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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컬렉션 전시실 내부. 금동신발, 팔가리개, 금동관모, 새날개모양관식 등의 고대 명품 유물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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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파묻힌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② 반출 문화재의 보고 오구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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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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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처분 경로 ‘오리무중’ 모두 1110건에 달하는 박물관의 오구라 컬렉션은 본관 왼쪽 효케이관의 아시아갤러리에 극히 일부인 20점만 전시되고 있었다. 고고학 유물, 불교조각, 금속공예, 도자·회화·전적·서예, 복식 등을 망라한 굴지의 명품 컬렉션으로, 오구라가 죽은 뒤인 1982년 그의 후손과 지인들이 만든 컬렉션 보존회(지금은 해체)에서 기증한 것이다. 효케이관은 1909년 당시 황태자(다이쇼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만든 근대 건축물로, 오구라 컬렉션은 관내 정면 한국실의 4개 진열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본관 오른쪽 동양관에서 100여점을 전시해왔으나, 지난해 6월부터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가 효케이관 임시 전시실로 옮겼다. 전시품들은 눈에 쏙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정면 안쪽에 ‘조선반도의 문화’라는 패널 상자가 있고 이 패널을 중심으로 진열장 네곳에 고대 고고학 유물과 금속공예품, 도자기 등을 진열해 놓았다. 한 진열장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새 날개 모양 모자 장식 등 오구라 컬렉션의 최고 명품 유물 6점을 모아놓았다. 청자상감국화무늬긴목병, 분청사기 장군 등 소담한 도자기 유물들도 보였다. 유물 담당자인 다니 도요노부 열품과장은 “반년마다 전시품을 바꾼다”며 “온습도 조절이 안 되는 건물이라 그림과 서예 등은 전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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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나온 오구라 컬렉션 관련 자료집들. 1982년 기증과 함께 열린 특별전 도록과 사진집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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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전시해도 ‘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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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컬렉션 일부를 전시중인 도쿄국립박물관의 효케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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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컬렉션은 네번 한국에 전시하러 왔다.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과 대구, 부여박물관의 백제 특별전에 20여점이 나간 것을 시작으로, 2007~2008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 전시, 2008년 중박의 통일신라 불상 특별전 등에 일부 유물이 대여됐다. 흥미로운 건 당시 한국의 덤덤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박물관 쪽은 “처음 대여전시를 할 때 잔뜩 긴장했으나, 반응이 거의 없어 의아했다”고 했다. 8·15 때 한국 언론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찾아와 관심을 표명하지만, 정작 유물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오구라 컬렉션 특별전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다니 과장은 이런 말도 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종종 오는데 재미있는 분들 같아요. 올 초 오신 분은 컬렉션 전시장에 와서 ‘오구라 컬렉션이 무슨 뜻이냐’고 묻더군요, 일본 오쿠라 호텔에 있는 조선 석탑 컬렉션과 우리 관의 오구라 컬렉션이 같은 것이냐고 묻는 분도 계시고…. ” 낯이 붉어진 채 자리를 일어섰다. 어느덧 폐관시간인 오후 5시. 우리 명품들을 만난 반가움과 회한, 반출 문화재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시각차를 절감한 순간들이었다. 인근의 우에노 공원 숲에는 여전히 시끄럽게 매미가 울고 있었다. 도쿄 글·사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