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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소설가 장강명이 권하는 ‘책 쓰는 법’

등록 :2019-10-26 11:07수정 :2019-10-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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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첫회
①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

짧고 명쾌한 설명과 즐거움 주는
‘스낵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
이분법적 사고, 반지성주의 퍼져

복잡한 사연과 이해관계 판단하고
공들여 가다듬은 생각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는 책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히키타 사토시의 <즐거운 자전거 생활>이라는 책을 행복한 기분으로 읽었다. 방송 프로듀서인 저자는 자신이 자전거 전문가도 레이서도 아니지만, 자전거의 즐거움만은 남들보다 많이 안다며 이렇게 썼다. “모든 분들이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고, 자전거가 우리 사회에 아주 이롭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정말로 좋겠다.”

이 책에는 초심자에게 유용한 조언이 가득하다. 오른쪽 브레이크와 왼쪽 브레이크가 어떻게 다른지, 버스나 스쿠터가 옆에 있으면 어떻게 피하는 게 좋은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게 있는지 등등.

그런 팁도 좋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저자의 비전에 감탄했다. 히키타는 21세기를 헤쳐 나갈 희망은 자전거에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자전거는 우리의 마지막 교통수단이며, 자전거를 타서 환경을 살리고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자전거를 가운데 핵(核)에 둔 어떤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즐거운 자전거 생활> 후기에는 저자와 편집자가 책을 쓰게 된 과정이 나와 있다. 편집자 역시 저자 못지않은 자전거광인 모양이다. 편집자는 저자와 술을 마시면서 “자전거는 혁명이다, 당신은 이 혁명을 이끌 책을 꼭 써야 한다, 인간과 미래를 위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발명된 지 200년도 넘은 자전거가 혁명이고, 미래는 자전거의 세상이라니, 황당하다면 황당한 소리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울컥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책 후기를 읽다가 ‘미래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됐다.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가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다. ‘자전거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바라고 준비한다면 그런 미래가 온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전거가 핵에 있는 사회는 도시 시스템 자체가 지금과 달라야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주차장을 늘리고 법규를 손질하는 정도로 만들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직장과 집의 거리가 가까워져야 하고, 도시의 크기가 줄어들어야 한다. 중심업무지구, 거대 공장, 중앙집중식 정부, 교외 주택가와 거기에서 또 떨어진 대형 학교라는 공간 구조는 자전거와 맞지 않는다.

자전거는 좀더 작고 평평한 소도시 중심의 국토계획과 어울린다. 자전거가 중심에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몸을 움직이겠지만, 활동 반경은 줄어들 것이고 움직이는 속도도 느려질 것이다. 그런 삶을 전제해야만 자전거 중심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 그 사회는 이동의 효율보다는 품질을 따진다.

플라톤도 공자도 인터넷이 뭔지 몰랐다

<즐거운 자전거 생활> 후기를 읽으며, 나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상상했다.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라니, 자전거가 중심에 있는 사회만큼이나 허황되게 들리긴 한다. 현대인은 머리도 몸도 쓰기 귀찮아하고 점점 더 인내심이 없어진다. 가만히 놔두면 과학기술은 사람이 두뇌나 근육을 혹사시키기보다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운전에 신경을 쓸 필요 없는 무인자동차, 연료비가 더 싼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가 나타나 인기를 얻고, 그런 이동수단이 우리의 도시를, 마침내는 우리 삶을 재설계할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지식의 전파와 의사소통이라는 부문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사건의 얽히고설킨 배경과 이면을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짧고 명쾌한 설명과 즉각적인 즐거움을 원한다. 책 한권은 고사하고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한다. 그래서 카드뉴스와 인공지능의 기사 요약 서비스가 나왔다. 그마저도 동영상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이제 곧 5분짜리, 아니 50초짜리 핵심 요약 동영상들이 글자를 대체할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그런 ‘스낵 정보’들은 여러 사연을 생략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단순화한다. 스낵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횡행하고 음모론과 반지성주의가 퍼지기도 쉽다. 어떤 정보가 궤변인지 아닌지, 그 정보를 어느 정도 중요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려면 머릿속에 지식의 구조와 맥락이 어느 정도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지식의 구조는 스낵 정보들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사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인문고전 스터디가 많은 사회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철학자들은 탁월한 통찰이 담긴 글을 남겼지만, 거기에 지금 우리의 문제와 해답이 전부 담겨 있을 순 없다. 플라톤도 공자도 인터넷이 뭔지 몰랐다.

내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다. 많은 저자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사람들이 그걸 읽고, 그 책의 의견을 보완하거나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 다시 책을 쓰는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포털 뉴스 댓글창, 국민청원 게시판, 트위터, 나무위키가 아니라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눈다. 이 사회는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진다.

저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

최근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장신모 작가의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를 감명 깊게 읽었다. 각각 대리기사, 버스기사, 경찰관으로 일한 저자가 자기 일에 대해, 그 보람과 고통에 대해 진솔하게 쓴 에세이다. 나는 이 책들을 읽고서야 대리기사들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지, 버스기사들이 왜 그렇게 퉁명스러운지, 일선 경찰관들이 얼마나 수시로 갖은 모욕을 당하는지 알게 됐다.

그런 정보는 <금강경>이나 <순수이성비판>에 담긴 심오한 지혜에 비하면 유통기간이 짧고 반론의 여지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들은 저자의 경험과 해법을 둘러싼 고민을 가장 직접적으로, 정확하고 생생하게 내게 전달해줬다. 사실 책은 한 사람이 공들여 가다듬은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다. 말은 글처럼 고쳐가며 제련할 수 없고,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표정이나 목소리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과 섞인다.

모든 책에 다 길고 깊고 복잡한 사유가 담겨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그런 사유를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책이다.

한권의 책을 읽은 독자는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러가지 소주제를 품고 있으며 다른 주제들과 연관돼 있음을 이해한다.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저자와 독자들은 세상이 구호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지루하고 덜 통쾌한 연구와 토론을 참고 받아들인다. 책 중심 사회는 정치, 사회, 언론, 교육 시스템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동시에 정치, 사회, 언론, 교육 시스템이 지금과 완전히 달라져야 책 중심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안다. 지금으로서는 막연하고 허점 많은 공상이다. 나는 그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대강이나마 청사진을 그려내 보일 능력도 없다. 언덕이 많고 비바람이 자주 치는 도시와 자전거가 어울리지 않듯, 책이라는 느린 매체로는 풀기 어려운 급박한 과제와 당면한 위기들이 있다. 지체장애가 있어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사람이 있듯, 특수한 언어장애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책 중심 사회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헛소리일까? 이루기 어려우니 그쪽으로 방향을 잡을 이유조차 없는 건가? 우리의 미래는 자전거와 책을 버리고 무인자동차 안에서 최신 유튜브 영상을 감상하는 것인가? 그렇게 고정된 것인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저항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자전거 중심 사회를 이루려면 먼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책 중심 사회를 이루려면 저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믿기에. 바다를 메우겠다며 조약돌을 던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아는 몇가지 사소한 팁을 소개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책을 쓰는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고,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아주 이롭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정말로 좋겠다.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내’가 그린 장강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이내’가 그린 장강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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