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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6 18:13 수정 : 2009.01.16 18:13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문자문화의 대중적 욕구에 부응하는 자기계발서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것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에 해당되는 것은 대체로 개인의 의지를 북돋으며 성공의 길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개인의 의지와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비합리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반면 후자에 속하는 책들은,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좀더 합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관계는 ‘상호성’을 바탕으로 하며, 따라서 ‘변증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일방적 의지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치에 합당한 것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산다. 관계의 그물망에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어하며 또한 그런 삶에 다른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원한다. 남의 뜻을 기꺼이 따르기도 하며 또한 쉽게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한다. 이런 관계의 전 영역에서 ‘설득의 욕구’는 자연스레 부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설득의 심리와 설득의 법칙을 설파하는 책들은 줄곧 독자의 높은 관심을 끌어왔다. 이들은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거쳐 설득 심리의 원칙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직접적 또는 간접적(미디어를 통한) 상호 관계에서 어떤 전략적 기술이 적용되는지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설득의 개념이 학술적·실용적으로 어디서 유래하는지 제대로 짚어주는 서적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득의 개념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설득은 수사법 또는 수사학(rhetoric)을 정의하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경우 우리말 사전에 있는 수사 또는 수사학의 정의에는 ‘설득’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어 사전에서 수사 또는 수사학을 정의할 때 설득(persuasion)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수사를 “각각의 논제에서 설득 가능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스토리텔링의 원리들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야기 철학’을 시작한 책이라고 해석한 적이 있다. 이에 빗대어 말하면, <수사학>은 ‘설득의 원리’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적 필요는 전문적 학술 분야와 관계없이 민중의 삶과 상식 그리고 여론 등에 내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수사학은 오늘날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설득의 차원에서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많지만, 그가 처음부터 강조하는 ‘토론과 논설에서 화자의 성격’에 관한 것은 오늘날 모든 설득 이론과 실천의 바탕이 된다. 그는 공적 공간에서 논설의 수사를 세 가지 관점에서 관찰한다. 화자의 성격, 심리적 상태를 포함하는 청중의 상황, 논설 자체가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청중은 다양한 감정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논설은 사실을 증명하거나 증명할 가능성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진짜 의미 있는 가르침은 화자, 곧 수사를 활용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수사를 사용해서 소통하는 것은 반박이 불가능한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변증적으로 반박 가능한 의견을 전하기 때문이다(그 반대라면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화자의 ‘정직성’이다. 청중은 정직한 사람의 말을 믿는다는 것이다. 즉 그에게 설득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직성은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그것은 논설 그 자체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이 말은 추상적인 것 같지만, 사실 매우 구체적이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사람의 논설을 읽거나 들을 때, 화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어디 출신이고 학력이 어떻고 성별이 어떻고 하는 화자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오히려 화자의 정직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직성은 논설의 논리 구조 자체에 담겨 있으며, 논설이 정직을 바탕으로 할 때 정직성은 드러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연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이는 우리에게 화자의 익명성에 대한 깊은 생각의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화자가 ‘누군지 모를 때’ 다만 그를 ‘지시하는 이름’만으로 족할 때, 논설의 논리 구조에 내재하는 정직성을 더 잘 간파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은 변증론과 윤리학의 갈래임이 드러난다”고 한다. 이는 설득의 언어가 ‘지식의 언어’이자 ‘진실의 언어’임을 뜻한다. 깊고 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설득자와 정직성을 보장하는 윤리적인 설득자는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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