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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신라군의 깃발은 반달곰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등록 :2020-04-01 09:00수정 :2020-04-0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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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해자와 태자 동궁 유적
동물뼈와 씨앗 분석 보고서 발간
국립경주연구소에서 월성 출토 곰 뼈들을 정리하고 있는 광경이다.
국립경주연구소에서 월성 출토 곰 뼈들을 정리하고 있는 광경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멸종 위기종이 된 반달가슴곰의 가죽은 1600여년 전 신라 왕궁 장인들이 선호했던 고급 물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신라 천 년 궁터인 경주 월성 해자(연못)에서 나온 곰의 뼈가 모두 반달곰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곰 몸체 특정 부위의 가죽이 당대 신라군 각 진영의 깃발을 수놓는 고급스러운 장식 재료로 쓰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들어맞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년간 경주 신라 궁궐터인 월성의 해자와 태자궁터인 동궁 유적에서 식물 씨앗, 동물 뼈 등을 분석해 고대 신라의 생태환경을 연구한 결과를 1일 공개했다.

경주 월성에 출토된 곰 뼈들의 부위를 설명한 그림.
경주 월성에 출토된 곰 뼈들의 부위를 설명한 그림.

가장 눈길을 끄는 성과는 1600여년 전 신라 시대 경주로 반입된 반달곰의 내력이다. 월성 해자(연못) 바닥에서 소, 돼지, 개 같은 가축 뼈에 섞여 검출된 5세기께 곰 뼈들을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연구소 고환경 연구팀이 국내에 사는 두 종류의 곰과 동물인 불곰과 반달곰을 염두에 두고 분석했는데, 경주에 살지 않는 반달곰의 뼈로 추정된 것이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고고학술지 <중앙고고연구> 31호에 ‘월성 해자 출토 곰뼈의 이용과 폐기에 대한 시론’이라는 보고논문을 실었다. 발견된 곰뼈는 불곰류와 비교 관찰한 결과 반달가슴곰의 것일 가능성이 크며 신라인들이 월성 주변 공방에서 곰을 해체해 가죽을 얻은 뒤 버린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해자에서 발견된 곰뼈는 앞다리에서 발로 이어지는 요골 5점, 발꿈치 부분인 종골 3점 등 고기가 별로 나오지 않는 앞다리와 발목 관절 부위가 많다. 김 연구원은 월성 출토 곰뼈들을 볼 때 고기가 적은 부위를 제거하고 사용하기 힘든 부위를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특이한 건 곰뼈의 종골과 요골에서는 개가 이빨로 문 듯한 흔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두고 “곰을 해체한 뒤 즉각적으로 폐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면서 “뼈가 붙은 곰의 고기를 개 먹이로 줬다면 의례용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추정을 내놓았다. 신라인이 반달곰을 해체한 목적이 사람의 식용이나 의례용 제물이 아니라 고급 재료인 가죽 확보에 있었다는 얘기다.

<삼국사기> 권 40 잡지9 ‘무관’조를 보면, 신라인들이 곰 뺨 가죽과 팔가죽, 가슴 가죽을 ‘제감화(弟監花)’, ‘군사감화(軍師監花)’, ‘대장척당주화(大匠尺幢主花)’ 등 군대 무관의 깃발 장식으로 썼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실제로 월성 주변에서는 작은 수혈 구덩이를 판 여러 공방의 흔적이 적잖이 발견되고 있다. 김 연구원과 연구소 쪽은 이를 근거로 곰을 반입해 궁궐 근처 공방에서 몸체를 해체한 뒤 가죽을 군사용 상징품을 만드는 데 활용했을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당시 반달곰이 경주에 살던 동물이었는지, 다른 외지에서 들여온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현재 반달곰의 서식지는 강원도 오대산, 태백산 일대와 경남, 전남북에 걸친 지리산 일대로 경주는 포함되지 않는다. 외지에서 곰을 경주 왕경으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명확한 근거가 아직 나오지 않은 이상 반달곰이 월성으로 오게 된 역사적 경위는 앞으로 학계가 풀어야 할 미스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이 경주 월성 해자 바닥의 흙을 물체질하는 과정에서 나온 여러 씨앗들을 분류하고 있다.
연구진이 경주 월성 해자 바닥의 흙을 물체질하는 과정에서 나온 여러 씨앗들을 분류하고 있다.

유적의 바닥 흙을 모아 물체질하면서 발견한 식물 씨앗류의 식생 조사결과도 흥미롭다. 월성 해자 바닥에서는 5세기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생종 오동나무 씨앗, 외래종인 피마자(아주까리) 씨앗이 처음 여러 개 나왔다. 오동나무, 피마자 씨앗이 고대유적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 있는 사례다.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 기름, 윤활유의 재료 등으로 잘 알려진 피마자 씨앗은 국내 고대 문헌에는 언급되지 않는 인도 원산이다. 이번에 신라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국내 전래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게 됐다. 동궁터 우물 바닥에선 신라인들도 메밀을 먹었음을 실증하는 9~10세기 통일신라기의 씨앗도 처음 나왔고, 제주도와 남해안에서만 자라는 비자나무 씨앗, 대추 씨앗 등도 여럿 검출돼 당대 경주왕경의 신라인들이 다양한 곡물과 열매 등을 활용했음을 알게 됐다.

경주 월성 해자 바닥에서 나온 5세기께 피마자 씨앗. 국내 고대유적에서 피마자 씨앗이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피마자의 전래와 관련한 구체적인 물증을 얻게 됐다.
경주 월성 해자 바닥에서 나온 5세기께 피마자 씨앗. 국내 고대유적에서 피마자 씨앗이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피마자의 전래와 관련한 구체적인 물증을 얻게 됐다.

고환경연구팀은 당시 식생과 기후변화도 구체적으로 파악해냈다. 일례로 5~6세기엔 월성 일대에 날씨가 습윤할 때 잘 자라는 참나무 꽃가루 수종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7세기를 기점으로 9~10세기엔 날씨가 건조하고 더울 때 자라는 소나무 꽃가루 수종이 확 늘어난 수치가 월성과 동궁 일대에서 나왔다. 연구팀의 최문정 학예사는 “상당한 기후변화가 진행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연구팀은 지난해 4월 월성 해자에서 나온 식물들의 성분을 분석해 연못이 5~6세기에는 가시연꽃으로 뒤덮였고, 주변의 대지는 풀밭과 참나무, 소나무 군락이 펼쳐지는 모습이었다는 1차 분석 성과를 내놓은 바 있다.

경주연구소 쪽은 이번에 확인된 분석 성과들을 오는 9월 열리는 국내 학술대회와 내년 7월 체코에서 열리는 세계 고고학대회에서 정식 보고할 예정이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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