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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탈성매매, 어느 여성의 기록

등록 :2019-12-06 06:00수정 :2019-12-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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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업소 유입돼 빠져나오기까지 20년간 겪은 삶의 증언
남성 놀이문화와 성폭력 얽힌 거대 산업구조 낱낱이 드러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반비·1만8000원

<한겨레21>은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라는 기획연재를 한 적이 있었다. 2011년 11월 887호 표지이야기로 실린 기사에 따르면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가 연간 4605만건에 이른다. 이 기사에는 ‘성매매 특구’라는 말과 함께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따라 늘어선 성매매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업소들이 표시된 사진이 함께 실렸다. 왼쪽 끝에는 대검찰청이, 오른쪽 끝에는 강남경찰서가 블랙코미디처럼 버티고 있다. 탈성매매한 봄날 작가가 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라는 책 제목의 ‘길 하나 건너면’은 현실 그대로다.

저자 봄날은 197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기억하는 첫 성추행은 초등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옆집 언니의 삼촌이 했다. 잠깐 들어와볼래, 엎드려서 그림책 보고 있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하의가 벗겨졌다. 남자는 옷을 다시 입혀주면서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쥐여주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뒤 월급이 나오면 엄마가 가져갔다. 회식을 하다 술이 과해진 날, 통근버스 기사가 집이 가까우니 태워주겠다고 한 뒤 강간했다. 그때 생각한 것은 아버지가 알면 맞아 죽을 텐데 하는 두려움. 같이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가 ‘나’를 가라오케라고 불리던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20여 년 성매매업소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룸살롱에 종종 붙어있는 비즈니스 클럽(‘business club’)이라는 말은 농담만은 아니어서 사업체끼리, 공무원을, 경찰을 접대하는 자리들이 이어졌다고 이 책은 증언한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룸살롱에 종종 붙어있는 비즈니스 클럽(‘business club’)이라는 말은 농담만은 아니어서 사업체끼리, 공무원을, 경찰을 접대하는 자리들이 이어졌다고 이 책은 증언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20여 년을 업소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탈성매매 후에도 한동안은 내 발로 업소를 찾아갔다는 사실이 죄책감이 되었다. 맞아도 내 잘못, 강간을 당해도 내 잘못, 남자에게 버려져도 내 잘못, 성매매를 해도 내 잘못. 모든 것을 내가 감당해야 했다.” 처음에는 가라오케에서 2차 없이 일을 했고, 2차를 강요하는 업주 때문에 고민이 심하던 때 룸살롱에서 2차 없이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옮기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나자 업주는 영수증을 내밀었다. 옷, 화장품, 신발, 미용실 비용 700만원. 이제는 2차를 나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전에 이런 비용에 대한 말은 듣지 못했지만 “다 싫으면 지금 당장 빚 갚고 나가.” 그리고 언제나 돌아오는 협박. 말 안 들으면 사창가에 팔아버린다. 가정이 있어서 비누 냄새를 풍기면 안 되기에 물로만 씻었다는 남자는 콘돔은 하지 않았다. 진상 손님에게 맞은 뒤에 때린 남자의 술값을 물어내야 했다.

피임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며 임신은 무조건 중절, 중절수술을 위해 3일 쉬면 결근비를 내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빚이 늘지는 않는 정도다. 계속 소개쟁이의 말을 따라 충정도, 전라도, 경기도, 제주도로 업소를 옮겨다닌다. 업소의 ‘신고식’. 손님들 앞에서 치마를 올리며 팬티를 내리고 인사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남자들은 더욱 황당한 것을 주문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끝내는 편이 낫다. 손님 몰래 술을 버리는 ‘술작업’을 하다 손님에게 들키면 손님 술값도 물어야 한다. 룸살롱에 종종 붙어 있는 비즈니스클럽(‘business club’)이라는 말은 농담만은 아니어서 사업체끼리, 공무원을, 경찰을 접대하는 자리들이 이어졌다. 경찰은 사복 차림으로 와도 알 수 있다. 업주가 잘 모시라고 따로 언급하거나 매상 올리지 말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성매매가 개인의 ‘선택’이고 ‘직업’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가(“요즘은 다르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이도 있으리라). 성노동론에 대해서도 저자는 “‘팔려가는 공포’를 느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론에만 매몰된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여성을 소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뿌리 깊고 공고한 구조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을 성매매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큰 무리가 있다고. 성매매 업소는 무조건 새로 일을 시작한 어린 사람만 찾는다. 손님들 앞에서 옷을 벗고 겪는 일이 수치스러워 울면 손님들은 순진하다고 칭찬한다.

책의 8장에는 ‘돈으로 여성의 인격을 사는 자들’이라는 제목의, 성구매들에 대한 글이 실렸다. ‘오빠’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이 남자들은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앞자리에 앉은 동료일 수도 있고, 집에 돌아가면 만나는 가족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일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가장 괴로운 부분은, 손님인 남자들이 기분 좋게 웃고 있는 대목들이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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