 충남대 교수가 기와 조각을 살펴보더니 반색하며 말한다. “이건 사비(충남 부여) 유적 등에서 나오는 백제 기와편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수천 킬로 이상 떨어진 북방 초원 지대에서 백제 기와 특유의 스타일을 찾게 되다니, 예사롭지 않은 발견이군요.”

유심히 성터를 살펴본 뒤 무천진에서 북쪽으로 차를 돌려 찾은 곳은 바오터우의 백령묘 사원이었다. 청나라 시대 세워진 내몽골 라마불교의 중심 사원이지만, 동으로는 허베이성, 서쪽으로는 서역 둔황(돈황)까지 이어지는 대초원의 중간 거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통치와 교역 기관의 구실까지 떠맡았던 곳이다. 티베트와 중원 양식이 혼합된 대웅보전과 현종전, 사대천왕전 등의 주요 전각과 내부의 밀교풍 불상들을 바라보면서 이곳 초원 특유의 노래하는 신령스러운 새이자 지명의 연원이 된 베링가에 얽힌 전설을 들었다.

네이멍구 지역의 군사 교통 요지였던 바오터우에 자리한 불교사원 백령묘. 티베트에서 유래한 라마불교 특유의 불탑과 금당건물이 보인다.
네이멍구 지역의 군사 교통 요지였던 바오터우에 자리한 불교사원 백령묘. 티베트에서 유래한 라마불교 특유의 불탑과 금당건물이 보인다.
답사단은 다시 남하해 푸른 바다와도 같은 시라무렌 초원을 헤치며 게르 숙소를 향해 갔다. 초원의 날씨는 다혈질 같다. 한번 소나기가 퍼부으면, 초원과 언덕 일대에 순식간에 큰 천이 곳곳에 넘쳐흘렀다. 이런 이색 풍경을 보며 찾아간 초원의 게르에서 답사단은 양고기 구이와 백주를 마시며 보름달 훤하게 비치는 초원의 하룻밤을 보냈다.

한동안 비가 내린 뒤 물바다로 변한 몽골 초원. 한번 소나기가 퍼부으면, 초원과 언덕 일대에 순식간에 큰 강과 천이 곳곳에 넘쳐흘렀다.
한동안 비가 내린 뒤 물바다로 변한 몽골 초원. 한번 소나기가 퍼부으면, 초원과 언덕 일대에 순식간에 큰 강과 천이 곳곳에 넘쳐흘렀다.
15일 후허하오터로 돌아온 일행은 시내 네이멍구박물관과 남쪽 성락박물관 등을 찾았다. 초원문화와 한반도 고대문화의 끈끈한 인연을 보기 힘든 금속공예품과 벽화무덤 공간들을 보면서 다시금 실감한다. 네이멍구박물관에서는 내몽골 초원지대 남북축 지대에서 잇따라 출토되는 호랑이 모양의 버클 장식과 허리띠, 이파리 모양의 관 장식구 등을 통해 한반도 청동기, 철기 문화 유물들과 신라 금관과의 양식적 연관관계를 뚜렷이 살펴볼 수 있다. 홍산문화의 발상지로 최근 주목받는 내몽골 남쪽의 츠펑에서 출토된 동그란 자루가 달린 비파형 동검은 한반도, 일본열도는 물론 내몽골 일대까지 널리 퍼진 만주 비파형 동검 문화의 폭넓은 전파 영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16일 오후 북위 왕조의 옛 수도 다퉁으로 남하하기에 앞서 답사의 대미는 후허하오터 남쪽 성락박물관에서 만난 후한대 허린거얼의 벽화무덤 재현 공간이었다. 3세기 후한대 오환교위라는 이민족 관리의 직책을 맡은 벼슬아치의 무덤 벽화다. 사신도와 신수도는 물론, 부부가 나란히 앉은 묘주도와 푸줏간, 부엌 등의 생활 풍속과 말을 탄 출행도 행렬 등에서 후대 고구려 벽화에 구성, 도상 등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고구려 벽화 연구자 김근식씨는 “중원과 네이멍구 쪽의 후한대와 북조의 무덤벽화와 고구려 벽화와의 연관관계는 국내에서 제대로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실물을 보면서 북방 초원 접경지대의 벽화 문화가 동아시아 고대 벽화의 공통된 연원임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 만주권의 특유의 칼 양식의 비파형 동검을 네이멍구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츠펑 부근에서 출토된 자루달린 비파형 동검이 전시 중이어서 눈길을 모았다.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 만주권의 특유의 칼 양식의 비파형 동검을 네이멍구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츠펑 부근에서 출토된 자루달린 비파형 동검이 전시 중이어서 눈길을 모았다.
네이멍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호랑이 모양의 버클 장식. 한반도 청동기, 철기 문화 유물들과 양식적으로 직결돼 주목되는 금공예품이다.
네이멍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호랑이 모양의 버클 장식. 한반도 청동기, 철기 문화 유물들과 양식적으로 직결돼 주목되는 금공예품이다.
네이멍구(중국)/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무천진 고성의 토성 유적 위를 답사단이 걸어가고 있다. 성벽 한변 길이만 700m를 넘는 큰 규모의 토성이다. 북위가 북방 방어를 위해 인산산맥 기슭에 쌓은 6진 가운데 하나다.
무천진 고성의 토성 유적 위를 답사단이 걸어가고 있다. 성벽 한변 길이만 700m를 넘는 큰 규모의 토성이다. 북위가 북방 방어를 위해 인산산맥 기슭에 쌓은 6진 가운데 하나다.

내몽골 초원의 날씨는 다혈질이란 인상을 준다. 한번 소나기가 퍼부으면, 초원과 언덕 일대에 순식간에 큰 강과 천이 곳곳에 넘쳐흘렀다.
내몽골 초원의 날씨는 다혈질이란 인상을 준다. 한번 소나기가 퍼부으면, 초원과 언덕 일대에 순식간에 큰 강과 천이 곳곳에 넘쳐흘렀다.

초현대식 건축물로 지어진 후허하오터시의 네이멍구박물관.
초현대식 건축물로 지어진 후허하오터시의 네이멍구박물관.

한반도 청동기, 철기 문화 유물들과 양식적으로 잇닿는 내몽골 지역 출토 동물형 금공예품. 네이멍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소장품이다.
한반도 청동기, 철기 문화 유물들과 양식적으로 잇닿는 내몽골 지역 출토 동물형 금공예품. 네이멍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소장품이다.

내몽골 지역에서 출토된 이파리 모양 장식구. 신라 금관 등의 기물 모양과 양식적으로 뚜렷한 연관관계가 확인된다. 네이멍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내몽골 지역에서 출토된 이파리 모양 장식구. 신라 금관 등의 기물 모양과 양식적으로 뚜렷한 연관관계가 확인된다. 네이멍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성락고성박물관에 복제 공간으로 재현된 허린거얼 신점자 벽화고분. 3세기 후한대 오환교위의 벼슬을 맡은 유력자의 무덤 벽화다. 후대 고구려 벽화에 구성, 도상 등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락고성박물관에 복제 공간으로 재현된 허린거얼 신점자 벽화고분. 3세기 후한대 오환교위의 벼슬을 맡은 유력자의 무덤 벽화다. 후대 고구려 벽화에 구성, 도상 등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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