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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0 18:57 수정 : 2009.11.20 18:57

눈보라처럼 진실이 몰아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





디아스포라의 눈 /

지난 11월2일 나는 아내와 함께 또 신슈의 산장에 가 있었는데,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 일이 생겨 기차로 도쿄에 갔다가 저녁 6시 조금 지나 신슈에 다시 돌아갔다. 철도 역까지 아내가 자동차를 몰고 나를 맞으러 나왔다. 그때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고 흰 것이 흩날리고 있었다. 11월 초입인데. 아무리 신슈라고 해도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우리는 스와 시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볼일을 봤는데, 어느덧 9시가 지나버렸다. 우리 산장은 표고 1700m 지점에 있어서 스와 시에서 출발해도 1000m 이상 더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노선버스나 관광버스가 왕래하는 2차선 관광도로다. 우리에겐 익숙한 도로다.

운전석을 넘겨받아 나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강했으나 눈은 멈췄다. 노면도 말라 있었다. 이 상태라면 문제없겠구나. 나는 낙관했다. 약간 불길한 느낌이 든 것은 반대편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명백한 위험신호였으나 빨리 돌아가고 싶은 일념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도로 옆에 바람을 피하려는 듯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사슴들 모습이 몇 번이나 눈에 띄었다. 평소 같으면 미소짓게 만드는 사랑스런 모습이었겠지만 그때는 왠지 불길해 보였다.

가파른 고개 넘어 산장 가는 길. 앞이 안 보이는 눈보라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고개를 넘었다. 주변 도움으로 가까스로 산장에 도착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난로 앞에서 따끈한 음료를 들이켰다. ‘눈보라 치는 밤의 안온함’은 젊었을 때 예상했던 내 인생의 모습이 아니다.

표고 1200m쯤에서부터 다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은 눈가루들이 강풍에 날리면서 노면에 쌓이지는 않았으므로 자동차는 쾌조의 질주를 계속했다. 이윽고 노면이 하얗게 얼어붙은 부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차는 아직 동절기 타이어로 교체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때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고개 정상까지는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편으론 도로 불통상태가 되면 산록에 있는 마을로 돌아가 잘 곳을 찾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밤 10시가 지나 있었다. 이젠 그런 일을 하기도 번거로운 시각이었다. 그런 애매한 기분 속에 계속 달렸다.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하얗게 변했다. 둥근 헤드라이트 불빛 속을 눈의 결정체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난무했고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본격적인 눈보라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산장은 고개 넘어 뒤편에 있었다. 그 고개를 ‘기리가미네’(안개봉)라고 한다. 안개가 많은 고개라는 의미다. 습한 바람이 그 고개에 가로막혀 안개가 자주 낀다. 그러나 고개를 넘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혀버릴 때가 많다. 지금은 안개가 아니라 눈이지만, 고개만 넘으면 날씨가 멀쩡할지 모른다. 더욱이 얼어붙은 도로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되돌아가기보다는 이대로 전진해서 고개를 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도박이라도 하는 듯한 심정으로 계속 나아갔다. 아내는 조수석에서 “살살 가요…”를 노래처럼 계속 외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미끄러질 가능성이 높다. 가드레일 바깥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굴러떨어지지 않더라도 엔진이 멈춰버리면 주변엔 인가가 없고 다니는 자동차도 없으니 우리 두 사람은 난방도 없는 차 안에 갇혀 꼼짝없이 동사해버릴 것이다. 나는 <공포의 보수>라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사람이 걷는 정도의 속도로 신중하게 전진을 계속했다.

긴 시간 뒤 가까스로 고개를 넘었다. 그러나 고개 저쪽에도 강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얼어붙은 노면 위를, 더욱 속도를 줄이며 살금살금 내려갔다. 숨을 죽인 채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앞으로 나아갔다. 라디오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인 듯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볼륨을 올렸다. 하얀 지옥에서 울려퍼지는 음향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드디어 앞쪽에 빛이 보였다. 우리 산장 근처의 스키장이 틀림없다. “다행이야” “무서웠어요” “산을 너무 얕봤어” 우리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 몇 킬로미터를 진행했다. 호텔과 펜션이 줄지어 서 있는 도로에서 옆길로 빠져 500m 정도만 가면 거기가 우리 집이다. 한데 그 옆길은 경사가 급해 올라갈 수가 없다. 액셀을 밟으면 타이어가 미끄러져 헛돌면서 도리어 질질 뒷걸음질친다. 계속하다간 뒷바퀴부터 길 바깥으로 밀려날 것이다. 아, 마침내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집이 눈앞에 있는데….

잠시 안절부절못하다가 근처 호텔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살살 방향을 되돌려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갔으나 밤이 늦어 프런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벨을 누르자 30대의 젊은 지배인이 나타났다.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자 이 무슨 행운인지, 그는 호텔의 미니밴으로 우리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운좋게 오늘 동절기 타이어로 교환했지요. 게다가 4륜구동이니 문제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10여분 뒤 나와 아내는 가스 스토브가 타오르는 산장 거실에 앉아 따끈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거짓말 같아” 하고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나는 대답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바로 전까지의 일이 허구고 이 따뜻한 거실이 진실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내가 따뜻한 곳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의 은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나는 지금 대체로 평온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노후 걱정 따위를 해야 할 나이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건 어쩐지 아니야, 이런 인생은 젊었을 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라,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항상 지금의 내 생활이 어쩐지 모조품 같고 그 바깥에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이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눈보라 치는 밤의 경험이 평소의 그런 느낌을 생생하게 되살려주었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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