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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애니

분노의 시대, 청춘을 태우다

등록 :2018-05-26 13:58수정 :2018-05-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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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단순 재현·의역 넘어
구석구석 유효하게 해체해
이창동식 어법으로 재조립
하루키 원작 영화 중 최고

소설가 지망 노동자 종수
세련되고 부유한 벤
둘 사이 공백 파고든 분노
펀치드렁크 남기는 엔딩으로
소설가를 꿈꾸며 유통회사 알바로 생계를 꾸리는 종수(유아인). 그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는 “곧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며 종수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얼마 뒤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는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과 함께 귀국한다.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소설가를 꿈꾸며 유통회사 알바로 생계를 꾸리는 종수(유아인). 그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는 “곧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며 종수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얼마 뒤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는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과 함께 귀국한다.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버닝>

얼마 전 티브이(TV)에서 도라에몽을 최소한의 위·변조조차 없이 원본 그냥 그대로 중국 내에서 ‘기계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 하려던(그 기개 참으로도 호방하다) 중국 업체의 시도를, ‘이건 우리가 봐도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중국 법원에서 제지했다는 이야기를 봤다. 이런 극악무도한 사연과 비교했을 때, 최소한 영화의 초반만 보면 <버닝>은 “굳이 판권 계약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버닝>은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의 분위기 또는 이른바 ‘무라카미 원더랜드’의 분위기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속단이다. <헛간을 태우다>의 결정적 대목 중 하나인 ‘귤껍질 벗기기’ 마임에 대한 이야기(“비결은 귤이 있다고 상상하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는 거야”)를 필두로 영화 곳곳에는 원작의 장면, 대사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무라카미 원더랜드’의 간판선수 격인 우물과 ‘동그란 하늘’, 그리고 사라진 고양이도 나온다.

아, 그러니까 <버닝>은 무라카미의 원작을 이창동식 영화어법으로 충실하게 재현해낸 영화구나, 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또한 속단이다. <버닝>은, 예컨대 <토니 타키타니>처럼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원작에 충실하지도, 쩐아인훙(트란 안 훙)의 <노르웨이의 숲>처럼 심하다 싶을 정도의 의역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버닝>은 원작의 구석구석을 유효하게 해체해낸 다음, 그것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조립하고 있다.

하루키와 이창동의 차이점은

영화는 화면의 3분의 2 정도를 채운 탑차의 뒷문 모습으로 시작된다. 견고한 회색 힌지에 고정된 하얗고 탄탄한 트럭 뒷문. 그리고 화면의 나머지 3분의 1은 비좁고 혼란스러운 세계다.(풍경과 소리로 보아 복잡한 상점가인 것 같다.) 바로 그곳에서 보일 듯 말 듯 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혹 무심하게 넘길 수도 있는 이 장면에는 영화의 노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이 넘는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차갑고 매끄럽고 한가한 세계, 그리고 마지못해 그 존재를 허락받은 듯한 나머지 비좁고 혼잡한 세계. 그 후텁지근한 땀내 가득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출처 모를 연기. 맞다. 이 장면만큼 현재 우리 세계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은 장면도 또 없을 것이다.

연기의 출처는 곧 주인공 종수(유아인)가 피운 담배로 밝혀진다. 담배를 끈 종수는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어깨에 진 채 거리를 헤치고 나간다. 그런 종수를 카메라가 줄곧 뒤따른다. 그러는 내내 행인들과 짐수레는 그를 아슬아슬 비켜가고, 청각신경을 사포질해대는 것 같은 호객 스피커 소리는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종수는 삶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종수는 아직 데뷔하지 못한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더독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원작과 영화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원작의 작중 화자인 소설가(무라카미의 작품에서 흔히 그렇듯, 작가 자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캐릭터)와, 그에게 ‘버려진 헛간 태우기’라는 희한한 취미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젊은 남자’ 사이에는 그리 큰 거리감이 감지되지 않는다. 물론 원작의 ‘젊은 남자’는 그를 영화에 옮겨놓은 벤(스티븐 연)처럼 독일제 스포츠카를 몰고, 옷차림이 세련됐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돈을 많이 버는 수수께끼 같은 남자이긴 하다. 하지만 소설가와 젊은 남자의 세계는 최소한 서로 절대로 섞일 일 없는 정도는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종수는 다르다. 그는 그의 차(파주 시골집 헛간에 틀어박혀 있던 녹슨 트럭이다)를 끌고 벤의 집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순찰 도는 경찰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는다. 종수는 벤을 만나면서 벤의 ‘호의’가 없었다면 거의 가볼 일 없는 곳들, 먹을 일 없는 것들,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경험한다. 요컨대 종수와 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그런 벤을 종수는 부러워하는가? 원작의 소설가처럼, 종수 역시 벤의 부유함에 딱히 선망이나 질투 같은 것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벤이라는 수수께끼에 호기심(또는 의심)을 보이기는 해도 말이다.

