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18 19:32
수정 : 2009.12.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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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전집 전 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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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반항…시대를 관통하는 막강한 유산들
습작부터 죽음 직전 인터뷰까지 20권 전집으로
〈카뮈 전집 전 20권〉
알베르 카뮈 지음·김화영 옮김/각 권 8500원~1만5000원
“사람은 어느 한 극단으로 쏠림으로써가 아니라 두 극단에 동시에 닿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제사) 블레즈 파스칼의 글에서 따온 이 문장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삶을 관통한 정신을 보여준다. 사유를 양쪽 극단까지 밀어붙인 뒤 두 극단을 잡아당겨 그 팽팽한 긴장 위에 삶의 화살을 놓는 것, 그것이 카뮈의 일생이었다. 그는 화살을 함부로 쏘지 않았지만, 한번 쏘면 대개 과녁을 적중했다.
20대에 프랑스 지식계의 스타로 떠오르고, 삶의 어느 한 국면을 레지스탕스 운동에 바치고, 아주 젊은 나이(44살)에 노벨문학상을 타고, 그리고 너무 일찍 세상을 저버린 이 작가는 자신이 떠난 자리에 한아름의 작품을 유산으로 남겨놓았다. 그 유산 속에 담긴 사상의 힘은 막강해서 50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의 심장과 머리를 타격한다. 그의 정신이 집적된 ‘카뮈 전집’이 스무 권으로 묶여 한국어로 완간됐다. 불문학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23년에 걸쳐 홀로 벌인 고투의 결과다.
카뮈는 언젠가 자신의 창작 방식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나는 행동의 언어로 희곡을 썼고, 합리적인 형식으로 에세이들을, 속을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바탕으로 삼아 소설들을 썼다.”(<스웨덴 연설·문학비평>) 이 발언에 나타나는 대로 카뮈는 소설과 희곡과 철학적 에세이를 동시에 섭렵한 전방위 작가였다. 또 삶의 상당 부분을 신문에 기사와 논설을 쓰는 저널리스트 생활에 바쳤다. 이 전집에는 그가 습작기에 쓴 글들에서부터 마지막 시기 인터뷰까지 그의 거의 모든 저술과 발언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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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파온다…카뮈가 겨눈 ‘진실의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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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태어난 카뮈는 17살 때 폐결핵의 습격을 받았다. 뒤로 오랫동안 그의 육체를 괴롭힌 이 질병을 견디며 젊은 카뮈는 죽음의 문턱 저편을 들여다보았다. 죽음의 그림자에 싸여 바라보면 모든 친숙한 것들이 낯선 것으로 바뀌었다. 이 세계도, 타인도, 자기 자신마저도 자기로부터 떨어져 휑뎅그렁한 사물로 나타났다. 삶의 한가운데서 사막이 펼쳐졌다. 젊은 날의 이 강렬한 인식은 2차세계대전이라는 극단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생생한 현실성과 보편성을 얻었다. 파리가 나치의 수중에 떨어진 시기에 그는 이 뜨겁고도 투명한 인식을 육화시켜 소설 <이방인>과 에세이 <시지프(시시포스) 신화>로 탄생시켰다. 이어 희곡 <칼리굴라>를 썼다. 이들이 모여 이른바 ‘부조리’ 3부작을 이룬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 올지 모르는 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꿈꾼다. 부조리다. 2차대전 이후 한동안 카뮈와 막역한 동지였던 장폴 사르트르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시지프 신화>는 부조리의 ‘개념’을 겨누며, <이방인>은 부조리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카뮈의 설명을 따르면, 부조리의 발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부조리의 발견에서 끌어내는 ‘귀결’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나의 열정이다.” 그 반항과 자유와 열정을 집약한 하나의 이미지가 시지프다. 신들로부터 벌을 받아 산꼭대기까지 한없이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는 부조리가 강요하는 운명에 무릎 꿇지 않는 정신의 표상이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로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시지프 신화>)
반항 속의 열정, 반항 속의 자유를 상징하는 시지프의 모습은 그의 두 번째 창작 사이클을 예고한다. 나치즘의 극단을 겪고 종전 후 다시 냉전의 극단에 처한 카뮈는 소설 <페스트>, 희곡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반항의 사이클’을 돈다. 열정과 자유는 반항으로 수렴되고, 반항은 사이클을 돌면서 ‘절도’와 만난다. 카뮈는 반항이 그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면 절도를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항이 한계를 넘어 폭력을 찬양하고 살인을 용인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반항은 반항의 정신을 배반한다. 한계를 모르는 반항은 반항이 아니다. “반항이 곧 절도다.” 이 반항 속의 절도를 카뮈는 시계추의 비유로 설명한다. “반항은 스스로 심오한 리듬을 찾기 위해 광란하는 듯한 진폭으로 흔들리는 불규칙한 진자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불규칙한 상태가 도를 넘어버리는 일은 없다.”(<반항하는 인간>)
이 절도의 사상을 밀고 나갈 때 카뮈는 사르트르와 부딪쳤다. 그것이 1952년 유명한 ‘사르트르-카뮈 논쟁’이다. 스탈린주의에 기운 사르트르의 ‘한계 없는 반항’을 카뮈는 절도의 언어로 공격했다. “유럽은 결코 정오와 심야의 투쟁을 벗어난 적이 없다.” 카뮈는 자신을 정오의 사상으로, 사르트르를 심야의 사상으로 대립시켰다. 햇살이 직각으로 내리쬐는 한낮의 투명함으로 현실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그는 이런 연설을 했다. “진실은 신비롭고 달아나기 쉬운 것이어서 늘 새로이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위험하고 우리를 열광시키기도 하지만 그만큼 체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1959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내 나이 마흔다섯이고 아직 놀랄 정도로 활력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뒤 그는 자신의 창작 사이클의 세 번째를 이룰 소설 <최초의 인간> 원고를 품고 가다 자동차 사고로 그 자리에서 삶을 접었다.
