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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29 22:54 수정 : 2010.07.29 22:54

소설가 박완서

팔순이어도 어제일 같은 ‘전쟁’
40년전 등단작 ‘나목’ 에피소드
박완서의 상념·독후감 등 담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현대문학·1만2000원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올해로 팔순을 맞은 원로 작가 박완서씨는 신작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붙인 머리말에서 이런 소회를 밝혔다. 올해는 그가 장편 <나목>으로 등단한 지 만으로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40년 동안 그의 글을 읽어 온 독자들을 대신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의 책을 또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고 행복해요.”

산문집으로는 <호미> 이후 3년 반 만에 낸 이 책에는 작가의 집 마당에서 흙과 풀을 상대로 땀을 흘리면서 맛보는 행복, 갑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아린 전쟁의 상흔, 월드컵 축구 경기와 영화 관람기, 독후감,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박수근 등 먼저 세상 뜬 이들을 그리워하며 쓴 추모글 등이 두루 담겼다.

표제 산문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아차산 아래 전원주택 마당에서 잔디와 화초를 돌보며 건져올린 상념을 담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당에 나가 열시 넘게까지 흙일에 매달리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도중에도 수시로 마당에 나가 다시 손에 흙을 묻히는 작가에게 흙은 경이롭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흙을 상대로 하는 육체노동에는 원초적인 평화와 행복감 같은 게 있다.” 흙일을 끝내고 실내로 들어온 작가가 바깥세상 돌아가는 꼴에 눈을 돌리면, 정치권은 여전히 여와 야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있고, 천안함의 생때같은 죽음과 그에 이은 험악한 분위기는 60년 전 그의 청춘을 앗아 간 전쟁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전환기의 학제에 따라 5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월에 대학에 입학했던 작가는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에 터진 전쟁 때문에 대학과 학문의 꿈은 물론 청춘의 평범한 소망마저도 차압당해야 했다. 그의 영혼의 시계는 그렇게 그해 6월에 멈춰섰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나 ‘또 경인년’이 되도록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두고 작가는 “스무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6·25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김훈 소설 <남한산성>을 읽으면서도 작가는 병자호란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6·25 전쟁을 떠올린다. “김훈의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으로 묘사된 <남한산성>을 읽는 동안 작가는 소설 속 추위에 감기가 들 정도였단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 속에 그려진 병자년의 추위가 아니라 그 추위에서 유추한 경인년(1950년, 음력) 1·4 후퇴 당시의 추위 탓이었다는 것을 작가는 뒤늦게 깨닫는다. 부상당한 오빠 때문에 남들처럼 피난도 가지 못하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 남아 견뎠던 몸과 마음의 추위는 “그 후에 우리에게 닥친 온갖 고난의 역정까지를 얼어붙게 하는 무서운 추위였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나도록 본의 아니게 그 추위의 기억을 붙안고 견디는 작가는 이렇게 절규하듯이 쓴다.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

2002 월드컵 경기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면서 스스로가 축구 경기에 열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가 하면(‘구형예찬’),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자신의 70년대 단편 주인공으로 하여금 “거의 종교적인 경건으로 예배하듯이” 우러르게 했던 남대문이 어이없이 화마에 휩싸인 모습을 보며 비통해하는(‘아아, 남대문’) 작가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선배 작가 박경리 등 최근에 세상을 뜬 이들에 대한 추모글과 함께, <나목>의 모델이 되었던 화가 박수근과의 인연을 소개한 글도 눈길을 끈다. 아직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1년 겨울 미군 피엑스의 초상화부에서 일할 때 만난 박수근을 한갓 ‘간판쟁이’인 줄로 알고 함부로 대했던 일,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자신의 그림이 실린 도록을 가져와 보여준 일, 그의 사후에 열린 유작전에서 <나무와 여인>이라는 그림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받아 <나목>을 쓰게 된 일화가 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을 준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