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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2 19:06 수정 : 2009.06.12 21:07

〈치매를 산다는 것〉





〈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지음·이근아 옮김/이아소·1만2000원

‘도둑망상’이란 게 있다. 물건을 잃어버리곤 누군가 훔쳐갔다고 의심한다. 도둑 취급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도둑으로 몬다. “내 물건을 내놔, 이 도둑놈아!”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간병을 포기하고 도망갈 수 없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치매를, 환자를 이해하려면 부닥치는 첫 번째 물음이다.

■ 치매, 도둑맞은 한 생애 치매 초기엔 건망증이 심해진 게 나이 탓이려니 한다. 중기엔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누구시더라?’ 한다. 그다음엔 말도 잊고 음식을 씹지도 못한다. 도둑망상은 치매 초기에 가장 흔한 증상이다. 그 속내는 노화에 따른 상실감이다. 몸은 약해지고 점점 병들어 간다. 배우자나 벗들과도 사별한다. 상실감은 혼란과 절망을 낳는다. 가까운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는 이제 점점 또렷해진다. 가슴속 적막강산을 숨기고 싶은 게다. 의지하고 싶지만 의지하는 자신의 처지가 밉다. 그 모순된 감정이 의지할 상대를 되레 할퀸다. ‘배회행동’도 나타난다. 마음 편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다. 다 불안하고 쓸쓸하기 때문.

여기 치매에 걸린 노인이 있다. 우울한 눈빛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우리는 그를 침대에 묶어두고 ‘편히 쉬라’고 한다. 욕창이 생긴다. 표정이 딱딱해진다. 그러다 죽음을 맞는다. 여기 또 한 명의 치매 노인이 있다. 그는 예전의 솜씨를 여전히 발휘한다. 그는 생을 달관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 죽음을 맞는다.

두 사람의 차이는 뭘까. 그들이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 바라는 건 뭘까.

■ 마음을 알면 보이는 치유의 길 기억장애, 방향감각 상실, 판단장애라는 증상은 의학적 대상이지만 그로 인한 망상, 배회, 의욕장애라는 주변 증상들은 이해의 대상이다. 간병인이나 치료자는 환자보다 젊다. 늙어가는 이의 중압감과 상실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축적된다. 얼굴조차 못 알아보게 되더라도 오랜 지인에게 웃음을 보인다. 환자와 오래 생활하다 보면 그들의 기쁨, 슬픔, 성남, 즐거움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그들 마음의 이력서를 읽는다. 그들은 시간이 뒤죽박죽이다. 듣는 이는 사건과 시간을 재배열해 스토리를 구성한다. 듣는 이에게 신뢰가 생긴 환자는 어느 순간 과거와 현재의 생활을 봇물처럼 쏟아낸다. 마음이 통한다. 침대에서 음울한 여생을 보내게 하는 격리보다, 막대한 자본으로 마술 같은 신약 개발에 정신을 내주기보다, 가족과 사회가 나서 ‘지금 이곳’을 익숙한 곳으로 바꿔주면 된다.


그 관계 속에서 환자는 과거의 익숙한 것들을 누리면서 편안해진다. 이 책은 치매를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인 환자와 가족들의 씩씩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회가 이 난치병을 담담하게 대처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치매에 대한 선입관을 치료하는 쓰임새도 가진다. 지은이는 20여년 동안 치매 치료를 해온 정신과 의사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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