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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애니

정치적인데 인간적인, 그래서 울컥하는

등록 :2017-05-26 19:52수정 :2017-06-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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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노무현입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쏟아진 흑색선전, 빨갱이 비난 등에 어떻게 대응하고 풀어나갔는지를 통해 그가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그리고 나아가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CGV아트하우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쏟아진 흑색선전, 빨갱이 비난 등에 어떻게 대응하고 풀어나갔는지를 통해 그가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그리고 나아가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CGV아트하우스

일단 <노무현입니다>는 제목에 ‘노무현’ 석 자 뚜렷한 본격 노무현 영화이니만큼, 노무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에 대한 관객 개개인의 입장·성향이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가를 최대의 분수령일 것이다. 어차피 ‘불호’(不好) 입장에 있는 관객은 제목만으로도 이 영화에 대한 관람을 고려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므로.(아니라면 계속 읽어주시길)

그런데 그렇지 않은 ‘호’(好) 측에 속하는 관객들 중에서도 ‘때 되면 으레 나오는’ 노빠에 의한, 노빠를 위한, 노빠에 의한 노빠의 콘텐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선뜻 관람에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긴 이제껏 얼마나 많은 책·영화·영상·툰 등등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 또는 인간에 대해 논해왔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하여 그의 빠이건 비빠이건 나름 노무현 전문가 아닌 사람 어디 있겠는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지지율 2%→66.5% 되는 과정과
정치인 노무현의 ‘인간적’ 대응
자료화면 편집으로 극대화한 다큐

정치적 동지·친구들 인터뷰에
감시요원·운전기사·일반인도 포함
‘인간 노무현’의 매력 드러내
해석·논평않고 함께 눈물 흘려

노무현이라는 소재의 힘

하여, 현시점에서 노무현에 대해 논하는 것은 거의 편의점 온수기 앞에서 컵라면 작법에 대해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형국일 텐데,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의 감독(이 창재) 본인은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노무현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었다”는 코멘트로써 필자의 의욕을 의도치 않게 한껏 고무해주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대목이야말로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가장 크게 자아내는 대목이겠다. 오랫동안 곁에서 그를 관찰했다거나 그의 오랜 지지자였다거나 하는 ‘내부자’의 시각이 아닌,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던 사람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노무현 다큐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요 근래 접한 각종 콘텐츠들 중 가장 자주·오래·깊이 울컥했던 콘텐츠였다. 이는 영화를 관람할 당시 관람석 곳곳에서 어둠을 틈타 코를 훌쩍이거나 큰 웃음과 함께 박수를 치는 행위를 내내 목격·청취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필자만의 외로운 늑대적 체험은 아니었다 사료된다.

생각해보자. 한 편의 영화가 막판 단 한 번의 울컥을 위해 투하하는 각종 구구절절한 사연 및 물량의 평균치를. 그러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한 채 관객의 실망 내지 실소를 자아낼 확률을. 반대로 만일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울컥이 지속되는 시간을. 물론 노무현이라는 소재의 특별함과 논픽션이라는 정황의 특수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최소한 ‘울컥’이라는 기능성 하나로만 본다면 <노무현입니다>는 단연 근래 최고의 수준이다. 기쁨·통쾌의 울컥에서나, 슬픔·그리움의 울컥에서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핵심 중 핵심은 물론 ①노무현이라는 소재 그 자체의 힘이다. 하지만 노무현을 본격 다뤘으면서도 그가 등장하는 자료화면의 울컥함과 울림을 빼고는 별다른 감흥이나 관점을 보여주지 못했던 영화들도 분명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노무현입니다>에는 소재의 힘을 십분 증폭시키는 또다른 요인이 존재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가 선택·집중하고 있는 ②시기다. <노무현입니다>는 지난 2002년 3월9일부터 4월20일까지 실시된 새천년민주당(이하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잘 알고 계시다시피 이 경선은 지지율 2%에서 출발해 66.5%로 끝났던, 하여 만일 누군가 똑같은 내용으로 픽션을 만들었다면 분명 ‘해피엔딩을 위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도 무리한 설정’이라는 질타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었을,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시작과 끝 사이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매우 에너지준위 높은 통쾌함을 득할 기본조건을 갖추게 된다.

허나 조건은 어디까지나 조건일 뿐. 중요한 것은 이 팩트를 둘러싼 갖가지 복잡다양한 양상과 요소들 중 어디에 집중하는지일 텐데,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이 경선과정의 각 단계별로 마주치게 되는 ③‘적’들을 자신의 추진체로 선택한다.

