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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작가를 꿈꾸는 당신께…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장을 쓰라

등록 :2019-11-08 19:50수정 :2019-11-0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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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② 작가가 된다는 것, 책을 쓴다는 것

반응하는 글과 기획하는 글
차이를 느끼고 훈련해야 한다

한 문장 쓰고 다음 문장 쓰기
막히는 지점을 넘어봐야 한다

자학과 수치심, 허영심 느끼며
사고를 성장시키는 게 책 쓰기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사람은 언제 작가가 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고민한 적이 있다. 이 질문을 ‘작가 지망생은 언제 작가가 되는 걸까’로 바꾸면 문제가 꽤 복잡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등단을 기준으로 삼는다.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하면 자동차를 몰아도 되는 것처럼, 신춘문예 같은 문학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문예지에 글을 실으면 작가로 활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문학 공모전을 거치지 않고 문예지에 원고를 실은 것도 아니지만 책을 내고 글을 쓰는 문인들은 작가가 아닌 걸까? 등단은 작가의 기준이 아니며, 문학 공모전은 한국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작가 발굴 방식이지 면허나 인증 제도는 될 수 없다. 사실 등단이 뭔지, 어떤 문예지나 공모전이 그 요건에 들어맞고, 어떤 잡지나 공모전은 그렇지 않은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반대편에는 ‘한 문장이라도 글을 썼다면 이미 작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용기를 주는 구호이기는 하지만, 별 의미는 없는 말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도 ‘한 문장만 쓰면 이미 작가니까 그 이상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리라.

작가가 아닌 상태가 있고, 작가인 상태가 있다. 그 사이에 회색 지대가 있는데, 그 지대에 있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산문 작가를 꿈꾸는 분들께 내가 제안하는 목표는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장 쓰기’다. 200자 원고지 600장은 얇은 단행본 한 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이다. 예전에는 단행본 한 권에 필요한 원고 분량을 200자 원고지 1000장 정도로 봤는데, 점점 책이 얇아져서 요즘은 600장 남짓이라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는 Ctrl, Q, I 자판을 함께 누르면 작성 중인 문서가 200자 원고지로 몇 장인지 계산해준다.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

그렇게 한 주제로 600장 분량의 원고를 쓴 뒤 지인에게 보여주자. 원고지 100장 분량의 단편소설이라면 여섯 편을, 원고지 30장 분량의 에세이라면 스무 편을 쓰라는 말이다. 하나의 제목 아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글들이어야 한다. 실용서도 마찬가지다. 제본 방식은 자유이고 전자문서 형태라도 좋지만, 보는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완결된 형태로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이든 반응을 들어보라. 주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이를 해낸 사람이라면 작가 지망생과 작가를 가르는 흐릿한 선을 넘어섰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어도 괜찮고, 아직 출간을 못 했어도 상관없다. 반대로 어떤 단편소설 한 편이 신춘문예에 운 좋게 당선됐다 하더라도, 아직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글을 쓰지 못했다면 그 선을 넘지 못했다고 나는 간주한다.

다시 말해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는 게 내 조언이다. 저자를 목표로 삼으면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작가의 작업에 대해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한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쓰고 또 다음 문장을 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오해한다. 그것은 다른 훈련 없이 슈팅 연습만 계속했더니 축구 선수가 됐다거나, 부품을 하나하나 이어 붙였더니 어느새 비행기가 조립돼 있더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작가의 일에는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이 포함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실용서든 마찬가지다. 이런 기획력 역시 훈련해서 길러야 한다. 반응하는 글(때로 배설하는 글)과 기획하는 글은 다르다. 그 차이를 느껴봐야 한다. 에세이 열아홉 편의 글감은 있는데 추가로 써야 하는 한 편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속을 썩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책은 단순히 문장의 모음이 아니기에, 들어가는 노력이 문장마다 다르다. 그러다 보면 ‘한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쓴다’는 행위가 막히는 지점이 온다. 이 지점을 넘는 경험도 해봐야 한다. 원고지 30장 분량의 글은 막힘없이 뚝딱 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력이 대단하거나 운이 엄청나게 좋다면 원고지 100장짜리 글도 술술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원고지 600장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쓴 글을 시간이 지나 다시 살피면서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점검하는 것, 그러다 때로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가끔은 ‘나 글 진짜 못 쓰는구나’라고 자학하는 것도 작가의 일이다. 수치심을 무릅쓰고 자기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뒤 피드백을 받아봐야 한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칭찬 외에 다른 말을 한마디만 하면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그 단계도 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쓰는 작업’과 긴밀히 엮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성장과 변화 없이 쓴 책은 책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을 내고 저자가 되는 방법은 쉽다면 쉽고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자비출판 전문 출판사들을 금방 찾을 수 있다. 수백만원 정도면 책 한 권을 내고 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 오늘 저녁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면서 밤새 떠들고, 그 내용을 녹음해 속기사무소에 보내서 녹취록을 받은 뒤, 그 녹취록을 자비출판 전문 출판사에 보내 <나의 개똥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어 도서관과 서점에 배포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얻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납품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고급스러운 표지와 디자인을 원한다면 비용을 더 치르면 된다.

자비 출판사를 찾는 심정은 이해한다.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작가라는 직함을 부러워한다. 작가가 되려는 이유에 그런 허영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작가들이야말로 바로 그런 허영심 덩어리들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직업에 선망을 품고, 그중 몇 사람이 실제로 작가가 된다. ‘작가가 되고 싶다, 되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어떤 고비를 넘게 해주기도 한다. 태권도를 좋아하는 아이가 검은 띠를 부러워하는 건 흉잡힐 일이 조금도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검은 띠를 몰래 허리에 두른다고 해서 저절로 검은 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저자가 되려면 어떤 수준의 단련이 필요하고, 그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 책을 쓰면서 그는 서서히 변해간다. 수련자에서 무도가로.

책을 쓰는 과정은 사람의 사고를 성장시킨다. 페이스북에 올릴 게시물을 쓰는 일과 책 집필은 다르다. 한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쓰려면 집중력과 인내력이 필요하고, 다방면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생긴다. 저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려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살피게 되며, 자기가 던지려는 메시지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비판할지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재반박을 준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처음의 주장이나 자기 자신 역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런 성장과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 성장과 변화 없이 발간되는 인쇄물은 내가 말하는 ‘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의 예쁜 사진들을 모은 화보집이 쏟아져 나오고,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도 되는 시대에 이런 구분이 고루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 책들도 팬시 상품으로서 역할을 하며, 팬시 상품을 만들거나 사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기획-제작-판매가 팬시 상품 시장의 논리를 따르기에, 그런 책을 만들려는 분들께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이야기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쓰기’라는 단어로 검색해보면 수백권의 책이 나온다. 내용도 실로 다양해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법만 다루는 책이 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너무 세부적이고 사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시장과 마케팅 환경도 격변 중이어서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조언도 있고, 너무 상식적이어서 별 도움이 안 되는 말도 섞여 있다.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주겠다면서 연습하기 좋은 공원의 조건을 길게 열거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자전거는 적당히 평평하고 사람 적은 가까운 공터에 가서 연습하면 된다.

나는 이 연재에서 ‘하나의 테마로 200자 원고지 600장을 쓰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그게 훨씬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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