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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05 22:39 수정 : 2009.06.05 22:39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2007년에 펴낸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온갖 사료와 선인들의 방대한 문집, 저 비할 데 없이 거창한 <사고전서>(四庫全書)까지 연구실에 앉아 컴퓨터로 읽고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썼다.

그동안 인류가 생산한 수많은 지식이 디지털 데이터화되었다. 중국의 방대한 역사책을 모아놓은 <사고전서>는 <조선왕조실록>의 1000배 규모다. 이렇게 모아진 방대한 디지털 자료는 검색이 가능한 상태로 보관돼 있다. 지식인이라면 그 데이터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자료를 검색해 빠르게 한 권의 책을 쓸 수도 있다. ‘데이터베이스적 생산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강 교수는 최근 펴낸 <열녀의 탄생>에서 데이터베이스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해 보인다. 조선시대 남성·양반은 자신들의 권력적 의도에 부합하는 ‘여성’을 만들기 위해 특정한 지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여성의 머릿속에 ‘설치’하려고 <소학> <삼강행실도> <내훈> 등의 텍스트를 활용해왔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의부(義婦), 열부(烈婦), 열녀(烈女) 등의 단어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었는지 일일이 제시하고 있다. 이런 세밀한 사례들은 디지털 데이터로 검색하지 않고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아주 사소한 사례일 뿐 앞으로 디지털 데이터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편집자 출신이면서 영문학자로 평생을 보낸 도야마 시게히코는 <망각의 힘>에서 “(육체적) 비만은 운동으로 해소할 수 있겠지만, 지적 메타볼릭 증후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기억과 재생 능력은 컴퓨터를 따라잡을 수 없다. 검색으로 다량의 지식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학습사회에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적 망각을 통해 능숙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인간은 무수한 과잉 정보들 중에서 불필요한 지식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연결 지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브리콜라주’(bricolage)적 지식이라 부를 수 있다. 프랑스어인 브리콜라주는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 등으로 번역되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상중 교수는 <고민하는 힘>(사계절)에서 “나는 그것(브리콜라주)을 확대해석해서 중세시대의 크래프트(craft)적인 숙련, 또는 신체감각을 통한 지의 본래 모습까지 넓혀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며 이 지식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강명관 교수는 <열녀의 탄생>에서 그런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을 실증해 보임으로써 웹2.0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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