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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으로 꾀어 고통 떠넘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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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다시 개발 들어간다면서요? 죽은 사람 얼마나 억울할까.”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은 용산을 지나가며 혀를 찼습니다. “말이 좋아 재개발이지, 결국 살던 사람은 나가야 되는 거 아니오? 다들 부자 될 것처럼 흥분하더니 속았지 뭐.” 한동안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대박의 꿈’으로 들떴어요, 산더미 같은 금이라도 약속받은 것처럼. 그러나 모두 갑부가 될 수는 없었죠. 누군가 한몫 챙기면 누군가는 잃게 마련입니다. 재개발이 시행될 때 몇 퍼센트의 사람은 삶터를 잃고 몇 퍼센트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합니다. 에프티에이(FTA)로 시장이 개방되면 몇 퍼센트의 사람은 일터를 잃고 그중 몇 퍼센트는 다시는 일거리를 얻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 ‘몇 퍼센트’ 역시 인간이란 사실을, 우리는 정말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도 애써 잊으려 하는 걸까요? 더군다나 그 ‘몇 퍼센트’ 가운데 바로 내가 들어갈 수도 있는데요. 이웃의 손해가 다른 이웃의 이익이 되는 세상사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용이 될 수 없다’(세르펜스 니 에다트 세르펜템, 드라코 논 피에트, Serpens ni edat serpentem, draco non fiet)는 말이 있었대요. 이 라틴어 격언을 소개하며 에라스뮈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놀랄 만한 성장은 결국 남을 희생시킨 결과이다. 귀족들의 재산도 그들이 잘해서 커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먹어 없앤 희생자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물고기나 짐승이 꼭 그러한데 이것들은 작은 동물을 살육함으로써 자신을 살찌운다. 이 말은 백성들의 욕지기가 담긴 격언이다.” 하이네는 ‘세상사’ 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많이 가진 자는 금방 또/ 더 많이 갖게 될 것이고/ 조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의 슬픈 풍자는 계속됩니다. “땡전 한 닢 없이 당신이 빈털터리라면/ 아 그때는 무덤이나 파는 수밖에/ 이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는 이는 뭔가 가지고 있는 자들뿐이니까.” 하이네의 과장은 물론 지나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이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으니 속상할 따름입니다. 다비드의 작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다시 그려봤습니다(산의 모습은 백제 산수문전에서 따왔습니다). 나폴레옹은 고생하여 산을 넘으면 영광이 찾아온다고 약속하며,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황제가 되고 그 형제들은 유럽의 제후가 되었지요. 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역시 황금빛 가득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겼어요. 그러나 정작 병사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끝없는 전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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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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