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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한국 남자는 왜?

등록 :2017-06-02 10:06수정 :2017-06-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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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 ‘도란스’ 두번째 총서
식민지 남성성과 남성 신체 등
한국적 남성성 전방위적 탐구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지음/교양인·1만3000원

연구모임 ‘도란스’가 또다시 화제를 낳고 있다. 지난해 말 출간돼 호평받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 이어 두번째 ‘도란스 총서’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가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발간된 <남성성과 젠더>(자음과모음)의 개정판으로 기획했지만 기존 원고를 대폭 고치거나 몽땅 다시 썼고 새로운 공저자의 원고를 더해 완전히 새로운 책을 선보였다.

책이 막 서점에 깔린 지난 27일 오후 서울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연 북토크에는 6명의 필자(권김현영·루인·엄기호·정희진·준우·한채윤)가 전원 참석한 가운데 청중석에서 남성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여성들의 크고 작은 분노와 절박한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과연 한국의 남녀는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성토장을 방불케 하는 열띤 토론이 6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지난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난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의 공저자 준우(왼쪽), 권김현영 연구활동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난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의 공저자 준우(왼쪽), 권김현영 연구활동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31일 오후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엮은이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와 새로 참여한 공저자 준우(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를 만났다. 이들이 열달 넘게 열번, 스무번 원고를 수정하며 날선 상호비평 끝에 길어 올린 한국 남성성의 특질은 무엇일까.

“서구에서 남성성이 소위 ‘위기’를 만날 때 극복방안은 주로 책임·헌신·대의·희생을 강조하며 더 강한 남성을 대표로 내세우는 식이었어요. 반면 한국에서 ‘남성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한없이 불쌍해하고 위로하는 방식이었죠. 강의 때 남자다움이 뭔지를 물어보면, 보통 ‘씩씩함’을 가장 먼저 말해요. 아들이 남자를 대표한다는 거고 그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건 혈통을 유지하는 것, 자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남성 신체를 강조하는 거죠. 이 점이 생계부양자 역할을 하지 못해도 한국의 남성성이 유지되는 핵심 기제라는 생각입니다.”(권김현영)

준우는 다섯명의 20~30대 트랜스남성(여성에서 남성으로, ftm: female to male)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이 어떤 과정으로 한국의 ‘보통 남자’가 되는지를 분석했다. 트랜스남성은 한국 남자가 흔히 그렇듯 마초성을 지녔고 평범했다. 그러나 동시에 달랐다. “예컨대 하체의 옷맵시, 가랑이 사이가 남들처럼 불룩하지 않은 것, 사타구니 앞섶에 신경이 쓰이는 거죠.” 트랜스남성은 ‘보통 한국 남자’의 남성 우월주의 문화와 위계를 학습하고 자신의 남성 인생 서사를 만들면서 생각보다 손쉽게 ‘남성 동성 집단’에 소속될 수도 있다. 페니스 유무와 무관하게 남성 간 유대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 혐오와 낙인 때문에 트랜스남성이 ‘들킬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위협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고 준우는 말했다. 가슴 제거 수술, 생식 능력 제거, 페니스와 고환의 외형을 만드는 수술 등을 선택하는 까닭이다. “트랜스남성이 너무 특이하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들킬 위험’은 한국 사회 남성이 모두 갖고 있는 ‘늘 실패하는 남성성’의 모습과도 비슷해요.”

병역법의 규정을 통해 남성, 남성성의 관계를 질문한 루인의 글(‘남성 신체의 근대적 발명’)을 보면, 1965년부터 최근까지 징병 신체검사 등의 규칙은 지속적으로 음경 및 고환이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주민등록제도와 군대, 병역법은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을 관리하는 기획”이라는 것이다.

“사우나, 화장실, 군대 등에서 요구되는 몸의 공통성과 관련된 ‘허들’이 너무 높아요. (의료 규범상 성별이 모호하다고 판단하는) ‘인터섹스’들이 수술을 하면서 대개 성별을 여자로 지정하는데, 서로의 신체를 수시로 확인하려는 남성 문화 속에서는 ‘들킬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죠.”(권김현영)

 엮은이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오른쪽)와 새로 공저자로 참여한 준우 활동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엮은이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오른쪽)와 새로 공저자로 참여한 준우 활동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무사히 ‘보통 남자’로 승인받게 되더라도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린다. ‘뛰어난 남자’가 되는 일이다. ‘혈통’을 잇지도 않고 ‘내 고장’을 대표하지도 않는 여자가 출세하면 자기한테만 좋은 일이지만, 남자의 출세는 가족·지역사회·동문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된다. ‘똑똑한 누나’ 같은 여성이 남성 가족의 자원이 되는 까닭이다. 식민지 남성이 자신의 위치를 ‘피해자’로 정해놓고 피식민지 여성들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

‘도란스’ 연구자들은 이번 책에서 바로 이 ‘식민지 남성성’ 분석에 힘을 쏟았다. 정희진은 “식민지 남성성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성별과 정체성 등 존재의 모든 이슈를 강대국과의 관계로만 환원하는 논리”라고 분석했다. 식민지 남성성은 “보편적 주체로서 자신을 국가나 민족과 동일시”하거나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국내 여성과의 관계보다 외세와의 관계에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식민지 남성성을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아 연구중인 권김현영은 “우리의 목표 중 하나가 한국을 분석하는 탈식민지 이론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근대가 일제와 미국의 혼재라는 현실”이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남성성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낼 때만이 기존의 남성성에 도전할 수 있고 이것이 탈식민의 시작입니다. ‘한남’이라고 똘똘 뭉쳐 한국 남성성을 근본적인 폭력이고 문제라며 환원하는 것은 퇴행적 판단입니다. ‘내 곁에 있는 괜찮은 남자’의 얼굴과 ‘문제 많은 한국 남성 집단’을 너무 다르게 인식하면 점점 힘들어져요. 남성성 작동원리와 구조를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권김현영)

이밖에도 책에는 국민국가의 주권적 존재인 ‘남성’의 위기에 전혀 다르게 대응하는 두가지 방식, ‘찌질이’ ‘페미니스트 남성’이라는 전에 없던 남성성을 새롭게 분석한 엄기호(사회학·문화학)의 글과, 레즈비언의 남성성 연구로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을 살핀 한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의 중요하고도 매력적인 문제제기가 수록됐다. 이성애자 남성의 ‘경쟁자’가 되는 ‘부치’의 남성성은 남성성이 얼마나 쉽게 복제·변용 가능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 ‘남자 페미니스트’라는 건, 가능한 걸까? 이런 질문만으로도 책 한권 분량은 너끈할 터. 총 252쪽으로 두껍지 않지만 ‘여성의 몸’이 아니라 ‘남성의 몸’으로 비평적 시선을 옮기는 일, 패권적 남성성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 또한 이 책으로 신호탄을 올린 듯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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