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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국가와 종교의 잘못된 결합, 나치즘으로 귀결”

등록 :2020-10-23 05:00수정 :2020-10-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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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난바라 시게루의 유럽 정신사 연구
나치즘 ‘신정국가’ 비판 통해 일본 군국주의 비판한 대표작

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 연구

난바라 시게루 지음, 윤인로 옮김/소명출판·2만원

난바라 시게루(1889~1974)는 태평양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의 일본 자유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다. 도쿄대 조교수로 있던 중 유럽 유학을 떠나 런던정경대·베를린대·그르노블대에서 연구했으며, 전후 도쿄대 초대 총장이 돼 평화헌법 제정에 앞장섰다. 난바라는 일본 사상계의 거두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스승으로 마루야마에게 일본 정치사상을 연구하도록 독려한 것으로 유명하며, 무교회주의를 주창해 김교신·함석헌에게 깊은 영향을 준 우치무라 간조 밑에서 기독교 사상을 배운 사람이기도 하다. <국가와 종교>는 난바라의 평화주의 정치철학의 핵심이 요약된 대표 저작이다. 이 책의 초판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 나왔다. 일본 군국주의가 광란의 질주를 하던 때 출간된 셈인데, 이 책에서 난바라는 나치즘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유럽 정신사 연구’를 통해 ‘정치와 종교’ 혹은 ‘국가와 신앙’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지은이의 독특한 관점에 따라 상술한다. 난바라가 보기에 국가와 종교는 서로 합쳐져서는 안 되는 별개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약 종교가 국가에 통합되면 종교는 종교대로 그 순수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고, 국가도 국가로서 올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논의를 해나갈 때 난바라가 종교의 모범으로 삼는 것이 근동에서 발생하고 유럽에서 흥성한 기독교다. 기독교야말로 인간의 보편적 구원의 길을 밝힌 참된 종교라는 것이 난바라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유럽 정신사’를 연구하는 것은 특정한 지역의 역사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의 문제에 대한 탐구가 된다.

난바라가 이 책에서 모범으로 삼는 기독교는 예수가 시작하고 바울이 전파한 ‘초기 기독교’다. 이 시기의 기독교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초기 기독교는 로마 제국이라는 억압적인 정치체제 안에서 자라났다. 이 제국은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며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제창했지만, 그 안에서 개인들은 원자와 같은 상태로 흩어져 정치적 압제 속에 고통받고 있었다.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에 이 개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난바라는 에피쿠로스주의와 스토아주의를 꼽는다. 그러나 이 철학 사상은 소수의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신 자신이 이 땅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씻었다는 가르침’을 통해 차별 없는 구원의 길을 열었다. 종래의 철학이 ‘정신의 귀족주의’였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복음의 평민주의’였다고 난바라는 말한다. 이 기독교에서 모든 기존의 가치가 전복됐다. ‘이제까지 스스로 현명하다고 했던 자가 현명하지 못한 자가 되고, 가치 없는 자가 가치 있는 자가 되는 세계’를 열어 보인 것이다. 기독교는 무력하고 소외된 자들이 모인 ‘사랑의 공동체’였다.

이 초기 기독교는 ‘신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는데, 예수가 가르친 ‘신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나라여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는 세력을 얻어 로마의 국교가 된 뒤로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회 제도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 시절 기독교는 이 교회 제도야말로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실현된 ‘신의 나라’이며, 현실의 국가는 ‘땅의 나라’로서 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세계관을 처음 정립한 사람이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였으며, 뒤이어 중세 최고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사상을 신학의 형태로 집대성했다고 난바라는 말한다. 그러나 난바라가 보기에 이런 신학은 초기 기독교 근본 원리를 배반한 것일 뿐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개인은 직접 신과 연결돼 있었는데, 나중에 신과 인간 사이에 교황과 사제로 구성된 교회 제도가 들어섬으로써 기독교의 참모습을 잃었다는 것이다.

난바라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 제도화한 교회에 대항해 ‘보이지 않는 신의 나라’의 이상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을 거쳐 탄생한 프로테스탄티즘도 머잖아 중세의 가톨릭과 유사한 길을 걷는다. 중세의 신학이 교회를 우위에 놓고 국가를 통합하는 것이었다면,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국가가 우위에 서서 교회를 통합했다. 그런 사상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루터의 후예 헤겔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이 현실에서 실현된 것이 국가이며 이 국가는 종교를 아우른다고 보았다. “그 결과로 이제 ‘신의 나라’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본래의 특질을 상실하고 정치적 왕국으로 전락한다.”

국가와 종교를 통합한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은 머잖아 극단적인 반동을 낳았는데, 그것이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변증법’으로 뒤집은 마르크스주의였다고 난바라는 지적한다. 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신의 나라’는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인 공산주의 사회로 나타났다. 그러나 난바라는 이 세속화한 ‘신의 나라’는 기독교 정신을 극히 피상적으로 모방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은 20세기에 들어와 또 한 번의 거대한 반동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나치즘이다. 나치즘은 ‘민족공동체’를 ‘신의 나라’로 만들었고, 최고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여 고대의 신정국가와 유사한 국가를 세웠다. 종교와 국가가 다시 한번 결합한 것인데, 이 나치의 이념이 결국 끔찍한 재앙으로 끝났음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난바라는 이 책에서 종교와 국가를 통합하지 않은 채 ‘인간의 구원’과 ‘인류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 사람으로 칸트를 지목한다. 칸트는 참된 신앙의 장소로 인간 이성이 침범할 수 없는 ‘물 자체’의 세계를 그려냈으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궁극의 정치 질서로 ‘세계공화국’을 제시했다. ‘신의 나라’의 이상을 이상대로 두면서, 이 세계 안에서 인류가 정치적으로 나아갈 목표를 함께 보여준 것이다. 난바라가 해석한 이 칸트 사상은 뒷날 가라타니 고진이 주창한 ‘세계공화국’으로 이어진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일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난바라 시게루. 위키피디아 코먼스
일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난바라 시게루. 위키피디아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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