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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손님이기도, 적이기도 한 낯선 세계와의 만남

등록 :2018-07-19 20:14수정 :2018-07-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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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박천홍 지음/현실문화(2008)

박천홍의 책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는 16세기 말 조선의 바다에 출몰하기 시작한 서양 이방인들과의 만남, 곧 조선이 서양이라는 타자를 만나는 과정을 재구성한 책이다. 책의 서두는 저명한 미술사 연구자였던 루스 멜린코프의 “한 사회의 정수와 그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사회가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어디에 긋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는 낯선 세계의 새로운 타자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으며 그 경계를 어디에 긋고 있을까? 개항과 근대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은 대부분 어느 날 화포를 장착한 이양선들이 조선의 바다에 출몰해 전투를 벌이고 약탈을 해가거나,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흑선(黑船)이 도래하여 일본이 개항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아시아에서 근대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한 서구가 느닷없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고대 초원길, 실크로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16세기부터 한지에 먹물이 번지듯 다가왔다.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교황으로 알려진 알렉산데르 6세(Papa Alessandro VI)는 1493년 5월4일 칙서 ‘다른 것들 사이에’(Inter Caetera)를 반포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소유할 신대륙의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이에 따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조레스 군도와 카보베르데 군도를 기준으로 경계를 나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Terra nullius), 다시 말해 주인이 없는 땅(無主地)을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도록 분할해준 것이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거쳐 일본에 이르렀고, 스페인은 멕시코 아카풀코 항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에 이르렀다. 필리핀이란 나라 이름은 펠리페 2세 국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반도에 다다른 서양 선박들은 처음에는 우연히 표류해 오거나 식량과 물을 찾아 잠시 상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만남이 잦아질수록 점차 탐험과 측량, 통상 요구, 기독교 선교의 자유 확보 등을 목표로 했다. 이양선의 통상 요구에 조선 정부는 상국으로 받드는 청의 승인 없이는 사사로이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인신무외교’(人臣無外交, 남의 신하된 사람은 외교를 할 수 없다)를 내세워 거절했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거대한 ‘악령’처럼 다가왔던 서양과 만남을 단지 근대의 비극이나 고통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순간으로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21세기 한반도의 남단 제주에는 난민이란 이름의 낯선 이방인들이 찾아왔다. 낯선 세계와의 만남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품기 마련이다. 이방인을 뜻하는 라틴어 호스티스(hostis)는 환대해야 할 ‘손님’인 동시에 ‘적’을 의미하며, 이 말에서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란 개념이 갈라져 나왔다. 낯선 세계와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좋은 어느 한 가지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내 품으로 끌어안는 일이다. 어떤 경우든 만남 자체를 외면하는 사회는 성장도, 변화도 꿈꿀 수 없다는 교훈을 이 책은 선사한다.

황해문화 편집장

※이번 주부터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이 책으로 보는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근현대 풍경과 오늘날의 의미를 짚어보는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를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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