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26 19:30
수정 : 2008.12.26 19:30
|
|
유유상종의 위험성
|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닮은 것은 닮은 것을 기쁘게 한다’(Simile gaudet simili, 시밀레 가우데트 시밀리)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건 취향이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면 기뻐한다는 뜻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 에라스뮈스는 나르키소스의 신화가 여기 잘 들어맞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는 몹시 아름다운 소년이었습니다. 어찌나 잘생겼던지,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군요. 프로이트는 이 신화를 자기 이론에 맞추어, 스스로를 사랑하는 성향을 나르시시즘이라 불렀습니다. 나르키소스를 프랑스어식으로 고치면 나르시스가 되지요.
살바도르 달리도 이 신화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나르키소스의 변용>이란 작품을 그렸습니다(다양한 해석이야말로 문화를 살지게 하는 힘이지요). 그림 왼쪽에는 정신을 잃고 수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머리 묶은 소년 나르키소스가 있고, 오른쪽에는 수선화를 든 손이 있습니다. 재치 있는 달리는 두 모습을 서로 꼭 닮게 그렸어요. 여기에 에라스뮈스를 덧붙여 그려보았습니다. ‘완전한 유사성이 있는 곳에 가장 격정적인 사랑이 존재한다는 말이 진정 나르키소스의 신화에 담긴 뜻’이라고 에라스뮈스는 적고 있지요.
자기와 닮은 이를 보고 기뻐하는 마음, 닮은 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능이 원래 그렇듯이, 이 마음에는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미덕에 있어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과 어울린다’고 말했다지만, 에라스뮈스는 ‘이 말은 악덕의 경우에 더욱 확연하다’며 걱정합니다. 사기꾼이 사기꾼과 어울리고 독재자가 독재자와 죽이 맞는 꼴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닮은 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비뚤어지면 자신과 다른 이(타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파시스트들이 보기에 다양성과 불일치는 ‘배반’입니다. 스파이 소설의 걸작 <르윈터 망명>에서 소련 지식인 자이체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완전히 서로 닮은 것은 무덤에 들어간 경우 말고는 없다고 스탈린이 말했다지요. 스탈린은 잘 알고 있었을 게요. 온 세상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무덤으로 보냈으니까.”
|
|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얼핏 보기에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나르키소스의 신화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사랑과 죽음은 저주에 의한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없으면 사회는 병이 듭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파시즘도 철권통치도 속은 곪아 있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는 서경식과의 대담에서, ‘소수의견이 없는 사회’는 ‘방향전환을 할 수 없어’ 결국 ‘비탈길을 구르는 돌처럼’ 파국으로 치닫는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서로 꼭 닮은 자들끼리 정권을 장악한 지 어언 1년.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하던 한국 사회의 다양성이 상처 입을까봐 두렵네요. 그나마 저들의 지독한 무능력이 위안을 줄 따름입니다.
김태권 만화가·<십자군 이야기> 지은이