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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예술인간, 자본 그물망 벗어난 저항 주체의 출현

등록 :2015-01-2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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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은 2008년 촛불집회(사진)와 2011년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등을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한다. 예술운동은 예술적 능력의 자치를 추구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예술인간의 탄생>은 2008년 촛불집회(사진)와 2011년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등을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한다. 예술운동은 예술적 능력의 자치를 추구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치철학자 조정환 새 책
인지자본주의 주체 진화 설명
‘경제인간’ 거부할 잠재력 지녀
예술인간의 탄생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감성혁명과
예술진화의 역량
조정환 지음/갈무리·2만2000원

모두가 먹고 사는 문제에 기갈들린 이 시대,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넘어선 저항 주체의 출현을 예고하는 책이 나왔다. 2011년 <인지자본주의>를 쓴 정치철학자 조정환이 4년 만에 낸 신작 <예술인간의 탄생>이다. 연구공동체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겸 상임강사이자 갈무리 출판사 대표인 지은이는 이번 책에서 1980년대 민중미학자로서의 자신의 과거를 소환한다. 1989년 4월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한 그는 이듬해인 1990년부터 10년 동안 수배 생활을 했고, 90년대 중반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자율주의’를 소개하면서 정치철학 연구에 몰두했다. ‘예술’이란 주제를 건드리는 건 거의 25년 만이다.

지은이가 제기해온 ‘인지자본주의’의 시대는 “이념의 시대에서 정념의 시대로, (…) 이성적인 것의 시대에서 감성적인 것의 시대로” 변화한 것을 가리킨다. 현대는 예술종말의 시대이기는커녕 예술부흥의 시대라는 것이다. 책은 이런 때 ‘예술인간’이라는 주체성이 어떻게 탄생하며 그 잠재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를 살핀다.

미셸 푸코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을 설명하면서 개인을 기업가적 주체로 만들어버린 ‘경제인간’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지만, 지은이는 한단계 더 나아가 경제인간이 ‘예술인간’으로 진화하는 방향을 모색한다. 흔히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스스로 삶을 책임지고 역량을 키워나가는 자기계발적 주체라고 분석하지만, 지은이는 다른 노선을 찾는다. 푸코가 제출한 ‘자기 테크놀로지’ 개념은 ‘자기인식의 테크놀로지’와 ‘자기배려의 테크놀로지’로 나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기인식의 테크놀로지는 종교적 제의를 수반하는 연극성을 가졌지만, 자기배려의 테크놀로지는 연극성 없이 자신을 충실히 돌보아나가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흔히 푸코 이론에서 한가닥인 ‘자기 인식의 테크놀로지’만 따로 뽑아내 ‘자기계발적 주체’라 일컫는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으로 분석해왔는데, 이와 다른 ‘자기 배려’의 노선이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20세기 후반 아방가르드 운동이 “누구나 예술가다”라는 주장을 편 뒤 예술은 모두를 혼돈스러운 지경에 빠뜨린다. 예술, 경영, 노동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예술가는 노동자이며 기업가가 되었다. 극소수는 막대한 부를 얻지만 나머지는 채무자로 전락해 국가나 가족에게 생계를 의탁하게 됐다. 노동자들은 반대로 매순간 예술가가 되라고 요구받았다.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임금도 없다”는 신경제 논리가 한 사례다. 구상하고 상상하고 기획하며 창조하는 주체가 돼라는 명령에 따라 노동자는 ‘예술가화’ 한다. 이 모두가 산업의 예술화, 예술의 산업화, 예술의 노동화, 예술가의 기업가화가 진전되면서 나타난 일이다. 지은이는 모든 사람이 ‘경제인간’ 되기를 요구받고 있지만 이를 거부할 잠재력이 없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예술적 다중 주체성’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술인간’은 누구이며 ‘작품’은 어디에 있을까? 지은이는 2008년 한국 도심의 촛불집회, 2011년 아랍의 봄, 같은 해 월스트리트 점거(오큐파이) 운동 등을 예로 든다. 이는 “건물과 공간을 용도변경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건축하는 사건들”이고 다중은 “예술의 주체”였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데 있어서 선거, 탈주, 혁명 가운데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가능한 방법을 실험,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주체성이 생산되는 곳은 바로 그 향유와 저항의 몸짓이 전시되는 자리이다.” 경제인간이 되고자 하나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길에서 ‘호모 사케르’(아감벤), ‘쓰레기’(바우만), ‘프레카리아트’(비포)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자기배려’를 살리는 예술인간 탄생의 길로 나아가자는 제안이다.

지은이는 예술가의 경우 작품의 화폐적 가치를 높이는 기획 속에서 벗어나고 다중의 소외과정에 공모하지 말고 자본가가 가진 예술수단을 다중에게 돌려주는 ‘스파이’가 되라고 제안한다. 이제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1980~90년대 ‘리얼리즘’에 대한 이론적 재구축과 갱신을 요청하기도 한다. 후기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는 말했다. “미래는 우리에게 우리들 자신이 직접 생명과 삶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 생명을 배려하는 기술을 갖추고 우리 자신의 생명을 돌볼 수 있는 연합된 주체성으로 조직하도록 절실하게 요구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이것이 ‘예술인간’의 정의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과연 현실에서 자기배려의 테크놀로지와 자기인식의 테크놀로지를 엄밀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가꾸고 노력하는 ‘예술인간 되기’는 또 다른 뜻에서 자기계발을 강요받는 주체탄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지은이는 “개개인의 자기 가꾸기 노력이 자본의 성과로 귀결되지 않고, 우회전술이라 부르듯 물꼬를 비틀어 물을 다른 곳으로 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고민하며 사유의 경로를 익히는 탈학교 청(소)년, 문래동 예술공간에서 사진작업을 하는 주민과 시창작 모임 등의 경우를 예로 들며 그는 예술인간의 씨앗이 곳곳에 뿌려져있다고 덧붙였다.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크다고 해서 그 속에서 발견되는 주체성의 변화 가능성마저 포기한다면 대안을 찾을 길이 없다. 지식인들이 자기 취향대로 신자유주의적 주체탄생을 무조건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 삶을 구축하고 세상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다중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현재 필요한 대안이 뭘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을 구성하는 계기, 수단, 디딤돌로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인간’의 길로 나서는 출발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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