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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좋아하는 빌딩, 무엇을 꼽으시나요

등록 :2011-05-17 15:18수정 :2011-05-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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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준의 거리 가구 이야기 바로가기

# 여러분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빌딩은 무엇입니까

솔직히 서울 시내 수많은 오피스 빌딩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실은 몇 곳 되지 않습니다.

건축에서 빌딩은 원래 형태가 단순해 멋있기가 쉽지 않은 건물입니다. 그래서 더 고수가 설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엇비슷하고 개성없는 빌딩을을 찍어내듯 지어 올립니다. 최근 들어 고층 빌딩들도 점점 개성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어가는데 아직 국내에선 그런 건물들은 드물죠.

그래도 그 중에서 좋아하는 빌딩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광화문 근처 SK서린타워를 꼽습니다.


처음 이 빌딩을 봤을 때 그 단순함과 비례감이 눈에 바로 들어왔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절제된 디자인이 볼수록 잘 설계한 건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이 건물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에 대해 잠깐 소개합니다.

검은색 정장의 신사, 서린동 SK빌딩
근대 모더니즘 건축 거장에 바치는 한국 땅의 오마주

광화문에서 청계천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검고 네모반듯한 두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등장하는 SK서린타워, 그리고 알맞은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삼일빌딩이다. 차분하고 반듯하게 우뚝 솟아 있는 두 건물은 그 모습이 비슷해 형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피스 빌딩도 이젠 더욱 화려해지고 직사각형 일변도에서 비정형 건물도 제법 등장한 서울 도심에서 차분하고 묵묵하게 서 있는 이 두 건물은 수수하고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건물이 우리 현대 건축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늘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중요하다. 20세기 현대 빌딩 건축의 유전자를 이 두 빌딩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과 절제의 건축 양식 ‘국제주의’

오늘날 우리가 사는 전 세계 대도시 건축에 대해 알아야 할 단 한 명의 이름이 있다면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다. 미스 판 데어 로에는 지금 세계 주요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낸 건축가다. 20세기 오피스 빌딩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원형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미스였다.


독일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미스는 나치 독재 치하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건축의 흐름을 바꿨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와 함께 근대 건축의 4대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건축에서 현대를 만든 모더니즘의 주역이다.

그가 이끈 새로운 흐름은 국제주의 양식, 또는 국제 건축이라 불린다. 이전까지 건축은 모두 자기 나라나 지역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 미스는 이런 각각의 특성을 초월하는 세계 보편의 건축을 만들어냈고, 그가 이끈 건축 사조는 그래서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불린다.

미스가 추구한 건축은 극도로 단순하고 깔끔한, 더 이상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제된 건축이었다. 이전의 건축은 건물 표면을 각종 장식으로 꾸몄다. 기존 건물의 장식은 모두 각 지역과 나라의 고유한 미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근대 건축은 이런 장식을 떼어내는 건축이었다. 그중에서도 미스는 극도로 장식을 억제하고 가장 기본 형태인 직선과 평면만으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였다.

미스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

미스 판 데어 로에의 대표작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뉴욕에 있는 ‘시그램 빌딩’이다.

1958년 완공된 시그램 빌딩은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커튼 월’의 정점을 보여준 건물이다. 커튼 월이란 건물 표면이 가벼운 유리로 이뤄진 것을 말한다. 이전 건물에선 벽이 그 자체로 건물을 지탱했기 때문에 두껍고 창문도 작았다. 그러나 철골 콘크리트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은 기둥이 지탱하게 됐고, 벽은 표면을 덮는 역할만 하게 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커튼처럼 건물을 덮는 가벼운 벽인 커튼 월이다.


시그램 빌딩.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필립 존슨의 공동 설계로 1958년 뉴욕 도심에 지어졌다.
시그램 빌딩.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필립 존슨의 공동 설계로 1958년 뉴욕 도심에 지어졌다.
미스의 시그램 빌딩은 커튼 월 건물의 아름다움을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완성한 건물이다. 건물 외벽은 유리와 수직으로 가늘게 뻗은 선뿐이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건물 외벽에 튀어나온 세로 선은 무겁고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 고층 건물의 느낌을 날씬하고 가볍게 만들었다. 덕지덕지 치장해대는 과도한 장식을 벗어던진 ‘무장식의 장식’을 새로운 시대의 미학으로 추구한 미스는 “적은 것이 아름답다(Less Is More)”란 명언을 남겼고, 시그램 빌딩은 이를 웅변하는 걸작이었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구조와 상징의 본질만 남긴 미스의 건축을, 그리고 국가와 지역을 초월하는 보편적 건축을, 나아가 근대의 이념을 그는 이 건물로 추구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건축가들이 수없이 많은 고층 빌딩을 설계했지만 미스가 만든 이 디자인처럼 건물을 경쾌하게 보이는 간단한 방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시그램 빌딩에 바치는 한국의 오마주

