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02 18:39
수정 : 2009.01.02 18:39
|
|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뭔가 ‘다짐’을 한다. 이번 연초에는 이런 욕구가 더욱 강한 것 같다. 이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내게 삼십오년 전의 군대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하사관 훈련을 마치고 배치받은 부대에 갔다. 부대 입구부터 ‘할 수 있다!’라는 모토가 눈을 끌었다. 일년쯤 지나 새로운 부대장이 왔는데, 그는 부대 모토를 ‘하면 된다!’로 바꿨다. 일년쯤 지나 부대장이 또 바뀌었다. 그 역시 모토를 교체했다. 무엇이었을까? 새 구호는 ‘한다!’였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무능하고 인간관계가 버거운 시절에는 대중적 문자문화의 중요한 분야로 ‘자기계발서’가 부상한다. 좀 투박하게 말하면, 자기계발서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대개 ‘할 수 있다’라는 의지 충전에서 ‘한다’라는 실천 표명 사이의 스펙트럼에 놓여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자기계발의 기초 강령쯤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라는 것은 ‘성공의 연금술’이다. 이것은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뭔가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지고의 ‘노력’을 강조해서 ‘하면 된다’라는 훈시를 하고, 즉각 ‘실천’을 요구하며 ‘한다’라는 행동지침을 내세운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이런 관찰들은 우리에게 얼른 두 가지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하나는 ‘문자문화의 활용’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계발적 교훈의 실용적 효과’에 관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소통 매체로서 문자문화는 ‘훈’(訓)과 ‘계’(戒)의 내용을 담는 일에서 그 활용도를 극대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훈이든 계이든 글을 ‘새겨’ 전달하고, 마음에 ‘새길’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하지 말라!’는 계명들이 많았다. 석판에 문자로 새겨진 십계명은 그 전형적 예다. 현대의 자기계발서는 부정적 계명 대신에 ‘하라!’라는 긍정적 훈시를 한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될 것처럼 믿고, 된 것처럼 미리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내세우지 않는가.
그런데 자기계발의 교훈에 탐닉하면, 문자문화를 탁월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쉽게 말해, 책을 읽으며 얻는 이점들에서) 멀어질 수 있다. 책읽기는, 어떤 이미지와 소리에 고착되지 않으므로, 책의 내용으로부터 전이된 이미지와 소리를 창조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글자를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모습·색깔·소리·동작·풍경 등을 연출해낸다. 곧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편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는 영혼과 우주를 논해도 상상력을 줄인다. 기본적으로 훈계하고 ‘지시’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예화같이 스토리텔링 기법을 쓰기도 하지만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지시적이다. 자기계발서에 탐닉하면 상상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청소년을 위한 노골적 자기계발서가 부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면 자기계발서의 가르침은 얼마나 실용적 효과가 있을까? 물론 그것으로부터 효과를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쨌든 자기계발서가 미래를 위해 꿈꾸고 마음먹기를 기본으로 강조한다는 점을 보면, 그 효과는 상당히 미지수다. 흔히 말하듯 마음먹어도 현실에 부닥치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먹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곧 마음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현대과학의 최근 성과에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 인지과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개리 마커스가 주장하듯이, 인간의 마음은 일종의 ‘클루지’(kluge)일 가능성이 높다. 곧 불완전한 요소들이 서툴게 짜맞추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선인들이 직감했듯이 마음은 확고하기보다 변덕스럽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관성 때문에 어떤 사태에 대해 ‘숙고 체계’보다는 ‘반사 체계’를 더 잘 가동한다. 그러므로 자기계발적 인지로 마음이 지속적으로 확고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또한 강압적 구호가 필요한지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많은 자기계발 교훈은 코엘류의 말처럼 은유이지 직설법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에,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하면 된다’ ‘한다’ 같은 강압적인 구호에 끌린다. 그러나 어려움을 돌파하려면, 마음먹기보다는 숙고하기가 더 중요하다. 마커스도 차분히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마음먹게 하는’ 책보다 ‘생각하게 하는’ 책이 위기 극복과 미래 성공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