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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개불알과 며느리밑씻개…‘창씨개명’된 꽃이름들

등록 :2015-08-20 20:30수정 :2015-08-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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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또는 살짝 바꿔 우리말로 옮겨 놓은 개불알꽃, 큰개불알꽃과 그 열매 그리고 며느리밑씻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인물과사상사 제공
일제시대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또는 살짝 바꿔 우리말로 옮겨 놓은 개불알꽃, 큰개불알꽃과 그 열매 그리고 며느리밑씻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인물과사상사 제공
아직 일제 못 벗어난 식물용어
국어사전 설명도 일본말투성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지음/인물과사상사·1만4000원

봄 한강변 풀밭 위에 별무리처럼 예쁘게 핀 꽃들 이름이 개불알꽃이라고 했다. 그 열매 모양에서 따온 이름이라는데, 예쁜 꽃 놔두고 하필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열매에서 따오다니.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을 보니 황당했다. 시인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이 쓴 이 책에 따르면, 개불알꽃의 진짜 이름은 현삼과(꿀풀과)에 속하는 ‘큰개불알꽃’이며, 그냥 ‘개불알꽃’은 난과에 속하는 전혀 다른 꽃(작은 복주머니처럼 생겼다)이다. 게다가 ‘개불알’은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는 마키노 도미타로가 일제 때 붙인 일본명 ‘이누노후구리’(犬陰囊, 말 그대로 개 불알)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이 앙증맞은 꽃을 요즘에는 ‘봄까치꽃’이라고도 한다는데, 책은 이처럼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붙인 이름, 또는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바로잡기는커녕 더 망친 꽃이름들과 그 기막힌 사연을 수두룩하게 담고 있다.

5월쯤 시골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은 작은 가시들이 촘촘히 나 있는데, 일본명 ‘마마코노시리누구이’를 옮긴 것이란다. 마마코(繼子)는 의붓자식이란 뜻이고, 시리(尻)누구이는 볼일 본 뒤의 밑씻개다. 가시 난 풀로 밑 씻기를 해줄 만큼 일본에서도 의붓자식은 미움의 대상이었나 보다. 그런데 왜 그걸 하필 ‘며느리’로 옮겼을까. 불쌍했던 한국의 며느리들이여!

우리 풀꽃 이름엔 ‘섬’이 많이 들어 있는데, 섬초롱꽃과 섬장대·섬바디·섬기린초 등은 모두 울릉도가 원산이다. 그걸 알 수 있는 건 학명에 ‘다케시마’(takesima)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케시마는 곧 죽도(竹島)다. 바로 일본이 오늘날 제 땅이라고 주장하는 독도에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이들 풀은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산이다. 그리고 1917~42년 사이에 울릉도를 왕래하면서 그 풀꽃들 학명을 지은, 그리고 한반도 고유종 식물 62%의 학명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은 나카이 다케노신은 한 번도 독도에 간 적이 없다. 그와 동시대에 울릉도 식물채집을 했던 다른 일본 학자들도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불렀고 독도에 갔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당시까지 일본 사람들에게 다케시마는 울릉도였고, 독도는 몰랐거나 관심 밖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독도가 원래 일본 땅이었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름에 ‘섬’자가 붙은 식물이 모두 울릉도산인 건 아니다. 섬오갈피·섬잠자리피·섬쑥·섬매자나무·섬노린재·섬개서어나무 등은 제주도산이다. 나카이 등이 식물에 학명을 붙일 때 울릉도산에는 다케시마를, 제주산에는 탐나(탐라) 또는 사이슈(제주의 일본 발음)라는 지명을 넣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식물들 이름을 우리말(학명 아닌 보통이름)로 옮길 때 그 구분을 없애버리고 ‘섬’자만 넣는 바람에 이름만으로는 원산지를 알 수 없게 됐다. 이런 ‘개악’은 국명, 고장명, 시대명, 지역명, 속성 등을 나타내는 용어들에도 적용돼 상당수 식물이 학명을 보지 않고는 그런 특성을 알 수 없게 됐단다.

애기산딸나무, 애기명아주 등의 ‘애기’는 작고 귀여운 것을 가리키는 일본말 히메(姬)를 그렇게 옮긴 것이고, 각시고사리·각시투구꽃 등의 ‘각시’도 히메를, 좀다닥냉이·좀갈매나무 등의 ‘좀’은 고바(小葉, 작은 잎)나 고이누(小犬) 등을, 쥐보리·쥐꼬리망초 등의 ‘쥐’는 일본말 네즈미(쥐)나 기쓰네(여우) 또는 가노코(새끼 사슴)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가와(川, 냇물 또는 갯물)나 히메를 개로 잘못 옮겨 차라리 갯연꽃이나 각시망초가 돼야 할 것들이 엉뚱하게 개연꽃, 개망초가 됐다. 일본말 우시(牛, 소)를 옮긴 ‘쇠’자를 단 식물(쇠별꽃), 일본말 다쓰(立, 서다)를 ‘선’자로 바꿔 붙인 식물(선버들) 그리고 ‘가는’ ‘좀개’ ‘호랑’ ‘털’ ‘돌’ ‘처녀’ ‘광대’ 등의 접두어들이 다 그런 사연을 갖고 있다.

예전에 금강초롱에 붙였던 화방초(花房草)라는 이름은 침략자 하나부사(花房) 요시모토 공사를, 사내초(寺內草)는 규장각 고문서들을 무더기로 빼내간 조선문화 말살 선봉장 데라우치(寺內) 마사타케 총독(제3대)을 기리는 작명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가 사랑했다는 남산제비꽃은 통감제비꽃으로 불렸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좀개갓냉이 항목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단다. “자화과의 한해살이풀. (…) 근생엽은 뭉쳐나고 우생복엽이고 경엽은 어긋난다. (…)열매는 장각과이다.” 일본말 찌꺼기를 그대로 답습한 우리말 대사전의 이런 설명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긴 어렵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나오는 ‘그늘꿩의다리’ 풀 설명은 더 심하다. 다년생초본, 지하경, 전주, 근생엽, 엽병, 속생, 분지, 과병, 주두, 내곡 등 생경한 일본말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우리 풀꽃 이름에 붙은 일본 말 찌꺼기는 지금껏 대대적인 수술 한 번 없이 여기까지 왔다. (…) 식물 관련 용어는 아직도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라 씁쓸하다.” 어찌 식물용어만이랴.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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