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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27 20:35 수정 : 2010.08.27 20:35

박석무/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내 인생의 책 /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저서는 우선 그 양이 너무 방대하다. 그 방대한 저서와 함께 살아오는 삶이 나의 인생이다. 참으로 내 인생의 책은 다산의 저서이다. 다산의 저서는 다산 서세 100주년이 되어서야 활자로 인쇄되어 나왔다. 서세 10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자, 당대의 학자 정인보·안재홍 등의 주도로 저서의 출간을 서두르면서 국민적 모금을 통해 1938년에야 <여유당전서>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인쇄된 책으로 간행된다.

초간본은 154권 76책의 활자본이다. 다산 자신이 운명하기 이전에 제대로 정리하여 제책해둔 책의 권수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다산은 회갑을 맞은 1822년에 자신의 일대기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저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책의 권수도 명확히 밝혀두었다. 경전에 관한 연구서로는 <모시강의> 12권을 시작으로 <심경밀험> 1권까지 232권이고, 문집으로 시율 18권, 잡문전편 36권, 후편 24권이다. 경세서로는 <경세유표> 등 126권, 기타 지리서와 의학서 등을 합해 141권이니 도합 499권인데, 자신의 기록에는 빠졌으나 책으로 전하는 <민보의> 3권, <풍수집의> 3권, <문헌비고간오> 3권 등을 합하면 500권이 넘는 그야말로 방대한 양이다.

이러한 다산의 저서 원본을 정인보와 안재홍이 교정을 맡아 다시 편집하여 간행하면서 체제를 다시 손질하여 154권에 76책으로 재편하였다. 시문집·경집·악집·정법집·지리집·의학집 등 7집으로 분류하여 인쇄하였다. 이런 많은 저서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모든 책이 난해한 한문으로 된 글이니 읽기가 쉽지 않다. 일반 사람으로서는 이런 책을 통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참으로 큰 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할아버지·아버지께서 글을 잘하는 한학자들이어서 어려서부터 그런 글에 대하여 약간의 문견이 있었다. 그런데다 독재시대에 젊은 날을 보내면서 몇 차례 투옥되어 독방에서 만 2년 이상을 보냈고, 지명수배 되어 몸을 숨기고 독방에 앉아 책만 읽던 시간이 7개월 정도였으니, 꽤 긴 3년 정도를 <여유당전서>만 붙들고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76책의 초판 활자본은 영인본으로 몇 차례 간행되었다. 나는 비록 낙질이지만 초판본 10여책을 가졌고, 76책을 6책으로 영인한 경인문화사본, 20책으로 영인한 여강출판사본을 가지고 있고, 고전번역원에서 표점을 찍어 6책으로 영인한 책도 가지고 있다. 그 어느 책 하나 나의 손때가 묻지 않은 책이 없다. 특히 시문집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산문선> <애절양> <다산논설선집> <다산문학선집> <다산시정선 1·2>로 번역하여 출판하였기에 책이 구겨질 정도로 닳았다. <흠흠신서>도 완역하여 간행했기(공역) 때문에 손때가 많이 묻어 있다. <풀어 쓰는 다산이야기 1·2> <일일수행 1·2>로도 많은 글을 쓰고 있으니 <여유당전서>는 매일 펴보지 않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만하면 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40년이 넘는 세월, 처음보다는 글을 보는 문리도 많이 트여서 예전보다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읽을 수도 있으니, 역시 세월은 고맙기만 하다. 76책에는 다산의 인간과 사상, 철학과 인생관, 경국제세의 높고 깊은 학문이 담겨 있다. 썩어문드러진 세상을 개혁하자고 마음 조리던 그의 탁월한 애국심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 세상을 통째로 개혁하여 완전무결하게 바꾸지 않고는 나라가 반드시 망하고 말리라는 그의 외침이 그 책 속에 들어 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현실의 못된 정치, 문화·경제의 잘못된 정책을 보다 보면, 역시 그것을 고칠 지혜가 오직 다산의 저서에 있기 때문에 그 속에 빠져서 내 삶은 흘러가고 있다. ‘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이라는 구호 아래, 다산연구소도 굴러가고 있다. 그 탁월한 논리를 현실사회에 접목시켜 보고 싶어서다. 한문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 주셨던 조여부에게 감사드린다.

박석무/한국고전번역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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