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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중국의 친자본 정책’에 브레이크를 밟아라

등록 :2013-10-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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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급진-중국의 현대를 성찰하다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돌베개·1만3000원
“건국 이후 중국에 급진(급진적 친자본 정책)은 있었지만 좌익은 없었다.”

여기 중국 현대사의 기존 해석 틀을 완전히 뒤집는 관점으로, 중국이 나아갈 새 길을 고민하는 학자가 있다. <백년의 급진-중국의 현대를 성찰하다>의 지은이 원톄쥔(사진) 중국 인민대학 교수(농업및농업발전대학 학장)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지난 60년간 추구해온 것은 대규모 노동력을 집중 투입해 서구식 현대화를 급진적으로 추구하는 국가자본주의였으며, 극좌로 여겨지는 마오쩌둥의 정책도 실제로는 친자본적 우파였다고 본다.

그의 저작이 한국에 출판되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는 중국에서 삼농(三農: 농민·농업·농촌) 문제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2000년대 들어 중국이 친민생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사상적 근거를 제시한 경제학자이며 정책이론가로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의 주요 논문과 강연 원고 등을 모은 이 책에서, 원톄쥔은 19세기 이후 중국의 산업화 과정을 ‘백년의 급진’으로 지칭한다. 지난 100년 내내 중국은 서구식 근대를 따라잡기 위해 급진적으로 친자본적 정책을 펼쳐왔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1949년 중국 ‘사회주의’ 혁명으로 탄생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닌 세계 최대의 소자산계급(농민)의 국가였다고 지적한다. 근대화에 필요한 자본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마오쩌둥의 최대 과제는 혁명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농민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해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1950년 이후 중국에는 8번의 경제위기가 일어났는데, 이때마다 농촌과 농민한테 위기를 전가시킴으로써 경착륙 없이 위기를 넘겨 왔다고 그는 지적한다. 예컨대 문화대혁명 시기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벌여 4000만명이 넘는 도시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낸 것은 실업의 위기를 농촌에 떠넘긴 것이다.

원톄쥔 중국 인민대학 교수(농업및농업발전대학 학장)
원톄쥔 중국 인민대학 교수(농업및농업발전대학 학장)
원톄쥔은 중국이 이런 선택을 한 데는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서구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를 착취해 근대화의 모순을 전가한 데 비해, 중국은 내향형의 원시적 축적에 의존해 공업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서구 주류 경제학이 중국과 개발도상국 농업의 해법으로 제시(또는 강요)하는 토지사유화와 시장화 전환에 철저히 부정적이다. “미국의 대농장주를 가리키는 파머(farmer)는 영세한 소농경영의 주체인 중국 농민과 결코 같을 수 없으며” 서구 농업이론이 모델로 제시하는 미국·남미의 대농장 농업경영은 식민지 약탈을 통한 토지 집중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할 뿐, 중국이나 제3세계 국가가 복제할 수 없는, 복제해서도 안 되는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유엔 조사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현지조사한 원톄쥔은 1990년대 북한 기아사태의 근본 원인도 소련 모델을 따라 너무 급속하게 추진한 농업 현대화와 도시화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30%의 농민이 70%의 도시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소련제 농기계에 의존했던 북한 농업은 소련의 석유 등 지원이 끊기자 순식간에 붕괴했다. 이런 상황을 원톄쥔은 ‘김정일 딜레마’로 지칭한다.

서구 따라하기나 서구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해법이 될 수 없다면, 중국식 현대화의 길은 어디 있는가?

농민의 생계, 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 농업의 안정 등을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원톄쥔의 대답이다. 중국의 경제·사회 변화도 친자본적 정책과의 결별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1990년대 말부터 자본의 과잉, 생산 과잉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과도한 토지 개발과 2003년 시행된 집체토지청부법 이후 많은 농민들이 땅을 잃은 유동인구로 전락했다. 원톄쥔은 “중국은 세계 최대의 소자산계급 국가에서 돌연 2억명의 신생 노동자계급을 거느린 국가로 변모했다”며 친농민·친민생의 새로운 성장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톄쥔은 이런 해법을 연구실에 가두지 않고, 중국 각지 농촌의 밭이랑으로 나가 농민들과 함께 농촌공동체, 유기농업 운동 등을 벌이며 현실의 변화를 만들어왔다. 대학생들을 조직해 농촌으로 들어가 향촌건설 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활동도 벌여온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중국인민대학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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