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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처칠, 파시스트 기질 가졌던 전사

등록 :2019-08-16 13:55수정 :2019-08-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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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돌베개·1만6000원

1907년 독일 태생. 대학에서 법학 전공. 나치의 폭정을 피해 유대인 약혼녀와 적국인 영국으로 망명. 독일에 남은 가족의 안위를 우려해 필명으로 저술 활동. 그런 사람이 윈스턴 처칠(1874~1965)의 평전을 쓴다면 어떤 서술이 나올까. 독일 출신의 작가이자 언론인 라이문트 프레첼 이야기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윈스턴 처칠(가운데)이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이 지나간 뒤의 런던 시가지를 돌아보고 있다. 돌베개 제공
윈스턴 처칠(가운데)이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이 지나간 뒤의 런던 시가지를 돌아보고 있다. 돌베개 제공
그가 영국의 전시 내각 총리를 지낸 처칠이 타계한 지 불과 2년 만에 내놓은 <처칠, 끝없는 투쟁>(1967)이 반세기를 넘겨 우리말 번역본을 얻었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1978),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1987), <어느 독일인 이야기>(2000) 등 하프너의 독일 현대사 3부작에 이어 국내에 네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앞의 세 책보다 훨씬 이전에 쓰인 이 책은 독일의 숙적이자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잿더미로 만든(드레스덴 폭격) 영국의 ‘전쟁 영웅’ 이야기다.

지은이는 독일어로 쓴 원서의 제목을 수식어나 부제는커녕 이름 전체를 쓰지도 않은 채 그냥 <처칠>이라고 지었다. 건조하지만 강렬하다. 처칠 전기와 평전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처칠에 관한 평전 중 가장 초기 작품이자 독일과 영국을 두루 잘 아는 저널리스트가 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은이는 영국의 진보적 일간지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 편집장을 지냈으며, <디벨트> 등 독일 신문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1910년 36살의 윈스턴 처칠(오른쪽)이 자유당 정부의 내무장관 시절이던 시절, 뒷날 영국 총리를 지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재무장관과 함께 의회로 걸어가고 있다. 돌베개 제공
1910년 36살의 윈스턴 처칠(오른쪽)이 자유당 정부의 내무장관 시절이던 시절, 뒷날 영국 총리를 지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재무장관과 함께 의회로 걸어가고 있다. 돌베개 제공
지은이는 영국의 명문귀족 혈통인 처칠의 어린 시절부터 상술한다. 처칠은 영국 상류층 전통에 따라 유모의 품에서 자랐고, 네댓살부터 청소년 시기 내내 “매질 지옥, 동료애 천국”이었던 기숙학교들의 엄격한 교육 방식을 거부한 반항아였다. 일곱살때 들어간 귀족학교에서 “(2년 동안)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거듭거듭 잔인하게 매를 맞았다.” 처칠은 회고록에서 “학창 시절은 내 삶에서 가장 쓸쓸하고 결실 없는 시기…고통스런 체험들…불쾌감과 강요, 단조로움과 무의미의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영원한 낙제생’일 것 같던 그의 삶은 스무살에 들어간 사관학교를 마치고 군인이 되면서 “알라딘의 기적의 동굴처럼” 활짝 열렸다. 보어 전쟁을 비롯한 몇 차례의 전투에서 전설적인 무용담을 펼치면서 갑자기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것. 나이 스물다섯에 하원의원(보수당)에 당선하면서 “출세의 사다리”에 올랐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공부하라는 강요가 사라지자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온갖 책을 읽어댔”고 ‘지적인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그의 글쓰기는 청년 장교 시절 종군기자로 활약하면서 시작됐다. 그가 처음 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 문장들은 힘들다. 신문 기사도 사랑 고백에 못지 않게 힘들다.” 그는 이후 소설·전기·회고록·역사서 등 다방면의 작품을 쏟아냈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15년, 프랑스 33군단에서 복무하던 당시의 윈스턴 처칠(왼쪽 네번째). 돌베개 제공
1915년, 프랑스 33군단에서 복무하던 당시의 윈스턴 처칠(왼쪽 네번째). 돌베개 제공
그러나 처칠이 ‘처칠’이 된 것은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지정학적 격변과 안보 위기였다. “우리의 처칠은 전쟁을 좀 아는 사람”이었다. 초선 의원 당선 이후 그는 몇 차례 당적을 바꿔가면서도 늘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다. 탁월한 전략적 발상, 과감한 결단, 인간적이면서도 강력한 설득력이 그를 성공 가도로 이끌었다. 해군장관으로 1차 대전을 치렀고,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는 거의 쿠데타에 가까운 방식으로 총리 겸 총사령관이 돼 전권을 거머쥐었다.

그런 면에서 처칠은 히틀러와 닮은꼴이었다. 둘 다 전쟁을 사랑했고, 옛날 사고방식을 지닌 시대착오적 인물이었으며, 무엇이든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과격성을 지녔다. 옮긴이는 “강력한 소명의식과 초조한 강박관념”을 처칠과 히틀러의 공통점으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처칠은 히틀러가 지니지 못한 고귀하고 인간적인 성품, 신사적 면모를 지녔던 것이 결정적 차이였다.

처칠은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9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만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그런 성향은 당시 국내에서 득세하던 노동당을 겨냥했다. 지은이는 “쉰다섯살의 처칠은 영국인들에게, 또 보수당 동료들의 눈에도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낭만적인 반동주의로만 여겨졌다”고 썼다. 처칠은 2차 대전 발발 직전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정부가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 ‘유화 정책’을 편 것에도 기질적인 거부감을 보였다. 지은이는 ‘정치인’이 아닌 ‘전사’로서의 처칠에 주목하면서, 그를 “성공한 기회주의자”이자 “유럽 파시즘의 가장 위대한 국제적 지도자”에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1945년 5월8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대독일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라디오 방송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돌베개 제공
1945년 5월8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대독일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라디오 방송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돌베개 제공
처칠의 ‘하이라이트’ 시기는 2차 세계대전(1939~1945)이었다. “1940년과 1941년에 처칠은 운명의 남자였다.” 처칠이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 낸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은이는 더 나아가 “처칠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영제국도 강력한 파시즘과 야만적 형태를 하고서 히틀러가 통치하는 유라시아 대륙국가의 불쾌한 주니어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1940년, 그 결정적인 순간에 “처칠이 있었고, 세계사는 다르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파시스트 기질을 지닌 괴짜 인물이, 타고난 전쟁 감각과 열정으로, 진짜 파시즘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것은 역설적이다.

처칠은 현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의 열렬한 전도사인 보리스 존슨 총리의 우상이기도 하다. 하프너의 <처칠>을 언론인 출신 존슨이 런던 시장 재임 시절에 쓴 평전 <처칠 팩터>(2014)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존슨은 처칠에 대한 찬사와 존경심을 쏟아냈지만, 하프너와 비슷하게 냉정한 평가를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처칠)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원칙적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영광을 쫓아다니고 골대 앞에만 있는 기회주의자였다.”

처칠은 여든을 넘긴 1955년에 총리직을 물려주고 정계에서 은퇴한 뒤 우울증과 뇌줄중 등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여행, 그림, 독서 등을 즐기다가 1965년 타계했다. 대규모 국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는 “마치 영국 역사 자체가 무덤에 실려가는 것 같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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