시그램 빌딩은 세계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그램 빌딩의 디자인을 모방한 수많은 건물이 세계 곳곳에 들어섰다. 물론 그 어떤 빌딩도 미학적인 면에서 시그램 빌딩을 뛰어넘진 못했다. 그렇게 등장한 시그램 빌딩의 후예 중의 하나가 바로 1970년 건축된 삼일빌딩이다.


삼일빌딩은 지금 세대에겐 낯선 이야기겠지만 63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상징이 바로 이 건물이다. 설계자는 당대의 건축가였던 故 김중업(1922~1988). 김중업은 미스와 시그램 빌딩에 대한 헌사이자 모방으로 이 건물을 설계했다. 시그램 빌딩이 철과 유리로 만든 새로운 건축의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삼일빌딩은 그런 서구의 건축을 한국에 이식한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바람에 근대화의 시기를 놓친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뒤늦게 서구화와 근대화의 압축 성장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이는 건축도 마찬가지였다. 삼일빌딩은 모더니즘과 현대라는 개념을 다른 나라보다 30년 이상 뒤늦게 뒤따라 잡으려 몸부림친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삼일빌딩(왼쪽)과 시그램빌딩(오른쪽)은 쌍동이처럼 닮았다. 삼일빌딩은 알미늄 표면이어서 이제 많이 낡고 바랬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철 단조로 겉을 치장한 시그램빌딩의 스킨은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삼일빌딩(왼쪽)과 시그램빌딩(오른쪽)은 쌍동이처럼 닮았다. 삼일빌딩은 알미늄 표면이어서 이제 많이 낡고 바랬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철 단조로 겉을 치장한 시그램빌딩의 스킨은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삼일빌딩은 그 상징성만큼이나 아쉬움도 남는 건물이다. 시그램 빌딩에 대한 오마주라고 해도 건물의 모습이 너무 흡사한 것이 사실이다. 국제주의 양식의 스타일을 한국에 처음 선보였다는 의미가 있지만 디테일의 완성도나 디자인의 독창성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건물이다. 물론 그건 1970년대란 시대의 사회 문화적인 한계이자 당시 한국 건축의 한계이기도 했다.

간결한 검정 네모 상자를 닮은 디자인

삼일빌딩이 지어진 지 꼭 한 세대가 지나 1999년 등장한 서린동 SK빌딩은 삼일빌딩이 시도한 모더니즘의 연장선이자 삼일빌딩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건물이다.


서린동 SK빌딩이 지어졌던 1990년대는 건축에서 새로운 형태와 디자인을 시도한 시대였다. 깔끔하고 세련된 대신 너무 반듯하고 정형적인 모더니즘에 질렸던 건축가들은 지루한 국제주의와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파격적이고 새로운 건축을 선보였다. 그게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었다.

이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서린동 SK빌딩은 거꾸로 모더니즘의 상징인 미스 반데어로에의 시그램 빌딩을 연상시키는 간결한 검정 네모 상자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삼일빌딩 이후 29년이 지난 시점에 오히려 가장 모더니즘적인 형태로 되돌아간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건 결코 건축가의 반발도,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거스르려는 퇴행도 아니었다. 서린동 SK빌딩을 설계한 건축가가 바로 김종성(69·서울건축 명예사장)이기 때문이다.