종수가 벤의 부유함에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해미 때문이다. 무라카미의 원작에서 소설가와 ‘그녀’는 ‘말하자면 친구’의 관계다. 하지만 종수가 해미에게 품은 감정은 명백한 애정이다. 바로 이 부분이 원작과 영화 사이의 두번째 결정적 차이점이다.

두 사람은 창문으로 남산타워가 올려다보이는 해미의 비좁고 어지러운 북향 원룸에서 한낮의 섹스를 나눈다. 그때, 종수는 하루 중 유일하게 그 방에 드는 햇빛인 ‘남산타워에 반사된 햇빛’을 본다. 온갖 심한 짓을 다 당한 뒤에야 간신히 그 방 벽에 도착한 것 같은 너저분한 햇빛 한 조각. 그것이 종수의 사랑에 대한 ‘메타포’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해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를 부탁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뒤, 그녀 없는 빈방에서 ‘그’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종수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하지만 종수는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를 마중 나간 공항에서, 아무런 예고도 받지 못한 채, 그녀의 새로운 남자친구를 맞닥뜨려야 한다. 그녀가 케냐에서 만난 그 ‘벤’이라는 남자는 앞서 말했듯 종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벤은 사막에서 본 석양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해미를 보고 웃음을 흘리면서 말한다. “난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게 신기해. 왜냐면, 난 눈물을 흘리고 울어본 적이 없거든.”

그럼에도 해미는 나란히 주차된 종수의 짐트럭과 벤의 ‘독일산 스포츠카’ 중 후자를 택한다. 체념일까, 인내일까, 표정 없는 분노일까. 그 선택에 대해 종수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제 종수는 벤을 적대할 수밖에 없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므로. 말하자면 어디에나 널려 있고, 태워도 아무 해 될 것 없는, 버려진 비닐하우스처럼.

비닐하우스를 태우다

벤의 ‘비닐하우스 태우기’는, 그리하여, 원작의 ‘헛간 태우기’의 어깨 위에 분노라는 묵직한 짐을 얹어놓은 형국이 되며, 영화는 짐 나르는 종수를 뒤따르던 도입부의 카메라처럼 그 분노의 진로를 끈질기게 관찰한다. (헛간이 비닐하우스라는 매우 한국스러운 오브제로 대체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각적인, 따라서 영화적인 면에서 비닐하우스는 헛간보다 훨씬 강하고 또, 많은 것을 말한다.) 분노는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뿐 아니라, 세련됨과 촌스러움, 깨끗함과 지저분함, 중심과 변경, 냉정과 정감, 그리고 실체와 허상 사이에 놓인 물컹한 공백을 파고들며, 마침내 그것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이라는 말의 의미를 순식간에 뒤집어 놓는 그 엔딩은, 하여 놀랍지는 않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펀치드렁크를 남기기에 충분하다. 문자 그대로 ‘혁명의 예감’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그 엔딩과 함께(물론 이 장면과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사이에 시각적 공통점은 딱히 없다), 우리는 <버닝>이 최소한(그야말로 최소한) 무라카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 가장 탁월한 영화임을 확신할 수 있다. 14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버닝>은, 자신이 ‘도덕’ 또는 ‘동시존재의 균형’을 가졌다고 믿는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버려진 헛간처럼 태워 없애봐야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여자들’에 대한 대단히 은유적인 연쇄살인 고백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좀처럼 날아가지 않는 미세먼지처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분노에 대한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또는 확장시켜놓았다.

어쩌면 그것은 재즈와 러닝과 고양이와 손수 만든 싱싱한 요리가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가득한 무라카미 키친, 무라카미 서재, 무라카미 툇마루를 기대한 관객들이 원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닝>이 뒤쫓고 있는 분노야말로 <헛간을 태우다>라는, 꽤 모호한 듯 보이는 소설이 품고 있던 중핵 중의 하나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정도로까지 뚜렷하고 날카롭게 보이지 않았다. <버닝>이라는 이창동식 동시존재가 그 위에 겹쳐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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