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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11분, 짧지만 울림 큰 위안부 할머니의 육성

등록 :2012-09-2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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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민용근 디렉터스컷
3D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
며칠 전 일본에서 열린 삿포로 국제단편영화제에 다녀왔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는 이 영화제는 여느 영화제들처럼, 경쟁과 비경쟁의 여러 섹션에 걸쳐 전 세계의 다양한 단편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이다. 이 영화제에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단편영화만을 집중 조명하는 ‘아시아 태풍’(Asian Typoon)이란 비경쟁 섹션이 있다. 한국 영화 중엔 유대얼 감독의 <에튀드 솔로>를 비롯해 두 편의 영화가 소개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김준기 감독의 <소녀 이야기>가 상영될 때였다.

<소녀 이야기>는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3디(D)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2004년 작고하신 정서운 할머니의 생전 육성 인터뷰를 그대로 영화에 사용해, 15살 소녀가 겪게 되는 참혹한 경험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낸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3디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할머니의 모습 위에, 그 실제 목소리를 덧입혔다는 데에 있다. 영화의 이미지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사운드는 다큐멘터리인 셈인데, 할머니의 실제 육성과 그 입모양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구현된 애니메이션의 만남은 실사영화와는 또 다른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정서운 할머니의 목소리를 따라 1937년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군에 의해 주재소로 끌려간 아버지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소녀는 동네 이장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일을 하러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장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고, 소녀는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 있는 일본군 캠프로 끌려오게 된다. 그곳에서 소녀는 15살의 나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참혹한 경험을 당하고 만다. 영화는 할머니의 육성을 바탕으로 삼아, 8년의 잔인한 시간과 그곳에서 극적으로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낸다. 1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주하게 되는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된 여러 영상과 자료를 보아왔던 내게도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유독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장소와 관객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역사와 영토 문제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기에, 일본에 있는 극장, 그리고 객석을 가득 메운 200여명의 일본인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소녀 이야기>가 상영되는 11분의 시간 동안 객석은 유독 조용했다. 헛기침 소리도 흐느낌도 심지어는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각 개인들이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세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객석에서 터져 나오던 힘찬 박수 소리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그 반응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할머니의 실제 육성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토대로 냉정하게 과거의 어떤 순간을 재현해낸 이 영화의 힘이 일본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듯했다. 영화를 만든 제작진의 노력뿐 아니라, 이 영화를 상영작 목록에 올린 일본인 프로그래머의 마음, 그리고 영화를 보고 힘껏 박수를 쳐준 관객들의 반응이, 많은 한을 안은 채 살아가는 할머니들에게 미약하나마 작은 힘으로 보태졌으면 한다. <소녀 이야기>는 현재 인터넷을 통해 4분 길이의 트레일러 영상을 볼 수 있고, 11분의 본편 영화는 올해 각종 국내외 영화제 상영 후 내년쯤 일반 공개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영화감독 민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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