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로그인
컨텐츠

등록 : 2007.03.15 17:33 수정 : 2007.03.15 17:33

1936년생인 정규헌 옹은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그이는 나라 안에 하나 남은 ‘얘기장수’, 곧 책 읽어 주는 남자다.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 / ‘얘기장수’ 정규헌 할아버지

5~6년 전에 조선 후기의 문사, 형암(炯庵) 이덕무의 글을 샅샅이 읽은 적이 있다. 하릴없이 시간이 많이 생겨 주체할 수 없었으니 난감한 상황을 그와 함께 지낸 것이다. 그때 읽은 글 중에 ‘은애전(銀愛傳)’이라는 것이 있다. 전남 강진현 탑동리에 살던 김은애라는 규중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 마을에 젊은 시절을 창기(娼妓)로 보낸 안씨 성을 가진 노파가 살았는데 성질이 고약하고 헤프게 말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였다. 그 노파는 먹을거리조차 변변하게 장만하지 못하면서도 이집 저집에서 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으니 은애의 집도 수차례 그렇게 당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은 은애의 어머니가 이제 그만 꾸어 가라고 하며 쌀ㆍ콩ㆍ소금ㆍ메주 따위를 주지 않자 안 노파가 은애의 어머니를 해치려 꿍꿍이를 꾸몄다. 안 노파는 같은 마을에 사는 최정련이라는 아이를 꼬드겼는데 나이는 열 너덧 살이며 남편 누이의 손자였다. 안 노파가 최정련에게 말하기를 은애를 색시로 삼으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정련은 서로 신분이 다르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대꾸를 했다. 그러자 안 노파는 이미 은애와 정을 통했다고 소문을 내라고 했다. 그리하면 자신이 나서서 혼인을 성사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을 주인공으로 착각한 일도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치료 할 수 있는 돈을 달라고 했다. 정련은 은애를 마음속에 두고 있기는 했지만 서로 사는 처지가 달라 혼인은 꿈도 꾸지 못하던 차에 안 노파가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니 선뜻 대답을 하고 돌아갔다. 드디어는 안 노파가 은애는 정련과 정을 통한 사이라며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정조를 지키는 것이 목숨을 지키는 것과 같았던 시대에 그토록 험한 소문이 났으니 은애는 시집을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 중 김양준이라는 총각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혼인을 하게 되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안 노파는 더욱 악질적으로 소문을 내 은애와 정련을 함께 욕을 하며 참으로 나의 원수라고까지 했다. 이에 부정한 여자로 소문이 나게 된 은애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는 안 노파를 죽일 결심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밤, 안 노파가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한 은애는 부엌칼을 들고 들어가 눈썹과 눈을 거꾸로 세우고 번개같이 노파를 수차례 찔렀다고 한다. 이윽고 노파가 죽자 내처 최정련의 집으로 향하여 달려가려 하자 은애의 어머니가 울며 말리는 바람에 가지 못했으며 그만 관에 잡혀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은애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그리했을까.

헛된 소문에 마음을 앓던 은애가 저지른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사람을 죽였으니 어쩔 것인가. 그녀 또한 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경술년 여름,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지금으로 치면 감형을 하거나 사면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은애 또한 풀려 날 수 있었으니 그녀가 옥에서 나오던 날, 오히려 정녀(貞女)라는 소문이 나 중매가 물밀 듯이 들어 와 다시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떤가, 재미있는가. 그러나 나는 안다.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하는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하려는 것은 은애의 이야기가 아니다. ‘은애전’에는 김은애의 이야기 말고도 또 이와 유사한 전남 장흥에 살던 신여척(申汝倜)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 끝에 임금이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남자가 종로 거리의 담배 가게에서 소설책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크게 실의하는 곳에 이르자 홀연히 눈이 찢어질 듯이 거품을 북적거리며 담배 써는 칼을 들어 소설책 읽는 사람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였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대중들 앞에서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곧, 책 읽어주는 남자인 것이다. 오늘은 그 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는 은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놓지 못했지만 그들이라면 이 정도의 이야기일지라도 흐름을 밀기도 하고 끊기도 하며 대중들의 심리를 능수능란하게 파고드는 화술로 반지르르하게 풀어 놓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담배 가게 앞에서 이야기를 듣던 청중이 자신이 흠모하던 영웅이 실의에 빠지자 그것이 마치 책을 읽고 있는 그 사람 탓인양 착각하여 그를 죽였을까.

