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소설가 박완서
|
팔순이어도 어제일 같은 ‘전쟁’
40년전 등단작 ‘나목’ 에피소드
박완서의 상념·독후감 등 담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 지음/현대문학·1만2000원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올해로 팔순을 맞은 원로 작가 박완서씨는 신작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붙인 머리말에서 이런 소회를 밝혔다. 올해는 그가 장편 <나목>으로 등단한 지 만으로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40년 동안 그의 글을 읽어 온 독자들을 대신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의 책을 또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고 행복해요.” 산문집으로는 <호미> 이후 3년 반 만에 낸 이 책에는 작가의 집 마당에서 흙과 풀을 상대로 땀을 흘리면서 맛보는 행복, 갑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아린 전쟁의 상흔, 월드컵 축구 경기와 영화 관람기, 독후감,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박수근 등 먼저 세상 뜬 이들을 그리워하며 쓴 추모글 등이 두루 담겼다. 표제 산문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아차산 아래 전원주택 마당에서 잔디와 화초를 돌보며 건져올린 상념을 담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당에 나가 열시 넘게까지 흙일에 매달리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도중에도 수시로 마당에 나가 다시 손에 흙을 묻히는 작가에게 흙은 경이롭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흙을 상대로 하는 육체노동에는 원초적인 평화와 행복감 같은 게 있다.” 흙일을 끝내고 실내로 들어온 작가가 바깥세상 돌아가는 꼴에 눈을 돌리면, 정치권은 여전히 여와 야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있고, 천안함의 생때같은 죽음과 그에 이은 험악한 분위기는 60년 전 그의 청춘을 앗아 간 전쟁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전환기의 학제에 따라 5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월에 대학에 입학했던 작가는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에 터진 전쟁 때문에 대학과 학문의 꿈은 물론 청춘의 평범한 소망마저도 차압당해야 했다. 그의 영혼의 시계는 그렇게 그해 6월에 멈춰섰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나 ‘또 경인년’이 되도록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두고 작가는 “스무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쓴다.
|
|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