단정한 선에 녹아든 은근한 멋과 개성

김종성은 1950년대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건축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그의 스승이 바로 미스 반데어로에였다. 그는 대학에서 미스에게 건축을 배웠고, 그의 사무실에서 건축 경력을 쌓았다. 미스가 일군 모더니즘 국제주의 양식을 가장 확실하게 배우고 익힌 한국 건축가이자 유일한 한국인 제자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가 한국에 설계한 대표적 건물로는 올림픽 역도경기장, 서소문 효성빌딩, 서울시립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미스 판 데어 로에의 사진에는 시가를 피우는 장면이 많다. 그가 시가에 도취된 듯 앉아있는 저 의자 역시 미스의 대표 걸작 중 하나다. 단순하고 군더더기없는 이상추구형 디자인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미스 판 데어 로에의 사진에는 시가를 피우는 장면이 많다. 그가 시가에 도취된 듯 앉아있는 저 의자 역시 미스의 대표 걸작 중 하나다. 단순하고 군더더기없는 이상추구형 디자인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린동 SK빌딩은 스승 미스의 시그램 빌딩의 미학을 계승하면서도 스승과는 다른 그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미스와 그 추종자들의 건축은 합리적이고 규칙적이며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지만 이런 흐름이 세계 건축을 휩쓸면서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건축이란 비판도 들었다. 무개성한, 그러면서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양산된 탓이다.

김종성은 서린동 SK빌딩에서 스승 미스의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담았다. 건물 형태는 단순해도 건물 표면을 보면 표정이 뚜렷하면서도 질서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커튼 월의 디자인을 보면 시그램 빌딩이나 삼일빌딩처럼 수직선만으로 표면을 처리하지 않아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보기 어려우면서도 국제주의 양식의 미학과 상통하는 느낌이다.

건물 자체는 조용히 도시의 맥락 속에 녹아들어 존재감을 숨기면서도 디테일에선 과감하게 자기 개성을 드러냈다. 겉으로 보면 가장 단정한 검정색 정장 차림인데, 뜯어보면 은근한 멋과 개성이 드러나는 신사 같은 건물이다. 검은색 외벽은 SK의 양대 성장 축의 하나인 원유(原油)의 색을 차용한 것이다.


두드러지는 디자인으로 존재를 부각시켜야 하는 상업건물과 달리 사무용 건물은 튀는 디자인을 구사하기 어렵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디자인하기 어려운 건물이다. 고층 빌딩의 아름다움은 재료가 지닌 속성, 이른바 물성이 간결하면서도 정연하게 살아날 때 만들어진다. 김종성은 이를 서린동 SK빌딩에서 성취했다. 그의 앞선 작품인 남산 힐튼호텔과 비슷하면서도 더욱 단정하고, 그러면서도 힘 있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일반인에겐 그냥 차분한 건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서린동 SK빌딩은 바로 이런 점에서 전문가인 건축가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완공 이듬해인 2000년 서린동 SK빌딩이 건축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 첨단 건물속에 들어있는 풍수

왜 저 밋밋한 건물을 좋아하느냐, 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취향의 문제니까요.

저 건물이 다른 서울 고층 오피스빌딩보다 마음에 들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건물 앞쪽 조경입니다. 에스케이빌딩은 종로쪽이 아니라 청계천쪽이 정문입니다. 그 정문 앞에 화강암으로 화단을 쌓고 조경을 했는데 그 처리가 아주 답답하고 또 너무나 개성이 없는 `업자 풍 디자인'입니다. 도로와 건물의 차단벽 역할을 기대한 것일텐데, 종로쪽 정문처럼 시원하게 도로와 같은 레벨로 처리해 건물 외부와 실내 로비가 연결되는 개방감을 줬더라면 좋았을 듯합니다.

한가지 부연설명하자면, 저 SK서린타워는 `풍수'를 접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앞서 제 블로그에서 한번 소개했는데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SK서린타워 네 귀퉁이 기둥에는 물결같기도 하고 오리발 같기도 한 바닥무늬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 무늬는 오리발이 아니라 `거북이 발'입니다.

그리고 건물 정문 앞 계단에는 거북이 머리 조형물이 있습니다.

거북이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북이를 상징하는 작은 조형물입니다. 건물 가장 입구, 얼굴에서도 이마쯤에 해당하는 부분에 놓여 있는 저런 돌장식, 다른 빌딩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빌딩 전체가 거북이이며, 이 거북이는 청계천쪽을 바라보고 있는 셈입니다. 거북이가 물쪽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겠죠.

이렇게 거북이 풍수 장치를 숨겨놓은 이유는 빌딩이 들어선 땅이 불기운이 강해서였다고 합니다. 물기운으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물을 상징하는 거북이를 넣은 것입니다. 사옥 정문을 번화한 종로통이 아니라 청계천 쪽으로 낸 것도 물기운을 확실하게 받으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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