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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6 20:22 수정 : 2008.06.06 20:22

디아스포라의 눈. 그림 허라미 mojara77@hanmail.net

디아스포라의 눈 /

1주일 전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인터넷 수신 메일을 체크해보니 서울의 한홍구 교수한테서 메일이 와 있었다. 서울 체류 중에 큰 신세를 졌는데 일본에 돌아온 뒤 제대로 인사치레도 하지 못해 소식을 물어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메일을 열어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안 좋은 시기에 한국에 다녀가셨어요. 어떻게 선생님 가시고 한 달여 만에 시민들이 길바닥에 쏟아져 나오지요?”

나는 2006년 4월부터 2008년 3월까지 한국에 머물렀는데, 그 시기는 한국 시민운동, 진보운동의 정체기로, 진보세력이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정권을 보수파한테 너무 쉽게 내준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에 각인돼 있던 과거의 이미지와 눈앞에 있는 현실과의 갭(차이)에 당혹했다. 그런 나에게 한 교수는 항상 역사의 예측 불가능성을 강조했다. 6월 항쟁을 가까이서 체험한 그는 박종철 학생의 고문사 사건 뒤 불과 몇 개월 만에 저 대항쟁이 불타오르고 마침내 군사정권의 퇴장까지 실현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자주 얘기했다. 따라서 지금 무기력하고 무관심한듯이 보이는 대중도 언제 어떤 계기로 들고 일어설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런 예측 불가능한 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제한 철폐에 대한 항의운동이 뜻밖에도 확산·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운동은 기성의 어떤 조직이나 지도부가 지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어제(6월1일) 일본 신문은 일련의 한국 집회 참가자와 관련해 그 수가 10만명에 달하며,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은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복지 정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래디컬한(급진적인) 변혁이나 혁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도 최근 내 ‘예측’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 <게잡이 배>(蟹工船)가 폭발적으로 팔리고 있다.


“참 예측불허이면서도 역동적이네요. 이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됩니다.” 한 교수는 내게 보낸 메일에서 그렇게 썼다. 정말 그렇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래디컬한(급진적인) 변혁이나 혁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회의주의자인 내 ‘예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만큼 단언할 순 없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도 최근 내 ‘예측’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 <게잡이 배>(蟹工船. 과거 ‘게공선’으로 번역됨)가 폭발적으로 팔리고 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적 명작이다. 한데 이미 ‘과거의 역사’에 속하는 것이어서 요즘 독자의 선호나 관심 대상이 될 수 없는 책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나만이 아니다. 그런데 올해 2월께부터 갑자기 팔리기 시작해 책을 낸 출판사도 대폭 증쇄를 했다고 한다.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는 1903년 아키타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홋카이도의 오타루 고등상업학교를 나와 은행원이 됐으나 학교 다닐 때부터 문학활동과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했다. 일본공산당에 대한 대탄압과 고문을 그린 <1928년 3월15일>로 권력의 미움을 샀다. 세계 대공황이 일어난 해인 1929년에 쓴 대표작이 <게잡이 배>다. 이 작품에서 그는 소련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드는 게잡이 배를 무대로 지옥 같은 혹사와 학대를 당하며 일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렸다. 그 폭력은 회사의 이윤과 대일본제국 국책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상황을 참아내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결국 자연발생적으로 들고 일어나 스트라이크에 돌입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리라 믿고 있던 일본 해군의 탄압에 직면한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그 본원적 축적기에 저지른 비인간적 착취의 진실이다. 이러한 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작가 고바야시는 치안유지법과 불경죄로 검거된 뒤 일단 석방돼 지하생활을 시작했으나 1933년 2월20일 내통자의 밀고로 다시 체포당해 바로 그날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학살당한다.

중국의 문호 루쉰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죽음을 기려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일본과 중국의 대중은 원래 형제다. 자산계급은 대중을 속이고 그 피로 경계선을 그었다. 그리고 계속 긋고 있다. 하지만 무산계급과 그 선도자들은 피로 그것을 씻어낸다. 동지 고바야시의 죽음은 그것을 실증하는 한 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굳건히 동지 고바야시의 핏길을 따라 전진하고 손을 맞잡을 것이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계급적 국제연대에 의한 반제투쟁을 호소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부르짖음을 누구보다 깊이 받아들인 사람은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을 당한 중국의 루쉰이었다. 그 뒤의 역사는 고바야시와 루쉰이 피흘리며 발했던 부르짖음을 배반해 왔다.

하지만 지금 그 고바야시의 <게잡이 배>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빈곤’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감을 동반하지 않는 사어가 돼 있었다. 고바야시 다키지 따위를 읽는 것은 연구자나 기인들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빈곤’이 다시금 절실한 실감 속에 거론되는 사회가 됐다. 젊은이들이 <게잡이 배>를 읽는 것은 거기에 묘사된 비인간적인 착취의 세계에 자신들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을 과대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경험도 조직도 없는 고립된 비정규직인 그들은 점점 출구 없는 게잡이 배 밑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가 죽었을 때 루쉰이 발한 부르짖음은 지금도 살아 있다. 자산계급은 무산계급을 속이고 경계선을 긋는다. 무산계급은 벌써 몇 번이나 속아왔다. 이제 더 속아선 안 된다.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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