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30 18:53
수정 : 2010.07.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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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냐 차악이냐? 문제는 선택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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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 슬기로운 여인 포샤는 구혼자들에게 시험을 냅니다. 금상자와 은상자와 납상자를 나란히 놓고 하나를 선택하라지요. 상자를 열어 포샤의 초상화가 나오면 성공이지만 해골이 나오면 실패. 상자 앞에서 구혼자들은 머뭇거립니다.(셰익스피어에겐 미안하지만, 저는 왜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요즘 유행하는 복불복 놀이가 생각날까요?)
선택의 순간, 우리는 망설입니다. 에라스뮈스는 격언집 <아다기아>에서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라틴어 격언을 나란히 소개하지요.
우선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 이럴 때 서양의 옛 지식인들은 “카리브디스를 피하여 스킬라에게 잡히다”(에비타타 카리브디 인 스킬람 인키디, evitata Charybdi in Scyllam incidi)라고 말했대요. 카리브디스와 스킬라는 둘 다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입니다. 스킬라는 한번에 여섯명의 뱃사람을 낚아채 잡아먹는 반면, 카리브디스는 소용돌이를 일으켜 모든 사람을 삼켜버린대요. 오디세우스는 고민 끝에 카리브디스를 피하여 스킬라에 가까이 배를 몰아갔다죠. 그의 판단으론 “여섯명을 잃는 것이 모두를 잃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어, “병마의 카리브디스를 피하는 대신 손실의 스킬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에라스뮈스는 말합니다. “재산과 생명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복구할 수 있는) 재산을 포기하는 쪽이 올바른 선택”이라나요.
반면 나쁜 결과를 피하려다 오히려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기를 피하려다 불 속에 떨어지다”(푸뭄 푸기엔스 인 이그넴 인키디, fumum fugiens in ignem incidi)라는 말이 있대요. 예컨대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채 물었을 때, 주인영감이 병아리를 구하려고 곰방대를 들고 달려들다가 그만 낙상하는 상황입니다.(원작 그림인 김득신의 <파적도>가 바로 이런 내용이지요. 연기는 중국 명나라 때의 <수호지> 목판본 삽화에서, 불구덩이는 조선 후기의 지옥그림에서 따왔습니다.) 병아리를 아끼다 몸을 다치다니, 나쁜 선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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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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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어렵습니다. 누구는 스킬라를 택해 손실을 줄이겠지만, 누구는 불구덩이에 빠져 고생하겠죠. 다만 선택을 해버린 이후에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옛 동양의 지혜에 따르면, 설령 마구간에서 말이 달아난대도 그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요.(새옹지마, 塞翁之馬) 무릇 세상일이란 ‘화가 복이 되기도 하니까요’.(전화위복, 轉禍爲福) 어쩌면 좋은 선택이냐 나쁜 선택이냐를 결정하는 건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행동일지도 몰라요.
작지만 작지 않은 선거를 치렀습니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지 말지 어떤 후보자를 고를지 고민 끝에 선택했지요. 어떤 정치세력은 선거 공조를, 어떤 정치세력은 선거 완주를 택했고요. 과연 우리는 카리브디스를 피해 스킬라를 택한 걸까요, 아니면 연기를 피하려다 불지옥을 택한 걸까요? 글쎄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네요.
김태권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