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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시인들의 시인’ 이성복이 들려주는 시쓰기 방법론

등록 :2015-09-1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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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과 강연 등을 엮은 시론 세권을 한꺼번에 내고 9일 낮 기자들과 만난 이성복 시인. “책으로 낼 생각이 없다가 이삭줍기하듯 출간한 것들이지만, 때로는 이삭줍기한 것이 더 맛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강의록과 강연 등을 엮은 시론 세권을 한꺼번에 내고 9일 낮 기자들과 만난 이성복 시인. “책으로 낼 생각이 없다가 이삭줍기하듯 출간한 것들이지만, 때로는 이삭줍기한 것이 더 맛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강의록, 강연 등 엮은 책 세권
“시는 불가능과 실패의 기록”
현란한 비유와 직관 돋보여
•극지의 시•불화하는 말들•무한화서
이성복 지음/문학과지성사·각 권 1만1000~1만2000원

1980년대 이후 활동을 시작한 시인들 가운데 이성복(63)의 ‘세례’를 받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후배 시인들에게 ‘교과서’ 구실을 한, ‘시인들의 시인’ 이성복이 쓴 시론 세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물론 체계적인 연구서는 아니다. 체계란 어쩌면 가장 이성복답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극지의 시>는 지난해와 올해 행한 강의, 대담, 수상 소감 등을 엮은 것이고 <불화하는 말들>은 2006년과 2007년 사이 시 창작 수업 내용을 계명대 제자들이 시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며 <무한화서>는 대학원 시 창작 수업 내용을 아포리즘 형태로 다듬은 것이다. 출처와 형식이 제각각이지만 이 책들에는 시인 이성복이 40년 가까이 시를 써 오면서 궁구한 시적 사유의 정수가 담겼다.

“궁극적으로 제 시가 닿은 지점이 ‘불가능’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라는 것이 본래 ‘불가능’이고, ‘불가능’을 표현하려고 애쓰다가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실패하지 않는 시가 어디 있겠어요. 시 쓰기는 늪 속의 허우적거림처럼, 사막에서의 제자리걸음처럼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않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성장소설’ ‘교양소설’에서 보이는 원륭(圓隆)한 인생관의 터득과는 다른 것이지요.”

동료와 후배 시인들의 질시 어린 존경을 받는 이 ‘성공’한 시인이 실패와 불가능의 시학을 설파하는 것은 뜻밖이다. 그렇다면 불가능을 향한 불가능한 시도이자 실패의 기록인 시를 쓰고 또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풀냄새라고 있지요? 풀을 베었을 때 나는 냄새. 사람들은 그것을 상쾌하고 신선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베인 풀이 옆의 풀에게 경고하는 게 풀냄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옆의 풀이 도망칠 수 있겠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그럼에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이요 시 아닐까 싶어요.”

책을 내고 9일 기자들과 만난 시인은 특유의 비유로 설명을 대신했다. 현란한 비유와 직관은 새로 나온 책 세권을 관통하는 공통점이라 하겠는데, 불가능과 실패의 시학에 대한 비유 역시 책에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령 470개 짧은 단상으로 이루어진 <무한화서>의 마지막 두 장에는 각각 축구 경기 승부차기 때 선수들의 스크럼 격려와 수레에 맞서는 사마귀를 가리키는 숙어 ‘당랑거철(螳螂拒轍)’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生死) 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해요”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해요. (…)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 인’하는 것”이라는 부연설명이 따른다.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도덕경> 첫 대목을 연상시키는 선언을 <무한화서> 앞머리에 놓은 시인은 역시 설명보다는 비유로 시에 다가가고자 한다. “진실과의 우연한 만남” “대상을 맞아들이고 보내주는 태도” “운명을 보내주는 한 형식” 같은 표현이 잇따르는데, 시인 자신이 가장 아끼는 비유는 <무한화서> 278장에 나온다.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한때 테니스로 건강을 챙겼던 시인은 요즘은 골프 연습에 푹 빠졌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시에 대해서는 소 닭 보듯 하는데, 아침에 골프 연습하러 나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고도 했다. 그는 “골프에서 채를 휘둘러 공을 때리는 스윙을 네 단계로 나누는데, 그것은 곧 인생의 생로병사와 글쓰기의 기승전결과 닮았다”고 덧붙였다. 선(禪)에서 골프까지,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시로 통하는 듯한데, 거꾸로 시와 문학이 세상 만사에 대한 비유가 될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책들이 시를 쓰려는 이들을 위한 시론이기는 하지만, 사실 제가 말하는 글쓰기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은유일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이것들은 글쓰기에 관한 책만은 아니에요. 부모와 자식, 삶과 죽음, 사업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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