보름 뒤면, 그러니까 다음달 4일이면 그가 난데없는 부조리한 죽음으로 요절한 지 만 50년이 된다. “당신은 당신 속에 시대의 갈등을 요약하고 있었고 그 갈등을 몸소 살아가려는 열정을 통해 그 갈등을 초극하였습니다. 당신은 가장 복합적이고 가장 풍부한 하나의 페르소나였습니다.” 사르트르는 카뮈와 논쟁하던 중 그의 삶을 그렇게 묘사했는데, 이 문장은 미리 쓴 추도사처럼 읽힌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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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와 함께 | 카뮈 전집에 23년 바친 김화영 교수
“호랑이 등에 올라타 내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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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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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에 올라탔던 거죠.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 옥수동 자택 서재에서 만난 김화영 교수는 홀로 카뮈 전집을 번역하게 된 이유를 이 짧은 말에 담았다.
한국전쟁 폐허에서 카뮈를 만났던 김 교수는 불문학도가 됐고 프랑스 유학을 가 카뮈를 전공했다. 1974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카뮈 작품에 나타난 물·돌·빛의 이미지 연구>를 썼다. 그 논문을 현지에서 출판하려고 출판사를 드나들던 중 뤽상부르 공원 뒤편 카뮈의 집을 찾았다가 카뮈의 부인 프랑신을 만났다. “카뮈를 어떻게 알게 됐냐길래,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번역서를 많이 읽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더니, 그분이 그러는 겁니다. 아니, 한국은 어떻게 남의 책을 그렇게나 번역하면서 저작권자에게 연락 한 번 없느냐고요. 자랑하려다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귀국 후 카뮈의 초기 작품 <결혼·여름>을 번역할 때 카뮈 부인의 그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출판사와 이야기해, 카뮈 전집에 대한 저작권을 맺었다. 한국이 아직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제가 주도해 저작권을 맺은 게 화근이었지요. 전집 번역이 다 내 몫이 된 건데, 그땐 7~8년이면 끝낼 줄 알았지요.” 전집 마지막 권(<시사평론>) 서문에서 김 교수는 ‘호랑이 등에 탄’ 그 세월을 이렇게 회고했다. “원고와 책 보따리를 싸 들고 도고, 경주, 해운대, 양평, 파리 등지를 떠돌아다니며 고전하는 사이에 의욕 넘치는 40대 교수였던 나는 대학에서 은퇴하여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은퇴한’ 교수는 카뮈의 반항, 카뮈의 절도를 이야기할 때 40대의 그 열정으로 되돌아갔다. “카뮈의 모든 작품을 꼼꼼히 읽어 찾아낸 핵심 이미지가 빛과 돌과 물인데, 돌은 그 빛과 물 사이에 있습니다.” 위에서 쏟아지는 빛은 천상을 가리키고 아래로 흐르는 물은 지하를 가리킨다. 인간은 천상으로 오를 수도 없고 땅 밑으로 꺼질 수도 없다. 지상에 돌처럼 머물러야 한다. 시지프가 굴려 올리는 돌이 바로 그 돌이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 등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시지프 신화>의 이 묘사는 돌과 투쟁하면서 돌과 하나가 되는 시지프를 보여준다. 그 시지프가 인간이다.
“한국에서 카뮈는 반공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스탈린주의에 반대한 사람입니다. 반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자가 카뮈이죠. 카뮈는 유토피아주의적이고 절대주의적인 사상은 자기를 배반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현실의 모든 부조리에 반항하되, 그 반항의 기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스탈린주의는 절도 잃은 반항의 결과였던 셈이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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