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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외모, 외모보다 인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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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어린 왕자는 소행성 B612에 살았습니다. 이 작은 별을 발견한 터키 천문학자의 말을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대요. 국제학회에 전통의상을 입고 나갔기 때문이라죠. 그런데 이 학자가 멋쟁이 양복을 입고 발표를 하니, 이번엔 다들 믿었다나요. ‘옷이 날개’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죠. 라틴어 격언에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vestis virum facit, 베스티스 비룸 파키트)라고 합니다. 이 말을 소개하면서 에라스뮈스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우시카아 공주(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여기서 따온 이름입니다)는 바닷가에 떠내려 온 벌거숭이 오디세우스를 구해줬어요.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좋은 옷을 갖춰 입고 다시 나타나자 공주는 ‘저렇게 잘생긴 사람인 줄 몰랐다’며 크게 놀랐지요. 남몰래 연정까지 품게 됐어요. 사실 우리 역시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다른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곤 합니다. 내가 평가당할 때는 억울해하면서도 말이죠.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는 온갖 역경을 이겨낸 진정한 사랑의 대명사라고들 합니다(프랑스 화가 제라르의 유명한 그림을 다시 그려보았어요). 그런데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반한 것도, 프시케가 에로스에게 반한 것도, 애초에 서로의 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어요. 아휴, 세상만사가 이런 식이니, 일부러 허름하게 하고 다녀 손해를 볼 까닭은 없겠죠.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불멸의 이름을 얻은 데에는 정작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영웅들은 각자 고유한 형용사를 갖는데, 오디세우스의 ‘전용’ 수식어는 ‘많이 견디는’(polytlas, 폴뤼틀라스)이라는 단어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는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는 고통을 겪어야 했지요. 요컨대 옷맵시와 현실감각 때문이 아니라, 숱한 고통과 감투 정신 덕분에 우리는 ‘잘 참는 오디세우스’를 기억하는 겁니다. 시인 단테는 고향에서 쫓겨나 고통스러운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그는 저승을 여행하던 중 오디세우스를 만났다고 <신곡>에서 노래했어요. 우리 인간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태어났다”며 ‘고통을 견디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지옥’편 제26곡).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 갇혀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유대계 지식인 프리모 레비는, 이 대목을 동료에게 들려주며 ‘고통을 견딜’ 용기를 얻습니다. 2003년의 어느 강좌에서 서경식 선생은 이 일화를 언급하며 “내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나는 (프리모 레비의) 책에서 큰 힘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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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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