절정에 얘기 뚝 그쳐 돈 얻어내

이덕무가 살았던 조선후기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연암 박지원에게 허생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던 윤영(尹映)과 같은 인물이 그 대표적이며 김옹(金翁), 민옹(閔翁), 오물음(吳物音), 김중진(金仲眞), 그리고 이업복(李業福)과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당시의 대중들은 글자를 몰랐으니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니 글을 깨친 사람들 중 언변이 좋은 이들이 저자거리와 같은 곳이나 농한기면 시골의 사랑채는 물론 심지어는 여인네들이 머무는 안채까지도 들어가 책을 읽어주곤 했던 것이다.

고향 청양에서 이름날린 얘기장수였던 아버지
대금쟁이 대동해 음악 깔고 듣는이 쥐락펴락
부친 따라 배워 어릴적 곧잘 책을 읽어주곤 했다
예순셋 퇴직해 그때로 다시 돌아갈 채비중이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아마 나라 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얘기장수”라고 짐작되는 이다. 그이는 정규헌 옹이다. 고향이 청양인 그이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봄이었으며 당시는 계룡시에 살고 있었다. 1936년생이니 내가 만난 당시는 예순 셋이었으며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예전에 했었던 일을 다시 하려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어린 시절에 해 봤다는 그 일이 바로 책 읽어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이의 부친인 정백섭 옹(1893~1964) 또한 고향에서는 이름을 날린 빼어난 “얘기장수”였으며 정규헌 옹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구경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이야기책을 읽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들이 그저 짐작하는 그런 심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부친이 주로 읽었던 책은 딱지본이라고 불리는 <장화홍련전>이거나 <신유복전>과 같은 것이었지만 마치 소리꾼이 고수와 함께 다니듯이 대금을 잘 부는 이를 대동하고 다녔다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배경음악이 깔렸으며 이야기가 격정적으로 흐를 때면 대금소리도 덩달아 숨 가쁘게 치달았으며 애절할 때는 또 애잔하기 그지없는 소리로 운율을 맞추어 듣는 이들을 쥐락펴락 했다는 것이다.

정규헌 옹은 아버지의 모습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 자신 또한 열 서너 살부터 마을의 사랑방으로 불려 나가 곧잘 책을 읽곤 했지만 청년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도시로 직장을 나가는 바람에 그만 두었다. 그러나 그이는 돈을 받고 하는 전문적인 것은 아니었다. 앞서 담배 써는 칼에 맞아 죽은 이나 거명한 다른 사람들은 돈을 받고 그것만을 했으며 동대문 밖에 살던 전기수는 특히 능했다고 한다. 곧 이야기의 어느 절정에 이르면 그만 뚝 그치고 마치 그만 둘 것 같은 행세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듣던 청중들은 다음이 궁금하여 빨리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바라며 돈을 던지곤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청중을 어르고 달래며 돈을 얻어내는 재주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했으며 그것에 능한 이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고도 한다.

이야기 장소제공 대가로 ‘오줌누라’

또 시골에서는 서로 이야기꾼을 청하여 자신의 사랑채에 머물기를 권하기도 했다. 하나둘씩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모이면 물을 후하게 주었다. 그리곤 마당에 오줌을 받을 항아리를 죽 늘어놓았으니 한편으로 보면 인심 넉넉한 배려인 것 같지만 속내는 달랐다. 장소를 제공하는 대신 거름을 장만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가 귀한 오줌을 아무 곳에나 갈기겠는가. 사람들은 오줌통을 부여잡고 참을 수 있을 때 까지 참으며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의 집에 가서 누고 왔다고 하니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야기판의 풍경에 웃음이 머금어지곤 했다.

오늘 문득 그이가 생각난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서로 얼굴을 보며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본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정규헌 옹과 벤야민 그리고 아도르노가 동시에 떠올랐었다. 벤야민이 지적한대로 인쇄를 통한 대량복제의 시작, 그리고 전파를 통한 메시지의 무차별적인 확대보급에 따른 획득과 상실에 대해 생각했으며, 또한 벤야민이 인쇄나 사진 그리고 영화와 같은 매체들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감각은 시각에서 촉각으로 발전했다고 한 말도 떠올랐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영상매체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의 감각기관을 퇴화시키고 말 것이라고 한 말도 그 순간에 오버랩되었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내 생각은 아도르노에 치우친다. 나는 질감과 촉감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굳이 최첨단 기술의 광고를 보고 정규헌 옹과 같은 책 읽어주는 남자들의 케케묵은 소통방식이 그리워진 것도 그것 때문이다. 얼마 전, 소설가 이호철 선생이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쓴 소설을 읽어주는 모임을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그 모임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이호철 선생의 목소리가 자신의 손끝으로 배어 나온 영혼의 울림을 어루만지며 읽어나갈 장면만 생각해도 나는 설렌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그 순간들이 내가 지닌 모든 감각기관을 올올이 깨어나게 할 것임을 믿는 것이다.

이지누/글쓰는 사진가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