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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4 19:24 수정 : 2008.09.04 19:24

부산 온천천 천변 콘크리트 옹벽에 그린 제이앤제이 크루-마이어홀츠의 그래피티 작품. 제이앤제이 크루 제공

창조와 파괴의 ‘그래피티’

홍대앞 ‘상상마당’ 압구정 ‘토끼굴’
부천 오정대로·옹벽 부산 온천천 등
“철거요? 상관 안해요”

왼쪽부터 마이어홀츠, 임동주, 유인준. 뒤 그림은 서울 홍대 앞 상상마당 1층 입구에 그린 제이앤제이 크루-마이어홀츠의 그래피티 작품. 상상마당 제공
“야 멋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1층 입구. 핫팬츠 차림에 귀고리를 한 젊은 여성들이 벽화를 보고는 한마디씩 했다. 홍길동과 힙합보이가 용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가로 9m 세로 3.5m 크기의 벽화가 거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홍길동이 든 것은 스프레이. 벽화를 그리는 젊은이 3명 역시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다.

이들은 임동주(31), 유인준(31), 그리고 독일인 크리스티안 윤성 마이어홀츠(28). 각각 ‘제이플로우’, ‘아르타임 조’, ‘모기’라고 불리는 그래피티, 그러니까 벽화 작가들이다.

그래피티는 휴대용 스프레이페인트가 나온 1970년대부터 생겨났다. 도시의 건달들이 건물벽, 지하철·열차의 객차 등에 자기 또는 패거리의 이름이나 상징을 그려 영역을 표시한 데서 비롯됐다. 미국 뉴욕의 할렘가가 가장 유명하다. 이후 힙합미술로 정착되면서 젊은이의 상징이 됐다.

“유토피아로 가는 홍길동한테 스프레이를 쥐여줌으로써 그래피티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어요.”

임씨와 유씨는 지난 2001년부터 ‘제이앤제이 크루’란 이름으로 활동해온 그래피티 작가. 어머니가 한국인인 마이어홀츠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 작가다. 2007년 유씨가 유럽에 원정을 갔다가 만난 뒤 여러 차례 공동작업을 했다. 이번에는 마이어홀츠가 그래피티스프레이 제조업체인 ‘몬타나’의 후원을 받아 독일의 예술전문 채널인 아르테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팀까지 끌고 왔다.


이들은 함께 스프레이를 쓰고 있달 뿐 스타일은 제각각.

임씨가 그린 용은 상상동물이지만 사실적이며 단청빛인데, 유씨나 마이어홀츠의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만화 같은 느낌이다. 유씨는 그것이 그래피티의 묘미라고 말했다. 촬영팀으로 온 코리나 멜허(브라운슈바이크 예술대학 3)는 “한국인 작품은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앞서 부산 온천장역 아래 온천천을 다녀왔다. 가로 15m 세로 3.5m 크기의 천변그림에는 용 대신 해적선이 등장한다. 유토피아로 간다는 내용은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것과 같지만 색조가 더 밝고 세부묘사에 더 무게를 뒀다.

홍대 주변 그래피티
부산 온천천 천변 옹벽은 ‘명예의 전당’으로 불린다. 서울 압구정동 올림픽대로 밑 통로인 일명 ‘토끼굴’, 경기도 부천 오정대로의 시멘트 옹벽처럼. 이들은 세 곳에 모두 대형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부산 명예의 전당은 곧 없어질 예정이다. 부산시에서 하천을 정비하면서 옹벽에 타일을 붙이고 있다. 상상마당 것 또한 한달 정도 전시하고 철거할 예정이다.

“작품을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이 남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유씨는 철거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피티는 그림 위에 그림이 덮이는 게 상례. 그림을 마음 놓고 그릴 수 있는 장소가 제한돼 있어 불가피하다. 토끼굴은 그림 덧칠이 반복돼 페인트층이 2~3㎝에 이른다.

제이앤제이 크루 같은 활성 작가나 팀은 30여 명. 원탁 크루, 매드비터 크루 등의 팀들이 있고 태길, 싼타, 후디니, 코마, 반달 등의 개인작가들이 있다. 30대 후반인 코마와 반달이 1세대며, 나머지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다. 이들은 낮에는 책표지, 앨범재킷, 연극·공연 무대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이고 밤에는 그래피티 작가가 된다. 작품성을 중시하는 이들 그룹 외에 모험을 즐기는 부류까지 합치면 그래피티 작가는 100~200명에 이른다. 모험을 즐기는 이들은 낙서가 금지돼 있어 들키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장소, 예컨대 열차나 전동차 또는 건물 정면 등에 이름 석 자 남기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알리고자 하는 것은 같지만 작가의식의 유무에서 차이가 난다.

압구정 토끼굴과 부천시 오정동이 방치된 곳이라면 홍대 부근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있다. 가게의 셔터, 지하클럽 입구, 주차장 벽, 골목 안쪽 건물 벽 등에 그린 그래피티들은 건물주가 동의한 것 외는 불법이다. 하지만 경찰의 단속은 거의 없는 편. 유씨는 “그림을 그리던 중 경찰의 제지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단속이 심한 편이란다. 마이어홀츠는 “전담경찰이 따로 있다. 그래피티족 역시 경찰의 수색에 대비해 스케치를 남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