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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01 18:45 수정 : 2009.05.01 18:45

황금으로 꾀어 고통 떠넘기는 사회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다시 개발 들어간다면서요? 죽은 사람 얼마나 억울할까.”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은 용산을 지나가며 혀를 찼습니다. “말이 좋아 재개발이지, 결국 살던 사람은 나가야 되는 거 아니오? 다들 부자 될 것처럼 흥분하더니 속았지 뭐.”

한동안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대박의 꿈’으로 들떴어요, 산더미 같은 금이라도 약속받은 것처럼. 그러나 모두 갑부가 될 수는 없었죠. 누군가 한몫 챙기면 누군가는 잃게 마련입니다. 재개발이 시행될 때 몇 퍼센트의 사람은 삶터를 잃고 몇 퍼센트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합니다. 에프티에이(FTA)로 시장이 개방되면 몇 퍼센트의 사람은 일터를 잃고 그중 몇 퍼센트는 다시는 일거리를 얻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 ‘몇 퍼센트’ 역시 인간이란 사실을, 우리는 정말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도 애써 잊으려 하는 걸까요? 더군다나 그 ‘몇 퍼센트’ 가운데 바로 내가 들어갈 수도 있는데요.

이웃의 손해가 다른 이웃의 이익이 되는 세상사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용이 될 수 없다’(세르펜스 니 에다트 세르펜템, 드라코 논 피에트, Serpens ni edat serpentem, draco non fiet)는 말이 있었대요. 이 라틴어 격언을 소개하며 에라스뮈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놀랄 만한 성장은 결국 남을 희생시킨 결과이다. 귀족들의 재산도 그들이 잘해서 커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먹어 없앤 희생자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물고기나 짐승이 꼭 그러한데 이것들은 작은 동물을 살육함으로써 자신을 살찌운다. 이 말은 백성들의 욕지기가 담긴 격언이다.”

하이네는 ‘세상사’ 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많이 가진 자는 금방 또/ 더 많이 갖게 될 것이고/ 조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의 슬픈 풍자는 계속됩니다. “땡전 한 닢 없이 당신이 빈털터리라면/ 아 그때는 무덤이나 파는 수밖에/ 이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는 이는 뭔가 가지고 있는 자들뿐이니까.” 하이네의 과장은 물론 지나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이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으니 속상할 따름입니다. 다비드의 작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다시 그려봤습니다(산의 모습은 백제 산수문전에서 따왔습니다). 나폴레옹은 고생하여 산을 넘으면 영광이 찾아온다고 약속하며,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황제가 되고 그 형제들은 유럽의 제후가 되었지요. 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역시 황금빛 가득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겼어요. 그러나 정작 병사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끝없는 전쟁뿐.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오늘날은 산더미 같은 황금을 약속하며, 한편으로는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황금을 챙기는 사람과 고통을 지불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산더미 같은 금을 약속하다’(아우레오스 몬테스 폴리케리, Aureos montes polliceri)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고전학자 에라스뮈스가 문헌을 뒤져 보았더니, 얄궂게도 이 말은 본디 ‘산을 약속하다’는 말에서 나왔다는군요. “이 과장법은 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다만 산과 관련이 있다”나요. 우연이라기엔, 뭐랄까, 씁쓸하네요.

김태권 만화가·<십자군 이야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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