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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애니

“조선의 하늘·땅·바람 속 사람 목소리가 만든 영화”

등록 :2016-09-26 19:51수정 :2016-09-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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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겐지(81) 감독. 강성만 기자
마에다 겐지(81) 감독. 강성만 기자
[짬] 동학농민혁명 다큐영화 만든 마에다 겐지 감독
“한국인도 감히 하지 못한 일을 일본인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냈으니 무척 기쁩니다. 박수를 보냅시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열린 다큐영화 <동학농민혁명-고추와 라이플총> 제작 후원 마무리 모임에서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가 제안했다. 이어 마에다 겐지(81) 감독에게 따뜻한 박수가 이어졌다.

이 다큐는 디엠제트국제다큐영화제 특별 초청작으로 선정돼 지난 25일에 이어 27일 경기 고양시 ‘메가박스 백석’에서 상영된다. 25일 고양 백석역 주변 디엠제트 스퀘어에서 감독을 만났다.

신상옥 감독과 ‘유적 답사’ 인연
2006년 제작 결심 10년 만에 완성
오늘 디엠제트영화제 특별초청 상영

“지금 122년 전 전쟁 상황 재연
민중의 전쟁 반대 인식이 중요”
새달 도쿄 등 일본전역 공개 목표

감독은 동학 창시자 최제우와 동학농민군의 흔적을 좇아 남한 땅 전역을 누빈다. 농민군 후손들의 비감한 육성을 통해 당시 일본군이 얼마나 잔인하고 체계적으로 농민군을 학살했는지 알려준다. 이 봉기에 왜 혁명이란 이름이 붙어야 하는지도 전공 학자의 상세한 해설을 통해 설명한다.

“이 영화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조선의 하늘과 땅, 바람과 그 속에서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만들었죠.”

3년 전 제작발표회 때 감독은 일본이 일으킨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조선의 식민지배, 태평양 전쟁의 뿌리엔 동학혁명이 자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조선 농민을 살육한 그 ‘폭력적 사상’이 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감독은 가와카미 소로쿠(1848~99) 얘기를 꺼냈다. 동학혁명 다시 일본 히로시마 대본영의 병참총감으로 ‘조선 농민군을 모두 죽여라’고 지시한 인물이다. “도쿄에 살고 있는 가와카미의 후손을 만나 선조가 한 일을 알고 있는지 물으려 했어요. 하지만 (인터뷰를) 거절당했습니다. 방위청을 찾아 가와카미의 지시 문건 등을 눈으로 봤으나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은 불허하더군요.” 그는 일본의 조선 침략 단계에서 군사적 실무 책임을 맡았던 가와카미에 대해 한국 지식인들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무관심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영화 가제는 ‘동학농민혁명-감나무 아래서’였다. ‘감나무 아래서’가 ‘고추와 라이플총’으로 바뀐 것이다. 고부봉기 때 정읍 말목장터에 있던 감나무는 농민군의 회합과 휴식 공간이었다. 전남 진도군 하조도에서 만난 고추농사꾼의 인상적인 증언을 듣고 제목을 수정했다고 한다. “(관군과 일본군에 쫓긴) 농민군들이 진도를 거쳐 주변 섬으로 피신합니다. 하조도에서 만난 박씨 성을 가진 농민군 후손은 차별이 두려워 후손임을 숨기고 살았다고 해요.” 이 증언자는 주변에서 자신의 집안에 대해 ‘몽둥이 박가’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금 일본에서 122년 전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 다큐가 일본 전역에서 개봉되면 좋겠어요.” 우선 다음달 10일과 11일 도쿄 한국와이엠시에이에서 다섯 차례 상영된다. “일본 초·중·고 교과서에서 동학을 전혀 다루지 않고 있어요. 이 영화는 일본인들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애초 동학 120년이 되는 재작년에 영화를 완성하려고 했으나 2년이나 늦춰졌다. 제작비 문제가 컸다. “제작비 1330만엔 가운데 한국 쪽 후원회 인사들의 도움으로 1200만엔을 모았죠. (돈이 부족해) 800만엔은 받을 수 있는 저의 애장품인 조선 도자기를 35만엔에 팔아야 했죠. 빚도 졌어요.” 한국 후원자들은 카카오 스토리 펀딩을 통해 3390만원(1549명 참여)을 모으기도 했다.

계획했던 북한 촬영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패퇴한) 농민군들이 대거 북쪽으로 피신하죠. 그 후손들 취재를 위해 총련 쪽 고위 인사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죠.” 다큐 상영 요청에도 민단과 총련 모두 손사래를 쳤다고 했다. “일본 정부와 반대되는 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 그랬겠지요.”

그가 동학 다큐를 만든 데는 신상옥(1926~2006) 감독과의 인연이 자리한다. “2001년에 신 감독과 대부분의 동학 유적지를 답사했어요. 신 감독이 400억원을 모아 동학을 극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제작비를 모을 수 없었죠.” 그는 신 감독이 작고한 뒤 3000만엔 예산으로 다큐영화를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마에다는 교토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오사카에서 보냈다. “초등 3~4학년 때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했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걸 무수히 봤어요. 전쟁 말기엔 연못에서 형과 수영하다 미군 전투기 공격을 받아 죽을 뻔했죠. 당시 장난하듯 어린이에게 총을 쏘는 미군에 대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전쟁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전쟁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단계와 비슷합니다. 일종의 프롤로그죠. (전쟁이 터질 시기가) 10년이 될지 50년이 될지 모르죠. 지금은 핵전쟁 시기입니다.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뭔가 불안이 느껴지죠.” 전쟁을 막기 위해선 “민중이 전쟁 반대 의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민중의 수를 늘리는 게 특히 중요하며, 자신의 영화가 그런 노력의 하나라고 했다.

다큐 도입부에 한 변호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에 참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가 중요하게 의도하는 것은 민주화입니다. 한국도 한 번 더 민주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선생의 ‘항의’에도 참배 장면을 빼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는 2000년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다큐 <백만인의 신세타령>을 제작해 한국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9년엔 임진왜란을 다룬 다큐 <월하의 침략자>를 만들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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