그 ‘적’들이란, 경선 시작 단계에서 마주친 지역기반·당내기반·지지율 등등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적부터, 경선 막바지에 쏟아져나온 흑색선전, 빨갱이, 가족 물어뜯기의 해묵은 지리멸렬의 종합 콤보까지 실로 다채로운 면면이다. 영화는 노무현이 이러한 각양각색의 문제들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어떻게 대응하고 풀어나갔는지를 통해 그가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그리고 나아가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경선 막판, 수세에 몰려 당황한 채 ‘장인의 비전향 빨치산 이력’을 끄집어내 물고 늘어지는 세력들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일갈일 것이다. 이 유명한 연설에 대해서야 이 자리에서 굳이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인데, 주목되는 것은 그 장면 뒤에 곧바로 감동으로 일시적 진공상태에 빠진 중년여성 청중들의 모습을 붙임으로써 그 연설이 얻은 소기의 효과 및 통쾌함 및 유머를 극대화시킨 편집이다. 그것은 “눈을 끔뻑끔뻑거리고, 이리저리 굴리는 정치인…” 발언에서의 편집(그 정치인이 누군지에 대해선 영화를 참조하실 것) 등에서도 십분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런 식으로 영화는 다소의 인위적 개입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영화적 재미를 끌어올리는 쪽을 택한다. 뭐, 그것이 ‘다큐적 엄정함’의 함량을 어느 정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다만, 어차피 이 영화의 절반 이상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찍어둔 자료화면에 의존하고 있음에야.

사실 이 영화가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영화가 직접 만들어낸 ④다채로운 인터뷰들이다. 특히 인터뷰이 선정에 있어서의 폭넓음은 이 영화 최고의 특장점이자 볼거리인데, 그들의 면면은 노무현의 오랜 친구들과 정치적 동지들뿐 아니라, 정보부 감시요원이었던 친구, 운전기사, 그리고 노무현에게 매료된 보통사람들까지 실로 다양한 면면이다. 그들 중 달변인 사람도 있고, 약간은 눌변인 사람도 있다. 대단히 잘 알려진 유명인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사도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 노무현을 접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들 인터뷰 모두를 공평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누구의 얘기인가’가 아니라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위에 적은 대선후보 경선 장면들과 연관성 없는 듯 있게/있는 듯 없게 ⑤엇갈려 편집됨으로써, 인간 노무현이 정치를 통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를 관객들 스스로 재구성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덕분에 우리는 지극히 정치적인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울컥하게 되는 드문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슬픔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서거 후의 이야기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임은 물론인데, 영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에 굳이 뭔가를 보태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논평하는 대신 함께 운다.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슬픔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서거 후의 이야기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임은 물론인데, 영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에 굳이 뭔가를 보태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논평하는 대신 함께 운다. CGV아트하우스

추도식의 갑작스런 소나기

아, 물론, 최종 인터뷰이 72명(그중 영화에 나오는 인터뷰이는 39명)과의 200시간 남짓한 인터뷰에서 추려냈다는 얘기답게, 그 인터뷰 내용 하나하나의 주옥같음과 절절함에 대해서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 와중에도 아닌 듯 은근 웃기는 서갑원 인터뷰이가 안긴 구수한 웃음이 가장 인상 깊었더랬는데, 여러분은 어떠실지.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영화는 슬픔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서거 후의 이야기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임은 물론인데, 영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에 굳이 뭔가를 보태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논평하는 대신 함께 운다. 그리고 영화가 함께 흘린 그 눈물은 배갑상 인터뷰이가 들려주는 ‘추도식의 갑작스런 소나기’ 에피소드에서 제 의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장면에서 우리가 느끼는 울컥함은 감탄도 회한도 그리움도 슬픔도 아닌, 뿌듯함이다. 이제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그의 뜻과 의지를 여기까지 굴려온 것이 다름 아닌 우리들 모두였다는 자부심이다.

물론 이 영화가 이른바 ‘별 다섯 개짜리’ 영화는 아닐 것이다. 인터뷰이를 정면에서 촬영한 과감하고도 새로운 시도(그것은 상당히 성공적이다)와 나레이션과 자막을 배제한 채 최대한 원재료들의 맛을 살리고, 폭넓은 취재를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해내고 있는 그래픽 등 기법적인 면에서도 매끄럽다만, 다큐멘터리의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거나 촬영대상을 몇 십 년 관찰하는 등의 압도적인 경외감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무척 오랫동안 이런 상황, 이런 기분에서 노무현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니 한 번 쯤은, 나뭇잎마다 빛나는 햇빛 떨어지는 이런 봄날이 죄스럽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지금 한 번 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것을 만끽해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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