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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30 20:03 수정 : 2009.01.30 20:13

〈피부색깔=꿀색〉





〈피부색깔=꿀색〉
전정식 글·그림, 박정연 옮김/길찾기·9800원

유럽서 활동 작가
자전적 만화
5살 때 입양된 소년의
심리 방황
웃음으로 승화

소년은 다섯 살에 벨기에로 입양됐다. 서울 남대문에서 경찰에 발견된 소년의 입양서류엔 “피부색깔=꿀색, 출생지=모름, 정이 많고 마른 편이다. 음식은 맛있게 먹는다. 뭐든 잘 소화한다. 배설 능력 완벽. … 순하고 친절하며 매우 착하고 귀엽다. 입양에 추천한다”라고 기록돼 있었다. 양아빠는 건축일을 했고 양엄마는 전업주부였다. 이들에겐 이미 4명의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기꺼이 친형제자매가 돼 주었다. 장난감도 풍부했고 먹고 싶은 콜라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밤마다 잠을 설쳤고 악몽을 꿨다. 한밤중에 깨어보면 시트가 젖어 있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다정한 아빠는 일이 바빠서 자주 볼 수 없었고, 엄마는 엄격했다. 충동적으로 학교 친구의 식권을 훔친 일이 들통나자 엄마는 “넌 썩은 사과야! 양동이 속의 썩은 사과는 잘 자란 다른 사과도 썩게 만든다! 이제는 네가 ‘내 아이들’한테서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리 지른다. 그날 이후 소년은 변해간다. 무서운 엄마에게 사랑받으려고 성적표를 조작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들키자 더욱 무서운 매질을 당하게 됐고, 또 그런 엄마가 더 무서워 더 거짓말을 꾸며내게 되고 …. 소년은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피부색깔=꿀색>은 현재 유럽에서 40대 만화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정식씨의 자전적 만화다. 자신이 버려지고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의 지난한 심리적 방황을 익살과 재치로 버무렸다. 작가가 “스스로도 웃을 수 있는” 작품을 원했다는 말처럼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톤을 놓치지 않는다. 12살에 포르노의 세계에 빠져 밤에 여자 형제의 가슴을 몰래 만져본 얘기, 호감을 갖고 있는 여자아이가 막상 데이트를 신청해오자 36계 줄행랑을 친 사연 등 솔직한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난 왜 버려진 걸까, 엄마랑 살면 안됐던 걸까
유럽에서 먼저 호평을 받고 많은 입양인들과 입양 부모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은 이 작품은 작가보다 먼저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같은 한국 계 입양아 출신인 아내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둔 작가는 많은 아시아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한국의 문은 지금까지 두드리지 않았다. “고아원과 병원을 만들고 우리에게 가족을 찾아준 홀트 할머니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 홀트 할머니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지금도 모르겠다. 세계로 입양된 아이들이 20만명이나 된다. 너무 많다”라는 소년의 독백에서 드러나듯 아직도 그에겐 ‘한국’과 ‘입양’은 진행형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한편, 소년과 함께 같은 학교를 다녔던 10여명의 한국계 입양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고통스러워 마주치면 모른 척 외면하는 게 ‘불문율’이었던 이들. 5명은 자살했고 나머지도 정신병원을 드나드는 등 행복하게 살진 않았다고 한다.

입양아라면 바로 자신의 독백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양부모거나 입양을 고려하는 사람에겐 입양아들이 밥과 옷 또는 학교나 장난감보다 더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이 책장을 열어야 할 이는 입양아도 입양부모도 아닌, 여전히 세계적인 고아수출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국 사회일 것이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