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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한 ‘착취 경제’

등록 :2020-07-31 04:59수정 :2020-07-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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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 김주희 박사 학위 논문 확장
성산업 구조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양쪽 치밀한 분석

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현실문화·2만2000원

한국어에서 ‘아가씨’라는 말은 젊은 여성을 뜻하는 동시에 ‘성매매 업소의 여성 종업원’을 뜻한다. 젊은 여성이라는 단어가 성매매 여성이라는 단어와 등치되어 사용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이 단어를 떠올리며 김주희의 <레이디 크레딧>을 읽어보라. 이 책은 성매매를 산업으로 기능하게 하는 새로운 도구로서의 금융 테크놀로지를 다룬다. ‘유흥업소 특화대출’ 상품이 만들어져 대규모 대출이 이루어지고, 여성의 ‘몸 가치’를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위계화되는 상황에 대해서. 그 끝에는 “자유를 획득하려는 여성들 스스로의 의지와 담보물 역할을 요구하는 자본의 명령이 함께 작용해 형성되는 주체성”이 남는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성매매 참여 요인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쪽에서는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며 자발적 노동 의지를 강조하고, 다른 쪽에서는 성매매를 ‘폭력’으로 정의하며 성매매피해 여성을 만드는 구조적 강제 요인을 강조한다. 그 정치적 해법으로 전자는 성매매 ‘인정’을, 후자는 ‘근절’을 주장한다. 두 입장 모두 여성이 성매매에 참여하는 중요한 이유로 경제적 요인을 꼽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도 다르다. 전자는 ‘소득’, 후자는 ‘부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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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레딧>은 ‘착취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성매매산업을 분석했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레이디 크레딧>은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선불금 등 성매매 업주와의 부채가 무효라는 판례가 이어지면서 업주가 아닌 제3자, 즉 사채업자나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여성들이 직접 대여금을 받도록 주선하는 경향이 늘고 있음을 지적한다.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이 그 역할을 한다. 이 변화로 경찰 단속에서 여성들이 자발적 성매매 행위자로 규정되어 피해 입증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제2금융권, 제3금융권이 부상하면서 ‘불법적인’ 성매매가 ‘합법적인’ 경제적 실천의 외양으로 대출 시장에 등장했다. 김주희의 <레이디 크레딧>은 ‘착취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성매매산업을 분석했다. 자본금 한 푼 없이 신용을 통해 성매매 업소가 만들어지고, 여성들은 신용 사회를 떠받치는 ‘담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업소 서열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이 연루되는 스캔들이 터지면 관련한 기사들이 줄을 잇는데, 텐프로 여성을 신비화하는 시선이 개입한다. ‘텐프로에는 2차가 없다’는 기묘한 표현 말이다. “오히려 텐프로 업소에서 유흥-접대-연애-스폰-성매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내부의 성적 장치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이 책의 지적을,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말과 연결지어 보자.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지불하니 남자가 여자에게 매기는 가격이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 남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욕에 높은 가격을 매긴 것이라는 분석이다. “텐프로라는 업소를 통해 ‘고급’으로 인정받는 것은 결국 구체성을 상실한 여성 접대부가 아니라 그곳을 이용하는 남성 고객이다.”

<레이디 크레딧>의 ‘책을 펴내며’에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소액대출 성과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빈민들에게 돈이 주어지면 그 돈으로 사업을 일으켜 스스로 가난을 극복하리라는 기치는 98%라는 비현실적인 대출 회수율로 달성된 것처럼 보였지만, 남편이 아니라 아내에게 제공하는 이 대출은 연체가 발생하면 이들 여성에게 망신을 주는 다양한 수단이 동원되었다고 알려진다. 김주희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역시, 영상을 확보한 단 하나의 수법이 “집요한 협박”이었음을 짚는다.

1974년 미국에서 대출기회균등법이 제정될 때까지 미국 여성운동의 주요한 어젠다는 ‘여성들에게도 신용을!’이었다. 이제 신용은 여성들의 몸을 ‘담보화’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덩치를 불려나간다. 낙인과 혐오가 작동하는 산업의 작동기제에 대해 읽다가, “조금씩 돈을 더 주면서 조금씩 더 산업 내부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고 있었고, 학교는 더 공부하고 싶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등록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업주에 의해 부채가 조절되던 이전과 달리 스스로 부채를 조절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소비자 금융의 ‘금융 주체’로서의 자각에 이르면, 성매매 문제를 이 시대의 ‘여성 문제’로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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