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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0 18:37 수정 : 2009.05.10 19:27

<박쥐>는 박찬욱 작품들 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이 영화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호평만 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쉽다. 맘에 든 영화의 좋은 점만 눈에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런 소수인 이동진 평론가의 입장이 많이 부럽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리 재미있게 봤어도 눈에 걸리는 것들 너무 많은데. 난 여전히 그가 왜 이미 자기완결적인 장르물인 <테레즈 라캥>에 뱀파이어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근사한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다가 지나치게 멀리 왔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몰래 상상해 보긴 했다. 내 상상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마 감독 자신도 지금은 잘 모를 수 있으리라.

그러다 내 입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봤는데, 언젠가 내 게시판의 한 방문자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박쥐>에 대해 언급하면서 ‘취향’이라는 단어가 평론가들에게 이렇게 많이 사용된 영화를 처음 봤다나. 생각해 보니 나도 그 단어를 썼고 (그런 의미로 20자평도 썼으며) 평을 읽으면서 ‘취향’에 따라 반응이 갈릴 거라는 내용의 수많은 평들을 읽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포함한 이 사람들은 모두 ‘취향’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앞으로 칸에 진출할 한국 영화에 대해 험한 말을 하는 걸 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일종의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할까. 아마 요새 박찬욱과 <박쥐>를 일종의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몰아붙이려는 시도의 일부도 그 반작용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비평 모두를 반작용으로 밀어붙이는 무리한 시도는 할 생각이 없다. 그건 지독한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취향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사실 박찬욱이 국민감독의 위치에 오른 것 자체가 조금은 괴상한 현상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위 정상적인 ‘웰 메이드’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다. 그의 가장 상업적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 비슷한 위치까지 가긴 했지만, 그 역시 완벽한 자기 완결성을 갖춘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드보이>가 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뒤로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늘 그에게 그런 ‘완벽한 걸작’들을 기대한다. 그가 평론가 출신인 것도 그런 기대의 원인이 될까. 하지만 평론가 출신 감독들이 ‘웰 메이드’ 영화만을 만든다는 것도 근거 없는 편견이다. 다리오 아르젠토 역시 평론가 출신이지만 그의 대사는 거지 같고 플롯은 산만하기 그지없다. 팬들은 그런 단점들을 다들 알면서도 그를 좋아한다. 틴 타란티노와 해리 놀즈가 좋아하는 피투성이 괴짜 영화들을 전문으로 만드는 영화감독이라면 그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국민감독’은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일종의 모욕이다. 그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돌려주라. 아마 그를 그 자리에 놓고 <박쥐>를 다시 보면 그 감상 역시 더 즐거워질 것이다.

듀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