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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2002년 4월20일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을 녹화하면서 자신의 노래 ‘데인저러스(dangerous)’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패서디나/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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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잭슨 50년 생애와 음악세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얼굴이 수없이 변했듯, 그의 삶도 따라 춤췄다. 1958년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 잭슨은 다섯살 어린 나이에 치열한 연예계의 정글로 들어섰고, 일찌감치 무대를 평정하며 팝의 역사를 새롭게 섰다. 그는 리듬앤블루스(R&B)와 팝뮤직, 흑인과 백인 음악의 골을 메웠다. 반짝이는 장갑과 군복 스타일 재킷, 조종사용 안경은 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그가 받은 화려한 스타의 조명은 인생의 그늘도 그만큼 짙게 만들었다. 그에겐 다른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잭슨과 형제들에게 매질까지 하며 연습을 강요했다. 어린 시절을 빼앗긴 갈증 때문인지 그는 어린아이들과 ‘피터 팬’ 같은 삶에 집착하게 됐다. 그가 성형수술에 집착한 것도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잦은 성형 후유증에 어린이 성추행 추문4억달러 빚더미…재기공연 끝내 꿈으로 1993년 어린이 성추행 사건은 그의 인생에 황혼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그는 합의금으로 2000만달러를 지급했지만,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이후에도 잇따른 어린이 성희롱 논란이 그를 괴롭혔다. “침대에서 같이 잤지만 성추행은 없었다”는 해명에도 팬들의 실망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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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마이클 잭슨이 콘서트 취소로 소송을 당해, 법정에 출두해 증언하고 있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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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1억4천만장 앨범 판매량 독보적
혁신적 비트·멜로디로 인종·세대 아울러 ‘팝의 황제’는 이제 영원한 ‘팝의 전설’이 됐다. 50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마이클 잭슨이 남겨놓고 간 유산은 너무나 크고 넓다. 앞으로 팝의 역사에 또 다른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해도 ‘팝의 황제’란 칭호는 그에게만 헌정될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 인생은 숱한 기록의 역사이기도 하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잭슨 파이브 시절, 그는 5살 나이에 최연소 리드 보컬로 활약했다. 잭슨 파이브는 데뷔곡 ‘아이 원트 유 백’을 시작으로 ‘에이비시’, ‘더 러브 유 세이브’, ‘아윌 비 데어’까지 4곡을 연속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마이클 잭슨은 세계적인 대중음악잡지 <롤링 스톤>지의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흑인 음악인이자 가장 어린 나이의 음악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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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평화와 환경을 위한 공연’을 하러 방한 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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